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이불 05화

나무 흉터

가지치기

by 시골뜨기

사람을 나무에 빗대기도 한다. 인간과 나무는 동물과 식물로서는 엇갈리지만 생물이라는 틀에서는 매한가지다. 옹기종기 무리 지어 사는 것이 사람답듯 올망졸망 어울리며 자라는 것이 나무답다. 더불어 사회, 더불어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사람이나 나무나 자라면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배려와 양보가 없다면 갈등과 다툼이 생길 것이다.

나무는 커가면서 곁의 나무 가지와 맞닿게 되어 서로 거슬리며 부대끼는 존재가 된다. 이때 동산바치는 오래된 밑가지를 쳐내야 한다. 이는 그 나무가 우람하고 올곧게 자라도록 거드는 도움이다. 나무가 올곧게 자라기 위해서는 일부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상징탑 주변의 잣나무숲 나무들을 가지다듬기 했다. 손이 덜 갔던 그곳은 푸나무가 우거져서 구레나룻처럼 덥수룩하다. 우뚝 솟은 잣나무를 칭칭 감은 칡덩굴, 보푸라기 일은 헝겊처럼 너저분한 눈향나무, 말갈기처럼 치렁치렁한 개나리, 밤송이처럼 빼곡한 명자나무, 대빗자루처럼 얼기설기 뻗친 오엽송을 톱으로 썰고 전정가위로 자르고 양손가위로 다듬었다.


멀리서 바라본 잣나무숲은 푸르렀다. 그러나 막상 숲에 들어가서 속속들이 살펴보니 나무 꼴이 허접하다. 어항의 물고기가 산소가 부족해서 물낯 위로 입을 뻐끔거리듯, 잣나무들은 우듬지만 빼꼼 내밀고 하늘바라기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아랫가지는 푸른 기운 하나 없는 삭정이가 되어 버렸다.

죽어버린 아랫가지를 잘라냈다. 한때는 일꾼으로서 그 나무를 키운 가지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가지다. 다리 달린 동물은 제 맘대로 옮아앉을 수 있지만 뿌리 박힌 식물은 심긴 곳이 붙박이다. 그러기에 어린 묘목을 촘촘히 심은 후에는 나무가 자람에 따라 틈틈이 솎아내야 한다.


제법 굵은 단풍나무 줄기를 잘라내니 수액이 흐른다. 몸통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수액은 바닥까지 적셨다. 손가락 굵기였을 때에 잘라냈으면 좋았을 텐데 이때를 놓치니 팔뚝만큼 굵어졌다. 비록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잘라내야만 했다. 상처 난 줄기에 물이 적시는 걸 본 동료 하나는 나무가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젖먹이에게는 젖이 생명줄이지만 젖니가 나면 젖빨기를 멈춰야 한다. 곤충이 허물 벗으며 부쩍 자라듯이 사람도 계단 오르듯 성큼 자란다. 엄마 품의 갓난아이가 아동이 되고 청년이 되어 어른이 된다. 자라면서 얻는 반면 버릴 것도 생기게 마련이다. 몸과 맘은 자라는데 이전의 습관과 생각을 우긴다면, 그것은 뻐드렁니 심보다. 영구치가 나올 때 젖니가 버티면 영구치는 덧니가 된다. 이전에 유익했던 것이 제 역할을 다했을 때는 이갈이 때의 젖니처럼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젖니는 아동에게는 디딤돌이지만 청소년에게는 거침돌일 뿐이다.


젖니와 밑가지의 역할이 비슷하다. 어릴 적에는 젖니가 알짬이지만 몸이 자라면서 쓸모없는 존재가 될 때, 그때는 슬그머니 물러나야 한다. 우람한 나무를 기대한다면, 가지런한 치열을 바란다면,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억지 미련은 더 큰 흉터를 남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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