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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도 꽃이지!

작물 꽃

by 시골뜨기

원래 식물은 균형을 갖춘다. 어느 특정 부위만 유별나게 큰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기 적합한 모양을 가진다. 하지만 작물은 인간이 설정한 가치에 따라 특정 부분이 도드라지게 발달한, 일종의 기형이다.

당근이나 무는 뿌리가 유난히 굵고, 잎을 이용하는 배추나 시금치는 꽃이 피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마주하는 작물은 온전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일부분이 도드라진 경우가 많다.


박과식물인 호박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꽃마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암꽃에만 호박이 달린다. 꽃 모양은 암수가 비슷하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조금 차이가 있다. 암꽃은 세 갈래로 갈라진 비교적 짧은 암술머리가 있고 수꽃은 꽃가루가 묻어 있는 기다란 수술대가 있다. 더 확실히 구분하는 방법은 암꽃 아래에는 꽃이 필 때부터 이미 작은 열매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벌들이 수꽃과 암꽃을 오가면 꿀을 따다 보면 자연스레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의 암술머리에 묻어 꽃가루받이가 이뤄지게 된다. 만일 암꽃이 가루받이되지 않으면 열매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냥 떨어지고 만다. 수박뿐만 아니라 호박과 참외도 가루받이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지만 오이는 가루받이가 되지 않아도 열매가 자란다. 농부는 일부러 오이의 가루받이를 억제한다. 씨 없는 오이는 먹기 더 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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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암꽃(좌) 호박꽃 수꽃(우)


고추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운다. 하지만 꽃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꽃이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식탁에 오르는 고추는 꽃이 진 후에 성장한 열매들이다. 고추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합 못지않게 우아하다. 큼직한 백합꽃은 꼿꼿이 선 채로 굽어봐도 잘 보이지만 작달막한 고추꽃은 무릎을 구부리고 올려다봐야 한다.


배추, 유채, 무 등을 십자화과라고 한다. 네 장의 꽃잎이 십자(+) 모양이기 때문이다. 십자화과 채소는 대개 잎을 이용하기 때문에 꽃이 피기 전에 거둔다. 꽃이 피면 양분은 꽃 피고 씨 여무는데 쓰이므로 뿌리는 바람이 들고 잎사귀는 누렇게 시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씨를 받기 위해서 일부러 꽃을 피우는 무와 배추를 장다리라고 부르는데, 장다리무의 연보랏빛 꽃잎은 참 은은하다.


솜을 만드는 목화, 지금은 사라져 가는 작물 중 하나지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몰래 들여와 우리 조상의 옷감이 되어준 아주 고마운 작물이다. 내 어릴 적엔 장미꽃은 못 봤지만 목화꽃은 흔히 봤다. 그 시절 나는 목화꽃이 제일 예쁜 꽃이라고 여겼다. 어린 열매를 따먹곤 했는데 그 달콤한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물도 꽃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작물 꽃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먹을거리는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작물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작물에 꽃이 없다면 우리의 먹거리도 없다.


작물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디카를 들고 논두렁 밭두렁을 거닐었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 와서 고추나 가지의 꽃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사진으로나마 작물 꽃의 아름다움에 공감한다면 내 발품은 헛됨이 아니다. 작물 꽃을 보며 잠깐이나마 농업을 생각하길 바라는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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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꽃과 고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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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꽃봉오리와 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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