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람책은 사람이 책이다. 사람이 책처럼 독자에게 읽힌다. 종이책을 고른 후 책장을 넘기면서 거기에 박힌 글자를 눈으로 읽어가며 책의 내용을 알아가듯, 사람책을 만나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번에 읽은 사람책은 같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이 주무관이다. 매달 독서모임에서 만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났다. 책모임을 통해 그가 하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책에 대한 얘기였지만 이번엔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검은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그는 문학소년 분위기가 잔잔히 풍겼다. 그에게서 알베르 카뮈의 모습이 얼비쳤다. 급할 것 없는 여행객이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대화하듯 우리는 차분하게 말하며 서로를 읽었다.
독서는 그의 친근한 친구이자 즐거운 취미다. 그는 책을 읽으면 편안하고 재밌고 흥겹다. 책상 옆 책장에 나란히 꽂힌 책들은 다정한 친구요, 그 책을 꺼내서 펼쳐 읽으면 친구와 다감한 얘기를 나누는 듯 마음이 풍성해진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들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다. 이 작가들은 식상한 상황 대신 새롭고 신선한 면을 예리하면서도 남다르게 표현한다. 인간의 어둡고 악한 면을 굳이 비춰서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나름의 생각을 하게끔 한다. 특히 하이스미스의 ‘단편집’은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노인이 되었을 때의 감정, 알코올 중독자의 일상 등이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단편을 적었으며,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책읽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냐고 물었을 때 그는 위로라고 대답했다. 어릴 적 무척 외로웠던 그는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고 누나와 함께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끄럽지 않았다. 그에게 비처진 아버지는 지배자이지 위로자는 아니었다. 어린 소년은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책 속에는 수많은 자신이 있었다. 자신과 같이 외롭고 힘든 인물들이 있었다. 그 인물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위안을 얻었다. 그리하여 책은 그의 친근한 친구가 되었다. 늘 가까이에 있으며 마음을 나누는 어깨동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된다면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듯이 자신의 글을 통해 누군가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처럼 그의 글을 읽고 혼자가 아님을 알고, 친구가 곁에 있음을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될 거라고 했다.
읽기와 쓰기는 손바닥과 손등처럼 하나다. 읽기를 통해 위안을 얻은 사람은 같은 마음으로 쓰기를 통해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그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글쓰기의 계획은 없지만 마음 속에는 그런 욕망을 싹 틔우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글 쓰기를 기대한다. 헤어지며 그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그 마음에 내 격려 손길 하나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