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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May 04. 2021

탄소(C)

속옷

탄소비료도 있던가? 


비료는 작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원소를 논밭에 뿌려서 작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작은 알맹이나 가루로 만든 제품이다. 식물이 자라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원소는 17가지인데, 이들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칼륨, 칼슘, 마그네슘, 인, 황, 철, 망간, 아연, 붕소, 구리, 몰리브덴, 니켈이다. 이들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식물은 자라는데 지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물을 키우는 농부는 이들 양분이 부족하지 않도록 비료를 통해 챙긴다. 

많이 챙겨야 하는 다량원소는 질소, 인, 칼륨이며 이것을 비료의 3요소라고 한다. 소량원소는 칼슘, 마그네슘, 황이며, 미량원소는 붕소, 구리, 철, 아연, 망간, 몰리브덴, 염소, 니켈이다. 다량원소는 매년 공급해야 하며, 소량원소도 부족할 경우에는 공급하지만, 미량원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생략해도 된다. 작물에 따라 어떤 원소를 특별히 좋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작물에는 이들 양분을 별도로 챙겨줘야 한다. 가령 배추는 붕소를 좋아하고, 콩은 몰리브덴을 좋아하며, 시금치는 염소를 좋아한다. 

근데 이상하다? 식물의 필수 원소는 17가지인데, 비료로 챙겨주는 원소는 왜 14가지뿐일까? 탄소, 수소, 산소 이 세 원소는 왜 비료에 없는 걸까? 그 까닭은 물과 공기를 통해 이 세 가지 원소가 자연스레 공급되기 때문에 일부러 비료로 챙겨줄 것까지는 없어서다. 그래서 탄소와 수소와 산소는 비료에서 빠졌다. 그럼 탄소비료는 없는 걸까?


탄소비료도 있다!


탄소는 공기를 통해 공급받는다. 식물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얻는데, 이산화탄소는 산소 두 개와 탄소 한 개가 결합된 기체이며, 식물은 이 이산화탄소를 쪼개서 탄소를 얻는 것이다. 공기는 풍부하며 주변에 늘 존재한다. 

맞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공기다. 하지만 이 공기 중에 탄소가 들어있는 이산화탄소는 매우 희박하다. 질소는 공기 중의 열에 여덟이지만, 탄소는 열에 하나는커녕 백에 하나, 천에 하나도 못 되고 기껏해야 만에 넷이다. 공기 중의 질소는 78%이고 산소는 21%인데 반해 이산화탄소는 겨우 0.04%다. 이 양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들기에 최적의 농도는 아니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공기보다 두세 배 높으면 작물은 탄소동화작용을 더 활발하게 하여 수확량을 높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비료처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탄소비료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그럼 탄소비료도 있는 걸까? 산소비료, 수소비료가 없듯이 탄소비료도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 탄소를 공급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는 것을 '탄산시비'라고 하지만, 이것은 실험실의 비커 안에서 벌이는 제한적인 시험이라고 여겨도 무리는 아니다. 작물이 자라는 바깥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일부러 줄 필요는 없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양은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생물은 모든 것을 충족한 상태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맞춰서 산다. 식물에게 있어서 이산화탄소가 그렇다.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이누이트족이 추위를 받아들이듯 식물은 공기 중의 극소량만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며 나름대로 살아간다. 시설재배를 하는 농가에서는 프로판가스를 태워서 일부러 이산화탄소를 하우스 안에 집어넣어 작물을 빨리 자라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식물에게 가하는 가혹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달걀을 많이 낳게 하려고 좁은 틀 안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밤에도 불을 비춰 암탉을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탄소는 분명 식물이 자라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원소의 하나인데, 논밭에서 탄소를 비료로 챙겨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탄소의 존재감마저 잊으면 안 된다. 동물이나 식물 등 생물체의 몸을 구성하고 있거나 이들이 만들어낸 화합물을 유기물이라고 하는데, 유기는 생명체라는 의미이다. 유기물과 무기물을 나눌 때의 기준은 탄소다. 탄소가 있으면 유기물이고 탄소가 없으면 무기물이다. 탄소는 생명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탄소는 속옷 같은 존재다. 겉으로는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감당하는 속옷. 우리가 늘 하는 일, 매일 만나는 사람, 자주 쓰는 물건, 바로 탄소 같은 것이다. 늘 곁에 있기에 존재감을 잊고 지내는 존재들. 그러나 없으면 절대 안 되는 존재들. 값어치를 크게 매기지는 않지만 가치마저 작은 것이 절대 아닌 존재. 바로 탄소다.

 


5월 어린이날은 온 나라가 들썩이고 곳곳마다 아이들로 붐빈다. 산소 같은 날이다. 깊게 들숨 쉬며 산소를 들이켠다. 5월은 어린이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날도 있다. 어린이날과 달리 조용히 보내는 이날에 길게 날숨 내쉬며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내가 살아있는 것은 호흡을 하기 때문이고, 호흡은 들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날숨도 있음을, 당연히 숨 쉬다가 문득 숨 멈추고 생각한다. 

사람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지만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뿜는다. 우리는 산소는 신선하고 생명의 공기를 여기는 반면에 이산화탄소는 탁하고 질식의 공기로 여긴다. 이산화탄소가 사람에게는 똥일지 몰라도 벼에겐 밥과 같다.


속옷 같은 탄소. 눈에 띄어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겉옷이 아니지만 속살을 보듬으며 지켜주는 속옷은 바로 우리의 부모, 스승, 벗, 동료 같은 존재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으니 당연히 양육해야 해, 스승은 선생이니 당연히 학생을 가르쳐야 해, 친구와 동료는 늘 내 곁에 있다고 당당하게 우기면 당황스럽다. 탄소처럼 언제나 함께하며 늘 마주하기에 그 존재감마저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는 오월이다. 비록 질소, 인, 칼륨처럼 비료로 챙겨주지 않더라도 없어서는 안 될 원소가 탄소이듯 부모, 스승, 친구, 동료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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