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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샤 May 14. 2023

흰수마자와 선생님

고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잠돌이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았던 나는 새벽 늦게 잠들기 일쑤였고, 패턴이 완전 무너진 채로 3년을 지냈다. 그래서 주로 학교에서 꾸벅거리던 나는 쏟아지는 잠을 참는 게 일상이었다.

어느 야간 자율학습 시간, 나는 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감독하시던 선생님께 딱 걸렸다. 깨우시거나 핀잔을 주시고 돌아설 줄 알았던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따라와.”하고 나가셨다. 친구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따라갔다. ‘피곤하면 좀 졸 수도 있는 거지... 이렇게까지 혼내는 건 너무 하신 거 아닌가.’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긴장하며 도착한 교무실에는 물고기가 있었다. “어차피 졸 거, 공부도 안 될 건데 이거나 도와줘~” 웃으며 말씀하셨다. 생물 선생님은 대학원에 다니고 계셨고 물고기는 선생님의 연구과제였다.


 “이 물고기는 수마자라는 종인데 낙동강에서 사는 토종어종이야. 그런데 멸종위기종이어서 아마 OO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거일걸? 선생님이 이 물고기를 분류해야 하는데 OO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어느덧 내 눈에는 졸음이 다 가시고 신기함과 경외감이 가득 찼다. 교무실에 다녀온 나를 보며 ‘많이 혼났어?’하는 친구들에게 ‘아니~ 나 물고기 분류하고 왔어!’ 라 말하며 살짝 으쓱해지기도 했다.

학문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날의 기억으로 생물이 조금 더 궁금해졌고, 좋아졌다. 열심히 공부한 만큼 성적도 잘 나와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교사가 되고 싶던 나는 선생님의 영향으로 생물교육과로 진학하였다. 대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을 참 많이 괴롭혔다. ‘교육 실습, 진로 인터뷰 과제, 임용 고시 조언’ 등으로 매번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한결같이 다정하셨으나 때론 단호하셨다. 무조건적인 응원보다는 내가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날카롭게 말해주셨다. 아마 내가 더 은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셨겠지.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시를 쳐야 할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선생님을 찾았다. ‘선배와의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자율학습시간 후배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나는 정말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구나.’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OO야, 너는 완전 선생님이야. 걱정하지 마. 요즘의 임용 시험이 쉽지 않아서 몇 년은 고생해야겠지만 너는 할 수 있어. 너 같은 사람이 선생님이 되는 거야.” 


든든한 격려였다.



오랜 간 시험을 쳤고, 현재는 기간제로 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선생님이 떠오른다.


이들에게 보다 다정하게 대해야지.

조금 더 허용적인 교사가 되어야겠다.

오늘은 더 따뜻한 말을 건네야지. 

다짐하게 된다. 


긴 시간, 계속해서 존경할 수 있는 은사님이 존재함 감사하다. 선생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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