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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an 23. 2024

적지만 적잖은 몰리브덴

[양분] 몰리브덴

몰리브덴도 비료다. 

작물이 잘 자라도록 논밭에 주는 그 비료 맞다. 비료는 요리에 넣는 조미료처럼, 모닥불에 붓는 석유처럼, 밀가루 반죽에 섞는 효모처럼 요술 부리듯 식물을 폭풍 성장시키는 마법사의 돌이다. 비실비실 시들던 배추를 다시 생생하게 하고, 주접 들어 수그린 옥수수를 다시 꼿꼿하게 세운다. 이런 마법사의 돌과 같은 비료로서 몰리브덴은 낯설다. 낯익은 비료로는 요소, 용성인비, 황산가리다. 이들 비료의 성분은 질소, 인, 칼륨이며 그 외 칼슘, 마그네슘, 황 등도 있지만 이들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몰리브덴은 비료로서 도무지 낯설다.


몰리브덴은 공장에서 금속 합금으로 사용하는 물질이다. 몰리브덴은 텅스텐처럼 녹는점이 2,610℃로 매우 높은 은백색의 단단한 전이 금속으로 열전도율이 좋고 열팽창률이 낮아 주로 합금과 촉매제로 쓰인다. 이런 공업용 몰리브덴이 농업용으로도 쓰인다는 말은 생소할 따름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몰리브덴은 작물의 필수원소인 것이다.


농작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원소를 '필수원소'라고 하는데, 이 원소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면 작물은 온전한 생장을 할 수 없다. 필수원소가 없으면 줄기가 작든지 잎이 시들든지 꽃이 떨어지든지 열매가 부실하든지 어느 하나는 모자라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농부는 필수원소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농작물에 필수원소가 든 비료를 적절히 챙겨준다.


필수원소는 17가지 원소인데 그중에 몰리브덴도 포함된다. 워낙 적은 양이라 없어도 될 듯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원소가 필수원소다. 양이 적다고 질도 낮은 것은 아니다. 크기가 작다고 기능이 적은 것이 아니듯이. 몰리브덴은 식물체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분이고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질소, 인, 칼륨 비료처럼 많이 줘야 하는 다량원소가 아닌 극히 적게 줘도 되는 미량원소지만, 식물체에 존재하고 있으며, 없으면 안 되는 양분이다.


우리 사람도 몸이 자라고 움직이려면 영양소가 필요하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은 많은 양이 필요한 다량 영양소이고 비타민이나 미네랄은 적은 양만 있어도 되는 미량 영양소이다. 미량 영양소는 정말 조금만 있으면 된다. 아주 조금이면 충분하다. 조금 이상이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없어도 될 만큼 적은 양이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미량 영양소다. 미량 영양소 중에 크롬은 인슐린과 결합하여 혈액이 있는 포도당을 근육과 조직의 세포 안으로 옮겨주는 것을 도와준다. 크롬은 인간의 몸에 분명히 필요하지만 아주 조금만 있어야 약이 된다. 이 조금을 넘어서면 오히려 독이 된다. 작물에겐 몰리브덴이 그러하다.    


몰리브덴은 정말 조금만 있으면 된다. 17가지 필수원소 중에 가장 적은 양을 필요로 하는 게 몰리브덴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한 교실의 아이들 키처럼 고만고만한 게 아니라 엄마 뱃속의 태아와 다 자란 어른만큼이나 차이 난다. 가장 많이 주는 질소비료는 여행가방 한가득이라면 가장 적게 주는 몰리브덴은 겨우 찻술 하나다.


질소비료는 작물이 요구하는 양이 워낙 많기에 해마다 많은 양을 보태줘야 하지만 몰리브덴을 굳이 비료로 논밭에 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료를 주는 까닭은 작물에게 부족한 성분을 채우고자 함이니 부족하지 않으면 줄 필요가 없다. 흙에는 비록 그 양은 적을지라도 다양한 양분들이 들어있다. 그러기에 웬만한 미량원소는 흙에서 충당이 된다. 굳이 챙겨줄 필요가 없다.  


