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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4. 2020

누워 자는 나무

아까시나무

유치원의 아이들이 상아빛 도화지에 때깔 좋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그림을 둘러보다가 한 아이 앞에 섰다. 그 아이는 숲의 상수리나무들을 그렸는데, 나무들이 모두 자빠져있다. 선생님은 의아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아이는 다소곳이 말했다.


“지금은 달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밤이어요. 해님이 다스리던 낮에 내내 서있느라 힘들었던 나무들이 밤이 되자 누워서 자고 있어요.”


짜장 앙증스러운 동심이다. 도시의 어른들이 잿빛 머릿속에 꿍꿍이속 생각을 그린다. 신은 어른들의 몽상을 살피며 다니다가 한 어른 앞에서 멈추었다. 그 어른은 남산의 아까시나무를 그렸는데, 나무들이 모두 자빠져있다. 신은 의아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어른은 우쭐대며 말했다.


“나는 우아한 소나무를 사랑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까시나무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놈의 아까시나무 때문에 소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까시나무를 베어낼 생각입니다.”


짜장 반지르르한 억지다. 아이와 어른은 똑같이 누워있는 나무를 그렸다. 그러나 아이는 나무를 위하는 맘으로, 어른은 자신을 위하는 맘으로 자빠져 있는 나무를 그렸다.




서울 사람들은 남산에 무장 번지는 아까시나무를 천덕꾸러기 대하듯 탐탁잖게 여긴다. 아까시나무가 남산의 그 많던 소나무를 죽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산 소나무를 죽게 한 것은 아까시나무가 아닌 서울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공기와 물과 흙을 더럽히는 바람에 공해에 약한 소나무는 차마 배기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소나무가 죽은 그 자리에 공해에 좀 강한 아까시나무가 그나마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남산에 아까시나무가 무장 번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민둥산보다는 났다. 도시 시민은 아까시나무를 탓하기 전에 시골 농부의 농사짓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남새밭을 가꾸는 농부는 갈이질, 거름주기, 김매기, 물잡이, 북주기 등을 하여 푸성귀가 풋풋하고 옹골지게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 저수지 물이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빠지면 물고기는 사라지고 개구리만 득실거리는 것은 당연한 판, 이 물고기의 죽음을 개구리 탓으로 돌릴 수 없듯이 소나무의 사라짐을 아까시나무의 짓이라고 덤터기를 씌울 수는 없다.


아까시나무 꽃과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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