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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Aug 04. 2020

군대 시절의 고마운 글벗

편지 품앗이

편지, 그 아득한 설렘과 기다림.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매체가 지금은 매우 다양하고 빠르고 편리하지만 가까운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때 소식을 주고받는 수단은 편지였다. 


군인에게는 편지처럼 반가운 것도 없을 게다. 내가 입영통지서를 받았을 때, 여동생은 자기 친구들을 동원하여 위문편지를 많이 보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난 그 말에 훈련소로 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하지만 여동생의 말은 속 빈 강정이었다. 속았다.

 

논산훈련소에서 6주의 훈련을 마치고 부산의 기술병과학교에서 12주간 차량정비 교육을 받았다. 같은 내무반의 어떤 전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날마다 애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나와 다른 전우들은 부럼 반 시샘 반으로 그 전우를 바라보곤 했는데, 준석이라는 전우가 문득 내무반의 동료들에게 공개 제안을 했다.


자기 집에는 예쁘고 귀여운 고등학교 2학년인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소개해 달라는 거다. 그러면 자기도 제 여동생을 소개하겠단다. 나는 주저 없이 준석의 제안에 동의했다.

우리는 서로의 집주소와 여동생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준석의 여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군에 있는 오빠들의 뜻이 이러하니 집에 있는 동생들도 기꺼운 맘으로 협조하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고 일주일 가량 지난 후, 보낸 이의 주소란에 ‘서나 마나로부터’라고 적힌 낯선 글씨체의 편지가 내 앞으로 왔다. 준석이는 그 편지가 자기 여동생이 보낸 편지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난 들뜬 마음이었고, 다른 동료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을 그 편지에 쏟았다. 하지만 준석이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 동생은 묵묵부답이었다. 


고운 꽃편지를 살살 뜯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찬찬히 읽었다. 내 등 뒤에선 다른 동료들이 서로 밀치며 같이 편지를 읽었다.


To. 종인 오빠.

어제는 밤새 비가 내리고, 조용히 시작된 새벽이 부스스 눈을 뜬 내게 있어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너무도 충분하게 느껴집니다.

왠지 넉넉한 이 아침, 끝없는 의문부호만을 남긴 채 날아온 오빠의 편지를 보자니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네요. 오빠의 제안에 대한 내 회답은 <합격> 아니면 <불합격>으로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이 제안은 글벗이 필요하다는 말인 것 같은데, 얼마 되지 않는 사람과 근래에 펜팔을 해봤지만 오빠처럼 엉뚱한 분과는 처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빠는 <불합격>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유는!
첫째: 저를 너무 당황케 했고,
둘째: 저를 고민케 했으며,
셋째: 너무 엉뚱합니다.

이상의 이유로 불합격이오니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마시지 바랍니다.

옥.


히죽 벌어진 내 입은 편지를 읽어가며 시무룩이 오므라들었고, 같이 편지를 읽던 전우들은 내 기분 따위 아랑곳없이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준석이는, ‘역시 내 동생이야. 그렇게 만만하진 않지!’ 라며 깔깔거렸다.


나를 에우던 동료들은 볼장 다 봤다는 듯 파장 마당처럼 자리를 떴고, 풀이 죽은 나는 뒷장의 편지를 읽었다.

내가 혼자서 키득거리자 몇몇 동료들이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난 그들에게 뒷장의 편지지를 건네주었다. 동료들은 머리를 치며 감탄했고, 준석이는 벌레 씹은 양 씁쓰레했다.


P.S.
때로는 엉뚱한 분도 필요할 것 같아 유쾌한 마음으로 귀하의 글벗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준석이 오빠도 몸 건강히 지낼 것을 믿으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약 오르죠(메롱). 안녕히―.


이렇게 하여 내 이등병 시절부터 병장 말년까지 24개월 군생활 동안 우리는 매달 두세 번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군대에서의 편지는 봄의 제비처럼 포근하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결코 편하다고 말할 수 없는 군생활을 무난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간간이 날아오는 이 아이의 달콤한 편지 덕이었다.  


To. 종인 오빠.

녹음이 짙어가는 속에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펜을 듭니다.

쾌청한 날씨라 그런지 시험에 대한 ‘공포’ 보다도 ‘여름방학’에 대한 기대가 앞섭니다. 그래서인지 덕현이의 동물의 소리를 연상케 하는 ‘사의 찬미’ 아닌 현대판 ‘사회 찬미’가 기분 좋게 들립니다.