일반 작물에서 비료로서 몰리브덴은 무시해도 된다. 건강한 사람이 영양제로서 크롬을 무시해도 되듯. 하지만 당뇨병 환자에겐 크롬이 영양제로서 인슐린의 작용을 도와주듯 어느 작물은 몰리브덴이 비료로서 보탬이 된다. 바로 콩이다.


콩농사를 하면서 몰리브덴을 비료로 주기도 한다. 일반 작물은 몰리브덴 비료를 줘도 달라지는 게 없어 보이는데 콩을 재배할 때 몰리브덴 비료를 주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콩 안에 들어있는 몰리브덴 함량은 일반 식물에 비해 열 배나 많이 들어 있으며, 몰리브덴의 필요량은 다른 작물에 비해 백 배나 높다. 콩이 다른 작물보다 몰리브덴을 백 배나 많이 찾는 까닭은 뭘까? 몰리브덴은 콩의 수확량을 높여준다.


몰리브덴이 콩의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이유는 콩의 뿌리가 생기고 자라는 것을 촉진하여 직접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간접적으로 콩의 일꾼인 뿌리혹박테리아를 활성화한다. 콩과 뿌리혹박테리아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돕고 돕는 공생관계다.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붙잡아서 콩에게 건네주기에 질소질비료를 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질소가 공급되면 콩잎의 엽록소가 증가하여 광합성 능력이 향상한다. 몰리브덴은 이 뿌리혹박테리아가 생기고 자라는 것을 촉진한다.


이런 몰리브덴의 효과 때문에 콩농사를 지으면서 몰리브덴을 비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몰리브덴을 비료로 사용할 때는 보통 종자에 처리하는 종비(種肥)로 사용된다. 종비로 사용할 때는 콩 1kg에 몰리브덴산암모늄 2g을 쓴다. 뜨거운 물에 몰리브덴산암모늄을 넣고 저어서 녹인 후 물이 식으면 분무기에 담아 콩 종자에 뿌리면서 콩씨 표면에 묻힌다. 몰리브덴산암모늄 용액이 콩알에 흡수되면 그늘에서 말린 후 파종한다. 


엽면시비로도 줄 수 있는데 0.05~0.1% 몰리브덴산암모늄 용액을 콩잎에 뿌려준다. 엽면시비 시기는 콩꽃이 피기 시작할 때다. 주의할 것은 흙에 준 몰리브덴은 씻겨나가지 않고 토양에 남아있으므로 과량으로 사용하거나 자주 주면 토양에 축적되어 콩이 몰리브덴 중독현상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몰리브덴을 과량으로 사용해선 안되며, 또 같은 밭에 매년 사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비료는 각 성분마다 주는 양도 중요하지만 성분 간의 비율도 중요하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밥과 국과 반찬의 비율이 알맞아야 입안에서 밥도 맛있고 장에서 양분 흡수도 잘되어 몸이 균형 있게 성장하듯이 작물도 비료의 성분 비율이 중요하다. 벼의 경우 주요 비료인 질소, 인, 칼륨의 비율은 5:3:4 정도다. 


작물이 자라는데 필수적인 원소의 상대적인 양을 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원소가 몰리브덴이다. 필수원소 중에 몰리브덴이 가장 소량이므로 몰리브덴을 1로 기준 삼아 다른 원소를 몇 배로 주는지 설정한다. 작물마다 적잖은 차이가 있지만 작물이 요구하는 필수원소의 상대적인 양을 볼 때 몰리브덴을 '1'이라고 하면 붕소는 '200'이고 마그네슘은 '20,000'이고 질소는 '150,000'이다.  양분 중에 비료로서 가장 많은 양을 챙겨줘야 하는 원소가 질소다. 그리고 가장 적게 줘도 되는 원소가 몰리브덴이다. 콩농사가 아니라면 농사를 지으면서 굳이 몰리브덴을 비료로까지 챙겨 줄 필요는 없다.


