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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Sep 20. 2020

추분

가을

추분


하늘이 떫은 이즈막 

산이 알록달록 익는다

꼿꼿한 벼이삭은 슬며시 수그리고 

풋풋한 잎사귀는 맥없이 시들부들 

낮 줄고 밤 늘어 

이윽고 둘은 키를 맞추었다


콧김에도 날리는 가벼운 상추씨

뿌리긴 뿌렸지만 도통 맘 못 놓겠다

바람에 날릴까 빗물에 씻길까

흙을 덮자니 묻힐까 멈칫멈칫


칙칙한 땅거죽에 연둣빛 점 하나

손톱만 한 떡잎을 살짝 벌리더니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발라당 펼쳤다




여름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호박잎이 무성하더니 요즘엔 오갈 들어 시들부들하고, 발 디딜 틈새도 살짝 드러났다. 그리고 달처럼 둥글고 늙은 호박이 노란 웃음 지으며 말간 얼굴을 내민다. 애호박 시절에 이리저리 뒤져도 꼭꼭 숨어 눈에 띄지 않더니만, 숨바꼭질이 끝난 지금에야 보란 듯이 나타난 그가 반갑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가을이 오기 전에 여름이 갔고, 추분이 오기 전에 처서도 갔다. 하늘이 시려지는 이즈막, 산의 나무와 들의 푸새들이 가을 다움에 시끌벅적 요란을 떨며 잔치를 벌인다. 그 흥에 취해 나도 시 한 수 지어본다. 굳이 시인만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닌 것을, 가을엔 농부도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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