지금 오빠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요. 불행은 같이 느낄 수 있지만, 행복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것 같아요. 불행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사람들은 덩달아 침울해집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이 옆에 있다고 해서 곁의 사람들도 모두 다 즐거워지지는 않죠. 도리어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불행을 예수는 도리어 행복이라고 가르쳤죠. 역설을 알았던 예수는 그만큼 현실주의자였을까요? 여하 간에 오랜만에 저는 기분이 좋거든요. 오빠도 기분 좋은 날만 계속되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아무리 여름의 특권이 ‘소나기와 젊음’이라지만, 그래도 태양이 내리쬐는 환한 날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무척 행복합니다. 그런데 내 친구 ‘퍼스트 페이퍼’는 “태양은 모조보석, 햇빛 속에선 밤처럼 생명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어.” 라며 모처럼 그럴듯한 역설을 내세우는 거 있죠. 어쨌거나 오늘도 변함없이 바쁘게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이 돼요. 바쁜 꿀벌들에겐 슬픔이 없다지 않아요? 역이용하면 바쁜 인간에게도 슬픔이 없다는 소린데, 바쁜 꿀벌에겐 슬픔이, 아니 슬픔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철학도 없으니까요.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생활해야 하겠죠. 도시의 녹음처럼 말입니다.

무성한 저 숲의 나뭇잎은 죽지 않아요. 기억처럼 언제고 남아있을 뿐이죠. 나뭇잎처럼 푸르게 보내시는 칠월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짙어가는 교정의 녹음을 바라보며―.


아마 그때 처음으로 부산엘 갔다. 아니 경상도엘 처음 갔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양 다리처럼 이 나라를 버티고 바다에 서 있는 한 몸인데 그리 멀었던가? 결국 내 의지가 아닌 매인 몸이 되어 얼떨결에 갔다. 논산훈련소에서 밤기차를 타고 떠났는데, 도착하니 부산진역이었다. 바닷가의 비린내도 나는 것 같고 큰 도시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산자락에 자리한 육군 기술병과학교에서 12주의 후반기 교육을 받으며 이등병 시절을 보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가물치를 꺼내면 팔딱거리듯, 생각지 않고 지냈던 이 주소가 눈앞에 드러난 지금 팔딱거린다.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1동 사서함 1호.


종인 오빠에게.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왠지 모르게 두려운 이 밤.
- 잃어버린 자기 그림자를 찾으러 다니는 피터팬의 모험은 유쾌합니다. 그러나 황혼 녘의 그림자는 동화가 아니라 만 장의 문자처럼 비창(悲愴)하기만 합니다. -

원시인들은 밤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예감하는 본능의 언어였기 때문이지요. 아마 저도 원시인에 더 가까운 모양이에요. 밤에 듣는 시계 소리가 슬프기만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죽음은 생의 비밀, 누구나 다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제각기 숨기고 있다는 아이러니…   

오빠!
오빠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하늘을 나는 새를 보세요. 그 새는 정말 평화로운 것일까요? 새들은 바람과 독수리의 공포 속에서 필사의 날갯짓을 하는데도요. 살아있다는 것, 힘, 생명력…. 역도 선수가 무거운 바벨을 추켜올릴 때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쇠의 무게가 아니라 생명력의 무게일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아니 밤이 되면 울고 싶을 때가 많아요.

가끔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즐거울 때가 있죠. 신이 아무리 인간에게 비참한 형벌을 준다 해도, 눈물의 즐거움을 아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참된 비극은 슬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감추려는 그 행위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가만히 보면 인간이 상실한 자유 가운데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그 자유도 한몫 낀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세요? 

군에 계시려면 집이 참 그리우시겠어요. 더군다나 저처럼 울지도 못하고. 밤이면 꿈속 고향집을 꼭 찾아뵙길 기원하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Good Night.


To. 종인 오빠.

잿빛 하늘은 잔뜩 눈물을 머금고, 눈물은 마침내 바람을 타고 아스팔트 속으로 고여 드는 칠월.
기말고사가 끝나고 책상 위엔 풀이가 끝난 시험지가 하나둘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턴가 만날 수가 없게 된 잉에보르크 바흐만, 좀 허풍이 심한 랭보나 키르케고르의 찌푸린 얼굴. (Invitation au Voyage ; 여행에의 초대) 샤를 보들레르 시를 외던 선생님이, 그 목소리로 학생에 대해 불평의 잔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던 고달픈 칠월.

오빠.
사람들은 흔히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학생의 전부이겠죠. 그러나 뭔가 반항기 어린 소녀처럼 모든 게 짜증 납니다. ‘내 사랑 돈키호테’의 주제가를 멋지게 부르는 내 친구가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영어단어를 암기하고 있을 때면 더욱 우울합니다. 암기하는 능력, 기억력을 은행에 맡겨둔 채 예금액처럼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기억의 통장에 찍힌 낡은 문자들은 영원히 현찰로 바꾸지는 못할 테니까요.

걱정이 되네요. 칠월이 시작됐는데 보다 값진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나의 눈엔 그것이 아직도 보이지 않네요. 꿈에 본 나는 지금도 아직 어느 교정의 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랭보를 읽고 있었고,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대체 누가 나의 손에 교과서와 시험지를 들게 한 걸까요?
 ?!☆∂!¤??!&$@?!!%?

