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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3. 2020

토끼 잡은 예비 경찰

산토끼

핸드폰이 노래한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굴까?


“형, 저예요.”

조대창이다. 그는 내가 가까이하는 경찰대학 4학년 학생(16기)이다.


“아침 일찍 전화해서 미안해요.”

굳이 미안할 것까진 없는데. 대창이는 무척 들떠있다. 그는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며 약간은 더듬거리기까지 하는데, 지금이 그렇다.


“형, 나 산토끼 잡았어요. 흐흐흐.”

엉? 웬 산토끼! 산토끼가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나? 혹 있다 하더라도 그리 쉽사리 잡히진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묻기도 전에 덧붙여 설명했다.


“아침밥을 먹고 중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토끼가 나타났어요. 우-우 하며 들이몰아 금방 잡았어요. 솜처럼 하얀 토끼여요.”

아빠 따라 저수지에 낚시하러 간 꼬마가 처음으로 물고기를 잡은 것처럼 대창이는 신나서 호들갑을 떨었다.


“형, 토끼가 보이기에 잡긴 잡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기는 동아리방인데, 좀 있으면 수업받으러 가야 해요. 어떡하죠? 형이 키울래요?”

기쁨과 걱정은 어깨동무하고 같이 오는가 보다. 예상치 않았던 토끼가 대창에게는 계륵(鷄肋)이요, 뜨거운 감자다. 난 찬물을 끼얹듯 그의 호들갑부터 잠재웠다.


“대창아, 그 토끼는 아마 중앙공급실의 백 씨 것일 거야. 백 씨는 상징탑 뒤에서 토끼를 기르고 있거든.”

상징탑 뒤편은 스트로브잣나무가 무성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중운동장 모퉁이 부근에서 백 씨는 취미 삼아 토끼를 기르고 있었다. 백 씨에게 전화하여 알아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반 백년 전, 경찰대학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 법화산 기슭에도 산토끼들이 무척 설쳤을 것이다.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이 총과 덫을 들고 이 산을 뒤지고 다녔겠지. 그 당시 토끼잡이는 대단히 재밌는 놀이이자 고픈 배를 채워주는 귀한 밥벌이였다.


어릴 적에 동네 형들을 따라 토끼몰이를 나섰던 것이 생각난다.

뒷다리가 길어 오르막은 잘 오르지만 내리막은 서툰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산기슭에서 푸새를 훑어가며 슬슬 산마루로 토끼를 몰아간다. 토끼들이 산마루로 오르면 정상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설쳐대며 토끼를 산기슭으로 내리몰며 잡는다.


내 고향마을은 야산에 에둘러 있었다. 나무만 없다면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고 부를 정도로 야트막한 솔숲이다. 그 숲정이에는 토끼, 노루들이 살았었는데, 야산개발을 한답시고 솔밭을 남새밭으로 바꾸었다. 그 후 난 산토끼를 보지 못했다. 


산토끼를 잡고 싶다. 대창이가 토끼를 잡으며 느꼈던 벅찬 흥분과 설레는 마음을 나도 다시 느끼고 싶다. 산토끼를 잡을 수, 아니 구경만이라도 할 수 있을까?



20세기 말, 경찰대학 근무할 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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