필수로 존재는 하지만 너무 미미하여 존재감이 없는 것들은 참 많다. 그러기에 신경 쓰지 않고 소홀하게 여기는 아주 소소한 존재 그리고 활동들을 생각해 본다. 비료의 질소, 인, 칼륨처럼 다량원소로서 존재감이 큰 것을 우리 몸의 장기로 비유하자면 뇌, 심장, 허파일 것이다. 작물의 필수원소 중에 가장 적은 몰리브덴은 새끼발가락의 발톱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평상시에 잘 걷던 사람도 새끼발가락 발톱이 빠지면 절룩거린다. 온몸이 기우뚱한다. 그깟 새끼발가락의 발톱 하나 때문에.


크고 중요한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챙긴다. 반면에 작고 미미한 것은 말하지 않으면 챙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들에는 뭐가 있을까? 수많은 친구 중의 한 벗일 수도 있고, 수많은 물건 중에 한 소품을 수도 있고, 수많은 시간 중에 한 순간일 수도 있다. 몰리브덴이 비록 적은 양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원소라면 나의 일상 중에 잠깐이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활동으로는 뭐가 있을까? 이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작물마다 요구하는 양분의 요구량이 다르듯이.


나의 하루는 24시간이다. 가장 많은 시간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인데 8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부지런히 일한다. 그다음 많은 시간은 잠자는 시간으로 7시간이다. 잠을 자는 것은 다시 움직이기 위한 충전이다. 다음은 식사하고 이동하고 얘기하고 차 마시고 책 읽는 등 다양한 활동에 시간을 두루두루 나눠서 쓴다. 누군가는 운동하는 것에 적잖은 시간을 쓰는데 나는 전혀 시간을 내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있어 운동은 작물에게 있어 몰리브덴과 같다. 내 할동계획 중에 운동은 아예 없으니까.


새해 다짐으로 한 해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내 몸의 건강을 위한 운동도 계획에 포함했다. 남들처럼 거창하게 만보 걷기, 헬스 레슨 등이 아니다. 아주 소소한 계획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국민체조 1회, 팔굽혀펴기 20회, 윗몸일으키기 20회다. 이들 모두 해도 기껏해야 5분이면 마칠 수 있는 활동이다. 하루 24시간은 1,440분이니 5분이면 하루의 288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올해 내 몸의 건강을 위해 잠깐 활동하는 5분을 콩의 몰리브덴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8시간은 일하고 7시간은 잠자고 2시간은 출퇴근하고 1시간은 밥 먹는 나의 하루 일과 중에 다만 5분만이라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새해 첫날부터 시작했고 1월 3일은 넘겼으니 작심삼일은 극복했다. 열흘이 두 번이나 지났으니 습관으로 배어드는 중이다. 처음엔 스무 개의 팔굽혀펴기가 천근만근이더니 이제는 어린아이 들어 안듯 가뿐하다. 시간도 단축되어 5분이 채 안 걸리기도 한다.


'주요'에 밀린 '기타 등등'.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빠뜨리지 않고 챙겼던 '주요' 비료인 질소와 달리 관심 밖이던 '기타 등등' 비료인 몰리브덴을 생각하며 '필수'인데 '미미'하여 무심했던 나의 관심사항과 행동들을 살펴본다. 24시간 중 '기타 등등' 5분이 나에게는 국민체조지만 누군가에게는 시 한 편 낭독이요,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이요, 연로한 부모님께 드리는 전화 한 통이요, 한결같이 반겨주는 반려견과의 교감일 것이다. 


농작물에게 있어 몰리브덴은 붕소에 비해 2백 분의 1만 필요하고 질소에 비해서는 15만 분의 1만 필요한 극히 미미한 양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원소이기에 없다면 챙겨야만 하듯이 내 몸에, 내 일상에, 내 관계에 미미하지만 꼭 필요한 '기타 등등'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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