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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1. 2020

불쌈 구경

모닥불

불구경은 세상 재밌는 놀이다. 불씨름이 벌어질 자리는 돌절구처럼 움푹하다. 구경꾼은 수챗구멍으로 빨려드는 소용돌이 물길처럼 안으로 모여든다. 그러다가 주춤거리며 모닥불에서 서너 발치 거리 두고 달무리처럼 둘러선다. 


불씨름 선수들이 등장한다. 선수는 장작개비다. 바짝 마른 장작도 있고 아직 물기 덜 빠진 희나리도 있다. 참나무, 소나무, 아까시나무. 나름대로 불땀 내로라하는 장작들이다. 씨름 선수가 샅바를 잡고 버티기를 하듯 장작개비가 얼기설기 놓인다. 그 틈바구니로 불쏘시개 솔가리를 집어넣고 불을 붙인다. 연기를 피우며 미적거리더니 하나둘 불이 붙었다. 


부지깽이는 심판이다. 부지깽이는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불씨를 거든다. 버티던 장작이 타닥타닥 불똥을 튕기면서 타오른다. 점차 열기가 등등하다. 둘러 선 구경꾼들이 그 기세에 한 발짝 뒷걸음친다. 뱀 혀처럼 갈라진 불혀가 장작개비를 골골샅샅이 핥는다. 장작개비는 불길에 껍질이 스러지고 속살마저 까발려졌다. 기세 등등 불길은 싸난 개가 물 듯 달려들다가 목줄에 걸려 멈추듯, 불길을 뻗치려고 발광하지만 장작개비를 벗어나면 끈 떨어진 연이다. 뱀이 혀를 뻗어야 한 치도 못 뻗듯 불길은 모닥불에서 석 자를 벗어날 순 없다. 


달이 밝을수록 달무리가 퍼지듯 불기운이 셀수록 구경꾼은 멀찌감치 벌어진다. 이젠 불싸움을 말리 수 없다. 그야말로 난투장이다. 장작들은 불땀을 치받으며 자신은 물론 곁의 장작들을 태운다. 서로가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불은 일 초도 머물지 않고 허우적거린다. 팔을 휘젓지 않으면 가라앉은 수영선수처럼 잉걸불은 쉼 없이 타올랐다. 씨름판의 모래가 튀기듯 모닥불의 불똥이 팝콘처럼 튄다. 그 불똥에 구경꾼의 옷은 구멍이 나기도 한다. 


누가 이길까? 구경꾼이 불싸움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요란 떨던 소나기도 한때이듯 한소끔 모닥불도 잦아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질긴 동아줄처럼 명줄이 길다. 불꽃이 수그러든 후에도 숯불은 불기운을 이글이글 뿜어댄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구경꾼은 모닥불로 조금씩 다가선다. 


불싸움을 끝나간다. 보통의 경기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불싸움은 일찍 죽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 죽음은 타다 만 까만 숯이 아니라 완전히 타서 하얀 재로 남는 것이다.

나무는 온데간데없다. 다만 재뿐이다. 그 재를 거름 삼아 나무에 뿌려준다. 나무는 재를 양분 삼아 자랄 것이다. 그리고 언제 가는 다시 장작이 되어 불이 되고 재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밤하늘의 별은 말없이 총총하다. 이따금 별똥이 빗금 그으며 떨어진다.


모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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