지난달 남겨 두고 온 햇빛과 함께, 여름 시작의 햇빛과 함께 생각하시는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from. 영우인이 되고픈 옥.


정말 무지무지 오래 있다가 받은 오빠의 편지는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강원도로 가셨다니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겠지만, 도시 한가운데 있는 저는 오빠가 너무 부럽습니다.

정말 이번 여름방학은 무척 의미가 있었어요. 제일 중요한 일은, 이건 극비인데 제게 아주 좋은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거죠. 하지만 문제점도 많아요.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거지꼴을 하고 있다가도 얘를 만날 때만 되면 친구가 입고 있던 옷마저 빌려 입고 나가야 되는 거 있죠.

 참, 사는 것이 한마디로 희한해요. 어떤 때는 제가 생각해도 사는 게 너무 비참하고 싫은 때가 있지만, 전 그러면서 크는 것이겠죠?

방학이 끝나갈 무렵, 아빠와 많은 대화를 했어요.
“아빠, 아빠는 어쩔 때 사는 게 싫었어요?”
아빠의 대답이 걸작이지요.
“글쎄, 때로는 삶에서 도피하려는 사람이 더러 있더구나. 하지만 그네들은 왜 그리 촌스럽고 구닥다리 같으냐.”

오빠. 
오빠께서도 지금 고생스러우시겠지만 많은 의미를 주고받는 뜻있는 시간들이 되세요. 저는 다가오는 겨울방학을 다시 기다려야겠어요. 사실, 무더운 여름이면 사람들이 의욕을 잃어버리는 게 사실이거든요.

얼마 전에 본 <개 같은 내 인생>이라는 스웨덴 영화에는 늙어 죽기 직전이면서도 색(色)을 밝히는 노인네가 나와요. 아내(그녀도 쭈그렁 할머니죠)에게 들키면 혼날만한 잡지를 시트 밑에 숨겨놨다가 주인공 ‘잉게마르’ 소년이 오면 선정적인 대목을 골라주며 읽어 달라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내는데, 무슨 주책이라거나 노추 같은 따위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도록 신선했습니다. 오히려 삶의 기쁨들이 떠올라 ‘이래서 인생은 아름답나니’ 하는 감명도 심어줬습니다. 

이제 여름도 반 이상이 지났습니다. 별들이 더 깊이 심오한 빛을 발해 가는 밤. 언제나 쉴 새 없이 질문하면서도 궁금해하는 조카가 부럽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순수―. 때 묻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부럽고도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날이 갈수록 뭔가 잃어가는 게 있는데… 오늘도 열심히 그 대답을 자문자답하며 서서히 꿈나라로 가야겠어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Bye. Bye.


제가 아무리 시계를 멈추게 해도 기어코 89년은 가고 만다는 걸 서럽도록 느끼며 펜을 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오빠나 저나 관객석으로 내려오는 패자보다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승자가 되도록 노력해요. 

세상에∼, 방학이 언제 오나 하고 교실 달력에 가위표를 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개학이 얼마만큼 남았나 가위표를 치는 제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요번 겨울방학엔 학원에 열심히 다니고, 하루에 한 번씩 미팅 건수 만들고, 취미생활 살리겠다던 계획은 작심삼일이 되었고, 오전 10시에 일어나 친구들과 잡담하니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네요. 항상 별다른 사건 없이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좀 특별한 사건이 생겼어요.

세상에! 오늘도 친구들이랑 놀다가 갑자기 ‘동양화 게임’ 얘기가 나왔어요. 드디어 애들이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화투판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한마디로 가정교육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에요. 제 수준은 민화투 정도인데 친구들은 고스톱으로 나가더군요. 정말 세대 차이를 느끼다 못해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키는 거 있죠. 이게 다 어른들 책임이라고 매도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워요.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이여. 이젠 정말 Go - Stop!

어쨌거나 고스톱 정도는 그나마 건전해요. 열흘 전 소집일에 학교에 갔더니 반 친구 한 명이 가출을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유달리 조숙했던 ○○이라는 친군데, 인간적으로 참 재미있는 아이였는데 가출을 했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았죠. 방학이 다 가기 전에 ○○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어째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이가 그렇고, 실연당했다고 두 끼 굶고 세 끼 얻어먹으러 오는 진희가 그렇고, 왜 열여덟에 결혼하면 안 되냐고 투덜대는 현이가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한심한 친구들이죠. 한심한 세상이고요. 그렇지만 더욱 답답한 건 대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제가 좀 유식하게 ‘사람은 왜 살까?’ 하고 물으면, 덕미는 ‘혹시나 하고 살지’, 현숙이는 ‘우정은 높게, 사랑은 낮게, 잔은 평등하게(?)’, 종희는 ‘왜, 인생관이 바꿨냐?’. 우문현답이 아닌 우문우답이지 뭐예요.

