허행객(虛行客)

by 김수권

남쪽 지방으로 출장을 간 김에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과 전북 고창의 진채선 명창 생가터였다. 낙안읍성 안에는 가야금병창을 대중화하셨던 오태석 명창의 생가가 있고, 그 낙안읍성 바로 옆에는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을 위한 큰 업적을 남기신 한창기 선생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진채선 명창은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판소리로 최초의 여성 명창이 되셔서 새로운 길을 여셨던 분이다.


이번 여행길에 새삼 아쉽고 속상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행객들의 무관심이었다. 특히 낙안읍성은 마침 꽃구경 철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그곳에서 가장 기억되어야 할 분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심각할 정도로 너무나 적다고 느꼈기에 우리나라 사람의 '여행에 대한 인식'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낙안읍성 안내 지도에는 오태석 명창의 생가가 표시되어 있지도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가 바로 옆에서 운영하는 가야금 체험장만 표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도에서 낙안읍성을 돌아보는 안내 순서상 이곳이 가장 첫 번째 경로임에도 인적은 낙안읍성 안에서 가장 드물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이거나 성곽 위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곳 아니면 파전에 동동주를 파는 장터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오태석 명창의 생가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저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와 손녀가 있었을 뿐이다.


낙안읍성 바로 옆에 있어 조금만 걸어가면 볼 수 있는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의 사정도 비슷했다. 오죽했으면 낙안읍성 입구의 매표소 옆에는 박물관 방향으로 화살표를 표시해놓고 이쪽으로 오시면 박물관도 있으니 꼭 와서 봐달라고 부탁하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박물관을 가보니 전시실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은 물론 긴 시간 꼼꼼하게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단 두 무리의 사람들만 거쳐 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고창의 진채선 명창 생가터는 더욱더 심했다. 이곳은 내비게이션이나 인터넷 지도 서비스에서도 검색되지 않아 그야말로 미지의 장소였고, 먼저 방문했던 사람들이 올린 여행 후기 속 얼마 안 되는 정보들을 단서로 찾아가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고 인기가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인가라는 분노와 답답한 마음에 여행을 마치면 위치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관심 지점(POI, Point of interest)' 데이터에 등록해달라는 요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곧 단념했다. 이곳은 '생가터'이니 말 그대로 터만 있을 뿐이어서 많은 사람의 기준에서는 와봤자 볼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으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충남 예산의 추사고택에서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게 다야? 뭐 볼 것도 없네"라고 했던 모습을 떠올리니, 빈터에 풀만 무성히 자라있는 이곳에 방문하여 속았다며 화를 낼 사람들이 눈에 선했다. 인터넷에 정보가 제공되면 지금보다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왔다가 크게 실망하여 괜히 왔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그렇게 오가는 외지인들로 인해 일상의 평온을 잃게 될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니, 차라리 지금처럼 그냥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언론에 '행락객(行樂客)'에 관한 보도가 많았다. 본래 행락(行樂)의 의미가 나쁜 것은 아니나, 그 행락의 의미가 대부분 무절제의 음주가무(飮酒歌舞)였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많아 이 말은 부정적 의미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을 듣게 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예전과 같은 폐해는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런 과거에 비해 요즘의 사람들은 여행이나 관광을 할 때 '힐링(healing)'을 많이 언급한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치유를 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보통 여행이나 관광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힐링을 위해 찾아가고 머무는 곳은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곳, 수려한 경치나 화려한 볼거리, 재미있는 놀 거리가 있는 곳, 사진을 찍으면 그럴듯하게 잘 나오는 곳이다. 무절제의 음주가무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행락(行樂)의 경계에 머물러 그것으로부터 치유를 얻는다고 여기는 것만 같다.


억압된 일상에서 평소에는 잘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먹고 즐기고 찍느라 정작 자신이 다녀간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너무나 허무한 일이어서 '헛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허행(虛行)의 길에서 추구한 힐링은 과연 진정한 것이며, 효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 의심도 든다. 아마도 수많은 허행객(虛行客)이 우르르 몰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숨 막히는 행렬에 갇히는 순간부터 이미 힐링의 효과는 사라지고 없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꽃구경 철이라는 것을 모르고 온갖 축제라는 이름의 난리 속에서 몹시 고된 여행길이었지만, 오래전부터 마음먹고 미처 실행하지 못했던 순례를 하고 오니 큰 안식을 얻는다.


(2015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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