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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5. 2020

새끼 생각에 물불 안 가리는 어미

기러기

시골 큰형네 집 앞엔 가축우리가 있다. 닭, 오리, 기러기가 한울타리에서 산다. 가장 큰 무리인 열댓 마리 닭은 우리 안을 거침없이 활보하고, 단 두 마리인 기러기 부부는 주눅 들어 구석탱이에 치우쳤다. 수탉은 꼿꼿한 볏처럼 늘 기세 등등하다. 똥그란 눈알을 부라리며 기러기를 위협하곤 했다. 기러기는 그 울타리 안에서 타성바지인 것이다. 매일 모이를 주는 큰형은 이런 기러기가 안쓰러워 먹이를 더 챙겨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매양 멀찌감치 달아났다가 형이 자리를 뜨면 비로소 주춤주춤 다가오는 겁쟁이다. 


수탉 중에서 우두머리는 울안의 감나무 가지에 올라 잠을 자는데, 가끔은 날개를 푸닥거리며 울타리를 넘는 객기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닭보다는 더 잘 날 수 있는 기러기는 그저 울안의 하늘만 제 세상으로 여기며 산다. 날지 못하도록 깃털을 조금 가위질했지만, 그래도 날 생각이면 낮은 울타리 정도는 얼마든지 넘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매일 큰형은 우리 안에서 달걀을 거둬서 반찬으로 요긴하게 먹는다. 수탉과 흘레붙어 생긴 유정란이기에 암탉이 품으면 병아리를 깔 수 있지만, 달걀은 번번이 큰형의 눈에 띄어 암탉이 알을 품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늘 구석에 있던 기러기는 큰형의 눈에 별로 띄지 않아 알을 품을 수 있었다. 기러기는 여남은 마리의 새끼를 깠다.

큰형은 기러기 새끼 보는 즐거움에 더 자주 텃밭 우리를 찾았다. 앙증맞은 기러기 새끼들이 제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며 노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했다. 


큰형이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텃밭에서 삐악삐악 울음소리와 요란하게 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다가 기러기 새끼 세 마리가 울타리 틈새로 빠져나왔다가 다시 어미에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삐악 대고, 어미는 새끼를 데려오려고 연신 울타리의 망에 부딪히며 푸닥거렸다.

어미 기러기의 눈에는 새끼 기러기 외에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여느 때 같으면 큰형이 울타리로 다가가면 멀찌감치 달아났던 기러기는, 큰형이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주변에서 새끼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퍼드덕거렸다. 의기양양하던 수탉들은 어미 기러기의 막무가내에 밀려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큰형은 요리조리 피하는 기러기 새끼들을 겨우 붙잡아 우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기러기 어미는 사생결단으로 날갯짓하여 단숨에 울타리를 넘어버렸다. 아마도 큰형이 제 새끼를 해하는 줄 알고 미친 듯이 큰형에게 달려든 것이다. 이미 상황이 끝난 줄 알았던 큰형은 또 다른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밖에 있던 새끼를 안으로 들여놨는데 그새 어미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어미를 우리 안으로 넣으려고 다가가자 단박에 울타리를 넘던 그 무서운 기세는 금세 꺾이고 도망 다니기에 바쁘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울타리를 넘고 큰형을 공격까지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도로 겁쟁이 기러기가 되었다. 훌쩍 뛰어넘은 울타리를 다시 넘지는 못하고 바닥에서 들어갈 구멍을 찾으며 계속 허둥거렸다. 

시골 텃밭 가축우리엔 겁쟁이 헐크 기러기가 산다. 


시골 텃밭의 기러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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