마치 생전 별 한번 안 본 사람이 TV 안테나 고치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그때 처음 별을 본 사람의 기분이랄까요. 늘 생각하지만 모순의 극치를 이룬 것 같은 세상이 정말이지 눈 시리도록 아름다워졌으면 정말 좋겠어요.

이젠 밤이 깊었네요. 본의 아니게 작년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일들을 많이 했어요. 오빠는 어떠셨는지요? 새해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만 펜을 놓을게요.

아름다운 일들만 생기시길….


3월이라! 
꾸깃꾸깃한 표정으로 웅크렸던 겨울도 지나고, 세월의 흐름을 절감케 하듯이 싱그러운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끝났습니다. 막상 3학년이 되니까 왠지 서글프고, 나이를 굉장히 먹은 것 같네요. 

저는 3학년이 된 기쁨보다는 정든 친구의 우수 어린 얼굴 때문에 몹시 울적했습니다. 아낌없이 주었고(?)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나눈 친구들과의 우정이었는데, 반이 갈리니까 너무나 아쉽고 서운한 거 있죠? 헤어졌어도 정말 못 잊을 겁니다. 여자들에겐 진실한 우정이 없다고 말하는 무식한 남자가 있다면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릴 거예요.(ㅎㅎ)

아무튼 90년도에는 제발 신나는 일만 생겼으면 좋겠네요. 어제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 그러더군요. 반미감정은 몹시 위험한 현상이라고, 보릿고개 때 먹을 것 많이 가져다준 것 생각나지 않느냐고. 그럴 때면 저는 가두행렬에서 외쳐대는 대학생들이 떠오릅니다. 소위 “양키 고 홈”을 외치는 그들이. 예전엔 버스가 1시간씩 막히고 최루탄 연기에 재채기와 눈물을 흘리며 억센 부산 사투리로 “뭣 땜시 데모하노!”를 연발하던 제가, 이제는 조금씩 이해해 가면서 그렇게 크나 봐요. 

3월.
3월은 많은 것들이 생각나요. 
새 학년, 입학, 이별, 그리고 좀 특별할진 몰라도 대학생들의 데모가 말입니다. 어쨌든 무엇이든 생각하며 지내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가끔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너무 무표정하고 생각이 없는 듯해 보여요. 무슨 표정이든 무슨 생각이든 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외롭다느니, 공허하다느니 하는 감정은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산성비가 내리는 현실 속에서 영화 장면처럼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가길 바라는 것처럼, 그건 하나의 사치일 거예요. 저도 지금 친구와의 이별로 외로워하는 걸 보니 사치스러운 앤가 봐요. 

오빠!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춥데요. 우리에겐 그 추위를 추위로 느끼기 전에, 새벽을 열기 위해 우리를 단련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할 3월일 거예요. 

오빠가 지금 군대에서 고생하는 지금이 아마도 ‘새벽’의 시기라고 생각돼요. 오빠가 그러셨죠. “피할 수 없거든 즐겨라”라고. 지금도 열심히 군 생활하실 군인 아저씨들을 생각하면 전 너무 행복한 애라는 걸 새삼 느껴요. 날이 참 따뜻하네요.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세요. 
그럼 이만 펜을 놓을게요. 

아디오스(Adios)!

∼코흘리개 1학년에서 노티(?) 나는 3학년이 된 옥이가.∼


군대를 전역하며 만든 추억록을 뒤적이다가, 덩달아 그 시절의 기억들도 민달팽이 풀잎 기듯 더듬어 본다. 기원전에 쓴 어떤 글이 우주를 오가는 지금에도 사람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곤 한다. 글이란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가슴을 드나드는 꼬마유령인가 보다. 오래 전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지만, 막 쪄낸 고구마처럼 훈훈하고 포실하다. 


군에 있을 때 펜팔을 하던 이가 몇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여섯 달 연락을 하다가 시들부들 해지고 말았다. 펜팔이란 글을 통해 교제를 하는 것인데, 글로서만 교제를 하는 것은 그리 길게 가지 못한다. 처음엔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군인에게 편지를 하지만, 꾸준함과 진지함을 가진 이들은 드문 것인지, 제풀에 소식이 끊은 이들이 많았다.


군대 시절에 편지를 주고받던 옥이는 새벽처럼 추운 내 군대 생활의 곱고 영롱한 아침이슬이었다. 여고생인 이 아이는 처음 약속대로 내가 이등병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나의 진솔한 글벗이 되어 주었다. 군에 매인 몸이라 맘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시절에, 밖에서 날아온 편지는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부산의 어느 곳에서 살고 있을 맘 도타운 내 군대 시절의 어린 글벗에게 손 모아 인사한다. 

고맙고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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