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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0. 2020

규소(Si)

보호

삶은 다툼이다. 

때론 싸우고 때론 피하면서 살아남는다. 저마다 나름의 창이 있고 방패가 있다. 동물이 창으로 식물을 공격할 때 식물은 방패로 자기를 방어한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초식동물은 식물을 뜯어먹는다.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피하는 방법은, 더 빨리 달리거나 찾지 못할 곳으로 숨거나 먹지 못할 정도로 맛이 없는 거다. 식물이 살아나는 방법은, 초식동물에게 뜯기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잎을 내거나 맛이 없거나 독을 품는 것이다. 독풀을 먹은 동물은 죽기도 한다. 식물이 가진 방패는 다양하다. 이 방패는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공격도 한다. 가시가 그렇다. 선인장은 가시를 내어 자신을 공격하는 동물을 찌른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다.



벼과식물은 규소(Si)로 방패를 만들었다. 유리 원료인 규소를 입은 벼는 거칠고 뻣뻣하며 맛도 별로 없다. 여느 벌레와 초식동물로부터 거리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규소는 완벽한 방패는 아니다. 규소로 보호막을 친 벼를 거리낌 없이 즐겨먹는 벼잎벌레와 황소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효과적인 방패임은 틀림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이듯 초식동물은 거친 풀보다는 부드러운 풀을 찾기에 벼보다는 토끼풀을 즐겨 뜯는다. 

벼과식물이 규산을 제 몸에 끌어들인 것은 참 현명한 전략이다. 흙의 원료가 되는 지각 암석의 대부분은 규산염이다. 물론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바로 먹지 못하듯 이 규산도 식물이 날로 먹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규산은 지하수처럼 저장된 양분이다. 아주 풍부하며 이 양분을 두고 식물끼리 경쟁하는 일도 없다. 벼과식물은 규산을 아주 좋아하지만 다른 식물들은 규산을 소 닭 보듯이 별 관심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주요 영양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등이다. 마찬가지로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가 있는데, 질소, 인, 칼륨, 칼슘, 마그네슘, 황, 붕소, 철, 망간, 아연, 구리, 몰리브덴 등이다. 그런데 이 필수 영양소에 규산은 없다. 다른 식물들은 규산이 없어도 자라는 데 별 지장이 없다. 그러므로 굳이 규산을 먹으려고 다투지 않기에 벼과식물이 경쟁 없이 차지할 수 있는 양분이다. 


벼는 규산을 아주 좋아한다. 일반 식물은 질소를 가장 많이 찾는데, 질소는 몸집을 키우는 영양소이므로 질소가 부족하면 식물은 키가 크지 않는다. 물론 벼도 질소가 필요하다. 벼 100kg를 생산하는데 흡수한 질소는 1.8kg다. 그런데 규산은 14.8kg을 필요로 한다. 질소보다 무려 8.2배나 많은 양이다. 필수 영양소도 아닌 규산을, 벼는 그 어느 양분보다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해줘야 한다. 야생의 벼과식물인 강아지풀, 뚝새풀, 조릿대 등은 저수지의 물고기와 같아서 별도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지만 농작물인 벼는 어항의 물고기와 같아서 주기적으로 규산을 공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가리가 없는 약한 벼로 자랄 것이다. 

작물의 영양관리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다. 리비히의 '최소율의 법칙'에 따라 식물은 부족한 성분에 의해 생육이 지배된다. 알을 낳는 암탉에게 칼슘이 부족하면 껍데기 없이 얇은 막만 있는 알을 낳듯, 규산이 부족한 벼는 보호막이 없이 보들보들 약하게 자란다. 




가죽점퍼를 입은 오토바이 라이더는 근사해 보인다. 한마디로 폼 난다. 그런데 폼만 나는 것이 아니라 기능도 좋다. 가죽점퍼는 바람을 막아주고 넘어졌을 때 몸에 상처 나지 않도록 보호한다.

벼에 있어서 규산은 가죽점퍼와 같다. 규산은 벼의 잎을 꼿꼿하게 세워서 햇빛 받는 자세를 좋게 하니 광합성이 잘 되어 생육이 왕성해지고 벼알 여뭄도 좋게 한다. 또한 잎과 줄기를 단단하게 하여 병해충 발생도 줄고 비바람이 불어도 덜 쓰러진다. 벼는 규산이라는 점퍼를 입은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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