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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림 May 07. 2024

다시 만난 인생

시작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인 두 번째 인생을 산다는 느낌? 이제 행복을 좇지 않아, 어디에나 있는 거니까."


 요즘 어떻게 사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당차게 대답했다. 오래 알던 사람이 아니면 가식적으로 보이기 충분한 대답. 너무 밝은 척한다, 나댄다고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속상하지만, 타인이 어떤 단어로 나에 대해 정의하던 그건 이제 상관없는 일이다. 스스로에 대한 정의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음을 안다. 이런 여유로운 태도도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두 번째 인생이 무슨 말인가?


 나의 인생을 구분하자면 첫 번째 인생인 10대와 두 번째 인생인 지금이다. 첫 번째 인생에 대해서는 불행한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강렬한 기억 외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인상 깊은 경험이 없다. 왜냐면 그 인생에서는 스스로를 지우고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 내가 아닌 남이 우선, 내 눈치가 아닌 남의 눈치, 부모님도 기대조차 하지 않은 내 인생. 요약하자면 주체성을 잃은 10대를 보냈다. 주체성을 정말 잃은 날에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불쌍하다고 울었다. 앞으로의 날들이 긴 터널 같아 막막해서 하염없이 슬픈 표정을 지녔다. 그렇게 웃음기 없는 10대를 보내고 거울을 이제야 봤는데. 그동안의 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깨닫기 충분했다. 표정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학창 시절, 자존감 수업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마 내 또래라면 누구나 들었을법한 수업. 선생님이 먼저 선창하면 따라서 박수를 치며 구호를 크게 외쳐야만 했다.

"나는 내가 정말 좋아. 나는 내가 정말 좋아."

"나는 내가 정말 좋아. 나는 내가 정말..."

"나는 내가 정말..."

 박수를 치면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참나. 그렇게 구호를 외칠수록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목소리가 땅굴을 파고 들리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세한 진동으로 교실을 채웠다. 지금 보면 체면을 세울 때가 아니었을 텐데.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이 박수로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비록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 대한 질문에 하나도 명확히 답한 적 없다. 취미,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갖고 싶은게 무엇인지.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만큼 타인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처음보는 사람과 어떻게 친해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엄청난 과제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박수로 두 번째 인생이라는 막을 열었다. 타인의 질문이 두렵지 않고, 새로운 대화 주제로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남을 즐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 취미, 관심사에 대해 뚜렷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두 번째 인생을 같이 시작할, 자기소개가 어렵던 당신을 위해 이 글로써 초대해 본다. 

공연 이름은 [두 번째 인생:자기소개가 특기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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