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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4. 2020

한 사람이 온 사람이다

방역초소

밤이 스르르 까매질수록 별빛은 더욱 총총해진다. 하늘 한가운데엔 오리온이 자리하고 언저리엔 북두칠성이 머무른다. 밤이 깊어가니 산이 달을 토한다. 복숭아 닮은 하현달은 가무잡잡한 밤하늘을 희뜩하게 지우며 하늘 정수리를 향해 달팽이처럼 꼼작 꼼작 기어간다.


날이 추워 눈이 시린 탓일까? 하얀 달이 시려 보인다. 정작 겨우내 입어보지도 않고 장롱 안에 고이 간직한 두툼한 잠바를 꽃샘추위에 꺼내 입었건만, 시샘 추위가 몰고 온 찬바람은 미꾸라지처럼 몸 안으로 파고들어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한다. 바람이 거셀수록 모닥불의 잉걸은 기세 등등 타오르고, 자잘한 불꽃들이 바람 따라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이따금 두 눈을 부라리며 달려오는 차량은 초소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 슬그머니 지나치면 길 양편에 진을 치고 있던 분무기는 화살을 쏘아대는 병사처럼 소독약을 뿜어댄다. 자정 무렵이 되자 달은 어느새 머리 위에 와있고,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다. 분무기에서 흘러나온 물기가 아스팔트에서 얼어붙기에 염화칼슘을 바닥에 뿌리고 분무기를 꼈다. 이 추위라면 혹시 차에 매달렸던 조류독감의 바이러스도 얼어 죽지 않을까?


인근의 안성시에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안성에서 이천으로 통하는 세 곳의 길목에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지나가는 차량마다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곳으로부터 인근의 양계장에 있는 수십만 마리의 닭과 달걀을 처분할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추가 발생이 없더라도 달포 이상 방역초소를 운영한다. 


4년 전에는 이천에 돼지콜레라가 발생했었다. 발생 농장뿐만 아니라 인근의 농장에 있는 돼지까지 굴착기로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산채로 매장을 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까닭도 모른 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린 돼지들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렸지만 주인은 안타까운 눈물만 흘릴 뿐 자기의 돼지를 죽이는 군인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수백만 마리의 돼지를 살리기 위해 수백 마리의 돼지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죽임을 당한 돼지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같은 울타리에서 지냈던 한 돼지가 병에 걸린 탓에 온 돼지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한 돼지로 인해 수 천의 돼지가 죽임을 당하듯 한 사람으로 인해 수 만의 사람이 죽었던 인류의 전쟁 역사를 돌이켜본다. 한 왕의 잘못으로 온 백성이 망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희생으로 온 인류가 구원을 받기도 한다. 


‘a’는 one과 같은 뜻으로 <하나>이기도 하고, any와 같은 뜻으로 <모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온 사람이다. 한 학생은 그 학교고, 한 국민은 그 국가다. 비록 하나지만 대표성을 띤다. 작은 하나가 얼마나 큰 하나인가? 나도 하나다. 어떤 하나가 돼야 할까?


자정 지나 새로 한 시가 되자 한 차가 다가왔다. 그에게 인계하고 집으로 향했다. 한 별똥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졌다. 한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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