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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1. 2020

목수목사

큰형

큰형은 시골교회 목사다. 목사이자 목수다. 예배당 강단의 강대상과 의자를 큰형이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태풍에 넘어간 아름드리 소나무를 가져와서 체인 톱으로 자르고 파내고 그라인더로 갈고 다듬어 죽어버린 나무를 새롭게 살려냈다. 다시 태어난 소나무는 나무가 아닌 가구다. 소나무는 자라면서 생각이나 했을까, 자기가 신께 예배드리는 강대상의 성물이 되리라고! 


어느 날, 심한 바람이 나무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급기야는 쓰러뜨리고 말았다. 소나무는 평생 감추었던 뿌리마저 드러낸 채 자빠진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난 죽었구나 했겠지. 그래, 죽었다. 넘어가자마자 바로 세우고 지지대를 대주었다면 어쩜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나무는 외면당했다. 일으켜 세우기엔 너무 컸고 다시 살리기엔 너무 늙었다. 살 가망이 희박한 나무에겐 신경 쓰지 않았다. 고꾸라진 나무는 며칠간 길가에 방치되었다. 차에 치인 고라니처럼. 


이 소나무는 대우받는 존재였다. 나무 나이가 반 세기가 넘었고 몸통 둘레가 한 아름 가웃 되었으니 군청에서 관리수로 지정하여 돌보던 나무였다. 큰형은 읍내를 오가며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우람하고 번듯한 자태에 감탄하곤 했었다. 그 나무는 큰형이 태어나기 전에 뿌리를 내렸으며, 갖은 태풍과 산불과 폭설을 견디며 위풍당당 자리했다. 하지만 지난 태풍에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KO 된 것이다. 


쓰러진 채 방치된 나무를 보고 큰형은 군청에 문의했다. 군청에서 관리하던 나무가 쓰러졌는데 왜 그대로 두냐고 하니 미처 처리하지 못해 그렇다는 것이다. 보호받던 나무지만 쓰러지니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었다. 형은 그 나무를 내가 치워도 되냐고 물었다. 군 담당자는 선뜻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그 나무는 군청에서 폐기물로 처리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보호 대상이 처리 대상이 된 것이다. 


큰형은 쓰러진 나무를 봤다. 그 나무에는 새로운 것이 있었다. 살아있는 소나무는 아니지만 또다른 나무로 거듭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나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숨은 모습을 꺼내 주고 싶었다. 대리석 조각가는 돌덩이 안에 있던 형상을 꺼내 주는 것이 조각이라 했다. 목수는 나무의 속에 있는 새로운 나무를 드러내는 것이 목수다. 


그 소나무는 몇 토막의 나눠져서 트럭에 실려 교회 마당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형은 나무를 다듬었다. 유적지에서 고고학자가 붓으로 흙을 털어내며 유물을 찾아내듯,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고 결따라 모양을 찾아가는 큰형은 드디어 새로운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나무에서 새로운 나무를 발견하듯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찾아주는 것이 목사인가보다. 큰 형님은 동네 사람이 다 소중한 나무로 보인단다. 사람 속의 새 사람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란다. 큰형은 서두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 안의 새 사람이 나오려고 할 때 산파처럼 손을 내밀뿐이다. 억지로 끄집어낼 생각은 없다. 떴다방처럼 회오리를 일으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 어귀 정자 그늘처럼 살갑게 함께 한다. 


큰형이 그 마을에 간지도 30년 가까이 되었다. 목사지만 목수처럼 산 큰형. 예수님도 30년은 목수의 아들이자 목수였다. 이래서 목사가 목수인 게 자연스럽게 여겨지나? 큰형은 목수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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