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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2. 2020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아버지

“시계불알처럼 부지런히 다니지만 손에 남는 건 빈털터리여!”

같이 점 보러 갔던 이웃들은 깔깔거렸다. 어머니는 무안하고 속상했다. 용하다는 점집이 있으니 같이 점이나 보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점쟁이에게 들은 아버지의 점괘다. 내 초등학교 다닐 때니 벌써 강산이 네 번은 변한 지난 시절의 이야기다. 


그랬다. 점괘대로 아버지는 부지런히 일하셨지만 남은 것은 속 빈 강정뿐이었다. 어머니는 그 당시엔 점쟁이의 말이 언짢았지만 그 말이 맞으니 점쟁이가 용하긴 용하다고 하셨다. 마음 착해 남 돕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매정하지 못해 보증 잘못 서는 바람에 내 빚도 아닌 남의 빚을 갚느라 10년 넘게 가슴앓이를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 탓에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갔다. 도시살이도 만만치 않지만 일을 하면 꼬박꼬박 월급이라는 게 손에 잡혔다. 그 월급의 대부분은 고향에서부터 달고 온 보증빚을 떼느라 썼지만 시골살이보다는 나았다.


타향살이 십여 년, 아버지는 환갑이 지나자 일자리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것은 동물원 철창 안의 늙은 호랑이와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집 옆 구멍가게에서 외상술을 드시고 근처 공원에 배회하시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아파트처럼 틀 잡힌 도시는 일하는 이들의 공간이다. 일 없는 이는 틀에 들지 못한 우수리일 뿐이다. 오직 몸으로만 일하셨던 아버지는 그 몸이 사회에서 필요 없어지자 둠벙에 떠도는 빈 우렁이 신세였다. 


자식의 입장에서 그런 아버지를 보는 것도 편치 않았다. 아버지더러 운동을 하시라고, 신문이나 책을 보시라고, 등산을 하시라고 권하는 것이 어쭙잖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에서 살던 분이라 도시에서 일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그런데 일을 할 수 없는 갑작스런 자유는 구속보다 더한 부자유였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평소 하던 것 외에 뭘 할 수 있겠는가? 날던 독수리도 새장에 오래 갇히면 잘 날지 못하게 된다. 닭장의 닭을 풀어놓는다고 해서 닭이 숲으로 날아가지는 못한다. 


아버지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시든 화초에 물을 주면 되살아나듯 아버지의 혈색이 되살아났다. 도시에서 폐인처럼 지내시던 아버지는 시골에 오니 숨은 기량을 뽐내는 도인이 되셨다. 아침마다 일어나시면 삽을 어깨에 메고 들로 나가셨다. 딱히 일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마실 가듯 들로 다녀오신 것이 낙이셨다. 

어릴 적부터 꼴 베던 게 몸에 배어 집 뒤 묏등의 풀도 잘 정리했다. 그 풀을 염소 먹이로도 주고 아궁이 땔감으로도 사용했다. 고목에 돋는 움싹처럼 아버지는 새 삶을 사셨다. 환갑 때 찍은 사진과 칠순 때 찍은 사진은 서로 바뀐 것 같다. 오히려 칠순 때의 모습이 더 좋아 보인다. 


아버지 칠순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라면 애오라지 술 뿐이었다. 눈을 뜨시자마자 찾으시는 술은 종일 아버지를 지배했다. 술에 몸을 맡길 때 그 취기에 세상을 잊고 사실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일들을 잊기에는 술만 한 것이 없지 않은가. 아버지가 마신 술을 합치면 얼마나 될까? 내 기억에 아버지는 단 하루도 술 없이 사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술 바다에 사는 술고래시다. 


아버지가 세상 떠나신 지도 십여 년이 지났다. 밖에서 술을 드시고 동네 고샅에 들어서면서 부르시던 노랫소리가 귀에 맴돈다.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이었을까? 아버지의 술타령은 바다였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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