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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Oct 02. 2020

어깨짐이 무거우면 바다로 가자

여행

시침이 11이라는 숫자에 이르지 못할 때 차표를 끊었건만 마네킹처럼 무표정한 매표원이 건넨 승차권에는 00:20이라는 시간이 찍혀있었다. 깊은 밤인데도 매표소 앞에는 강줄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고, 대합실에는 뭇사람이 옹기종기 앉아있거나 하릴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승차장으로 나왔다. 볼에 닿는 밤공기가 오이 속살처럼 촉촉했다. 고개를 젖히고 별을 찾았는데 잔별은커녕 샛별조차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진 밤하늘은 비 온 뒤의 흙탕물처럼 희끄무레했다. 훤칠한 가로등이 정월 대보름의 달집처럼 환한 빛을 쏘며 주변의 어둠을 삭이었다.


별이 보이지 않은 이유는 뭘까? 지금처럼 구름에 덮인 까닭도 아니요 공해 때문에 하늘이 흐려진 탓도 아니다. 우리 눈이 인공빛에 멀어서 자연빛을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부신 가로등 빛에 취한 눈동자는 한껏 움츠러져서 희미한 별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강한 빛을 비추면 비치는 그곳은 밝지만 그 주변은 어둡다. 가로등 아래에 서면 내 모습과 바닥은 훤히 보이지만 조금 떨어진 건물의 간판과 정원의 나무는 깜깜하여 보이지 않는다. 빛이 강할수록 동공은 작아지고 밤하늘이 환할수록 잔별이 스러진다. 전깃불 이전의 호롱불 시절엔 밤하늘의 별도 지금보다는 훨씬 밝고 맑았을 게다. 밤마다 뭇별이 별숲을 이루고, 눈동자는 별무리를 푸지게 담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방주처럼 네모진 버스는 물때에 맞춰 밀물이 들고 썰물이 나듯 터미널에 드나들었다. 이윽고 00:20을 가리키는 디지털시계를 단 버스가 눈에 불을 켜고 들어왔다. 디지털시계는 팥알처럼 붉고 둥근 빛을 내는 것이 점점이 박혀 숫자를 나타내었다. 두 눈을 똥그랗게 부라린 버스는 어둔 바닥을 샅샅이 살피며 서서히 터미널을 빠져나가더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어둠을 가르며 거침없이 달렸다. 밤에 서울을 떠난 버스는 아침이면 부산에 다다를 것이다. 버스는 승객을 태우고 타임머신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나 든다.


일정하게 출렁이는 버스는 승객들을 하나둘 잠재웠다. 처음에 여기저기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나브로 고른 숨소리로 바뀌고, 어떤 사람은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았다. 어둠을 헤치며 달리는 버스 안에는 기사와 나만이 깨어있었다.

젖힌 의자에 기댄 머리를 살짝 돌려 창 밖을 봤다. 가까이에 있는 가로등이 만화영화의 화면이 넘어가듯 부리나케 사라지고, 멀찌감치 산과 하늘은 벽에 걸린 그림처럼 서서히 움직였다. 서울을 벗어났건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별은 보이지 않았다. 두터운 옷을 겹겹이 걸친 양 마음이 갑갑하고 먹먹했다. 넓은 바다를 보고 싶었다.




서울을 나선 버스는 금강휴게소에서 가쁜 숨을 잠시 고른 뒤 한달음에 부산에 다다랐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게워냈듯 버스는 항구도시에 날 토해냈다. 서울 시내의 생울타리는 쥐똥나무인데 부산은 사철 내내 푸른 사철나무였다. 아직은 땅거미가 우글거리는 꼭두새벽 5시,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보고자 시내버스를 타고 태종대로 향했다.


서면에서 내려 진시장에서 태종대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대여섯의 승객만이 덜 깬 잠을 떨치며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데, 부산역에서 예닐곱의 승객들이 팔팔한 기운으로 버스에 올랐다. 들뜬 그들은 나처럼 밤도와 부산에 내려온 서울내기일 것이다. 두 여인이 내 옆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자기들끼리 두런거렸다. 이들은 이후 태종대를 거닐며 번번이 마주쳤다.


태종대 입구에는 매표소가 있으나 매표원은 없고 문은 열려 있었다. 근방의 주민들에게 아침운동을 하도록 개방한 듯 가벼운 차림으로 걷거나 달리는 동네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장난감 기차의 모노레일처럼 해안을 끼고도는 산책로를 따라 건들건들 걸었다. 사철나무,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가 길가에 촘촘히 심겨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스레피나무는 태종대엔 흔히 보였다.


자갈마당, 등대, 망부석이라고 적힌 팻말을 따라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길가의 돌에는 갖은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이곳을 다녀갔을 그네들은 왜 바득바득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까? 영원히 함께 하자고 나란히 적힌 이름의 주인공들은 지금도 나란히 붙어 다닐까? 그네들은 기분대로 돌에 낙서를 끼적거렸지만 그걸 보는 나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난 수만 년 전에 만들어진 그 돌의 역사와 변화를 보고 싶었지 그들이 이곳에 놀다간 흔적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층층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각진 너럭바위가 있고, 그 아래 까마득한 밑에는 바닷물이 연신 밀려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얗게 부서졌다. 절벽의 끄트머리에 서니 뜨끔했다. 뛰어내리면 한참 지난 후에 바다에 빠질 정도로 높았다. 멀리 바다 위에 큰 배가 물 위에 머물러 있고, 가까이의 작은 고깃배는 나뭇잎처럼 둥실거렸다. 하늘은 희뿌연 구름이 가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가름할 수 없었다. 물론 해돋이도 볼 수 없었다. 구름 너머로 아침해가 떠오른 것 같았으나, 그건 지레짐작일 뿐 해는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었다.


그러다 뜨막하던 해가 구름 사이로 빼꼼 모습을 내밀더니 느닷없이 빛살을 터뜨렸다. 금세 바다는 환해졌고 으슥하던 세상은 술렁거렸다. 거침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받으며 두 시간을 꼬박 머물렀다. 그새 바다 위에선 배들이 오가고 바위에도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어찌나 바다는 저렇게도 푸르며 깊으며 넓을까! 저 바다에 내 어깨짐을 푼들 끄떡이기나 할까? 내가 붉은 오줌을 갈겨도 바다는 여전히 푸를 것이며, 응어리진 돌멩이를 던져도 그 깊이가 줄지 않을 것이며, 한 귀퉁이 떼어내도 자리가 줄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지르고 흐느껴도 파도는 더 큰소리로 내 소란을 감싸 안으며 아랑곳없이 출렁인다. 


이루지 못했거나 이루어야 할 숙제가 앙금 되어 짐이 되어 어깨에 쌓일 때 이 벼랑에 서서 그것을 바다에 던져버리자. 파도는 개구리가 파리 낚아채듯 그 짐을 삼킬 것이다. 내 짐이 바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담 없이 버려도 된다. 바다에게 해될까 봐 저어할 필요 없다. 바다는 우리가 지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나름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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