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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Aug 23. 2020

처서

텃밭

사무실 곁에 자투리땅이 있다. 가만두면 어중이떠중이 푸새들이 아옹다옹 자리다툼할 그곳에 텃밭을 일구고 푸성귀를 심었다. 막바지 여름은 품은 더위를 모조리 게우고 자리를 뜨려는 지 열기가 후끈하다.

 

멀뚱히 떠가는 해가 주춤주춤 짧아지는 말복 무렵, 지지난달에 심었던 열무랑 상추를 수확하고 다시 김장채소를 심기 위해 거름을 뿌리고 흙을 갈아엎었다. 두둑과 고랑을 만들고 씨 뿌릴 두둑을 고른 후 배추 씨앗을 주섬주섬 챙겼다.


배추 씨앗은 좁쌀처럼 작다. 그 쪼끄만 씨앗을 뿌리며, 과연 이게 싹이 트고 다뿍하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음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머뭇거림 없이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은 이제껏 보여준 씨앗의 자람을 믿는 까닭이다. 


곧바로 씨를 밭에 뿌려도 되지만 이번에는 좀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포트를 만들고 거기에 서너 개의 씨앗을 심었다. 지난해에 배추 싹이 나오자마자 어디서 왔는지 벌레들이 나타나서 콩알만 한 그 어린싹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버렸다. 잡으려 해도 좀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은, 날 약 올리듯 똥을 싸놓아 자신들이 다녀감을 알렸다. 

아마 동트기 전에 식사를 마치고 낮에는 흙속에 숨는 것 같은데, 미처 자리 잡지 못한 배추 뿌리가 상할까 봐 섣불리 흙을 헤집을 수도 없었다. 


씨앗을 뿌리고 이틀이 지나자 성급한 씨앗은 벌써부터 땅거죽을 비집고 노란 머리를 내밀었고, 나흘이 지나자 자기들끼리 짬짜미를 한 양 여기저기에서 봉긋봉긋 새싹이 텄다. 물을 데우는 냄비의 바닥에서 뜨덤뜨덤 물방울이 생기듯 듬성듬성 싹트던 배추는, 두세 밤을 더 보낸 후에는 한소끔 끓어오르는 물거품처럼 포트마다 서너 개의 싹이 돋아났다. 


눈곱만 한 씨앗은 닷새가 지나는 사이에 콩알만 한 떡잎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쪼그려 앉아 새싹을 살피고자 굽어보면 어린싹은 시계의 시침처럼 꿈쩍도 않았다. 하지만 배추는 시나브로 자라고 있다. 비록 겉으로는 겨울나무처럼 고즈넉하지만 속으로는 시계의 초침처럼 부산스럽게 설레발치는 것이다.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생명, 그것은 우주의 비밀이기에 환한 대낮에는 꼭꼭 숨기고 은은한 별빛이 비치는 이슥한 밤에만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부썩 자라 있는 새싹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고 기꺼웠다. 


떡잎의 모양은 사랑의 상징인 심장 꼴이다. 안쪽 팔뚝을 마주 붙이고 두 손을 벌려 손바닥이 하늘을 보듯, 두 떡잎은 하늘바라기 하며 햇살을 흠씬 머금고 있다. 무자맥질을 하다가 막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꼬맹이의 물기 머금은 얼굴처럼 해말쑥했다. 


일단 싹을 틔운 씨앗은 망설임을 모른다. 뒷걸음질을 할 수 없는 대롱 안의 뱀장어처럼, 이미 시위를 벗어난 쏜살처럼, 어린순은 도담도담 자라는 데만 여념이 없다. 


멍석 위에 널린 새빨간 고추가 가을볕에 나날이 검붉어지듯 콩알만 한 잎사귀가 새끼손톱처럼 커지고, 열흘 가량이 지나면 엄지발톱 어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떡잎 아귀에서 돋아날 잎사귀는 보름 즈음엔 귓바퀴만큼 자랄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곤 기껏 씨를 뿌렸을 뿐이다. 그 후에는 자기가 알아서 자란 것이다. 


흙에 뿌려진 씨앗은 배젖의 양분을 삭이고 옮기고 이용하여 몸을 부풀렸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곁에서 조금 거들어주는 곁두리일 뿐이다. 참농부는 자기가 다 푸성귀를 자라게 했다고 으스대거나 젠체하진 않는다. 씨앗의 변화에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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