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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Oct 02. 2020

이름을 모를 뿐 이름이 있는 잡초

들풀

인류는 다른 생물과 더불어 산다. 결코 사람 종족만 오로지 살 수는 없다. 반려견을 비롯하여 벼룩과도, 시클라멘을 비롯하여 바랭이와도 땅별 울타리 안에서 더불어 산다. 보이든 안보이든 옷감의 씨줄과 날줄처럼 얼기설기 얽히었다. 우리는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살아야 하기에 지속 가능한 생태계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현관문만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자잘한 식물들, 너무나 흔하기에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던가!


땅이 꽁꽁 언 한겨울에는 꿈쩍 않던 식물들이 해토머리엔 푸석해진 땅거죽을 비집고 싹을 내려한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도사리는 삼월이라 여느 식물은 눈뜰 낌새 없는데 몇몇은 벌써 꽃까지 피었다. 누군가가 이들을 일부러 화단에 심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사람들은 들풀을 보면 기필코 뽑아내려 한다. 화초가 자라는데 방해될까 봐 김매기 하듯 없애려 든다. 그러기에 이들은 화초가 등장하기 전에 서둘러서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제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우리는 이들을 뭉뚱그려서 '잡초'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한 술 더 떠 '이름 없는 잡초'라고 칭하기도 한다. 왜 이들에게 이름이 없는가?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모를 뿐이다. 이름은 의미인데, 이름 없는 잡초라고 부르는 순간 그 들풀의 의미는 맥없이 묻히고 만다.


질경이




들풀은 참 잘도 자란다. 반면에 화초는 씨를 뿌리든지 모종을 사서 심어야만 겨우 자라 주며, 행여 물과 거름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투정 부리듯이 시들어 버린다. 화초는 사람의 이로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 같은데, 들풀은 사람의 해로운 손길에도 악착같이 자라난다. 이런 들풀에게서 억센 야성을 엿본다.


들풀과 친하려면 애정 어린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다정한 궁금증은 친근하게 다가가는 첫발이다. 주변에 널브러진 제비꽃, 양지꽃, 냉이, 쇠뜨기, 민들레는 흔히 보이는 풀들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대로 스쳐보기보다는 가까이 다가가서 살뜰히 살펴보면 더 잘 보인다. 보는 만큼 알 수 있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꼿꼿이 선 채로는 들꽃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화초는 꽃이 크고 화려하기에 걸으면서 눈길만 흘겨도 보이지만, 들꽃은 멈춰서 굽어보지 않으면 좀처럼 볼 수 없다. 꿍꿍이속이다.

화초는 사람의 눈길이 끌리게 꽃을 피우지만 들풀은 사람의 눈길을 끌 까닭이 없다. 아니 사람 눈길을 피한다. 그러므로 들꽃을 보기 위해서는 도도하지 말고 다소곳해야 한다. 쪼그마한 제비꽃을 보려면 쪼그려 앉아야 하고, 고개 숙인 할미꽃을 보려면 아예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한다.


보석은 드물기에 값어치가 있다. 흔하면 가치도 떨어지는데, 들풀이 그렇다. 하지만 흔하더라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물과 공기이듯 잡초 또한 그러하다. 추위와 상처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듯 맨땅도 여러 가지 들풀로 덮여야만 땅거죽이 휩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작물을 재배하는 논밭은 양분도 부실하고 흙 알맹이도 단립구조지만 들풀이 자라는 들판은 양분도 풍부하고 흙 알맹이도 입단구조라서 건강하다. 작물을 재배하는 입장에서는 잡초인 들풀이 눈엣가시지만 또한 이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없앨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작물을 심은 논밭에는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농부는 어쩔 수 없이 논에서 피사리를 하고 밭에서 김매기를 한다. 농부의 할 일이다. 


농부는 들풀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름을 아는 것은 그 식물을 의미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도시민은 들풀의 이름을 잘 모른다. 그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라고 우기지는 말자.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친구 될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농사짓는 농부로서 들풀을 잡초로 취급할 수밖에 없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들풀 이름 하나하나 불러본다.


물달개비, 가막사리, 올방개, 방동사니, 강아지풀, 닭의장풀, 도꼬마리, 소리쟁이, 쇠뜨기, 질경이, 쇠무릎, 엉겅퀴, 고들빼기, 지칭개, 방가지똥, 애기땅빈대, 자귀풀, 올챙이자리, 깨꽃,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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