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우애
학생식당 뒤편의 최규식 동상이 있는 곳으로 작업을 나갔다. 거기엔 오엽송, 영산홍, 주목, 옥향나무, 회양목 등이 있다. 양손가위로 옥향나무를 다듬었다. 두 달 전에 까까머리 이발하듯 가위질을 했는데 어느새 순이 비죽비죽 자라서 더벅머리가 되어있다. 주목도 가지에 새순이 들쭉날쭉 삐져나와 다시 손을 봐야 할 지경이다.
조경수인 주목과 조경사인 나는 실랑이를 벌인다. 주목은 제 버릇대로 가지를 뻗치고자 하고, 나는 나무 꼴을 예쁘고 유지하려 한다. 천방지축 말괄량이를 억지로 의자에 앉혀놓고 머리를 다듬는 모양새다. 내버려 두면 주목은 며칠 감지 않은 머리처럼 헝클어진 꼴이 될 것이다.
주목이 새 순을 삐죽 돋아내면 난 도드라진 그 순을 싹둑 잘라 버린다. 그러면 주목은 잘린 순 아래에서 서너 개의 싹을 다시 내민다. 마치 희랍 신화에 나오는 레르나 늪의 ‘히드라’처럼 말이다.
히드라는 지옥에서 죄 있는 자들을 괴롭히는 50여 개의 머리를 가진 괴이하게 생긴 뱀인데, 머리 하나를 자르면 곧 두 개가 생긴다. 결국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었지만, 머리를 자르고 바로 불을 지지지 않으면 두 개의 머리가 곧 생기는 괴물은 참으로 끔찍할 것이다.
실제의 히드라 몸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고 전체가 녹색의 젤리 상태인데,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면 터져 버리는 매우 연약한 동물이다. 가위로 잘라 두 동강 내면 사나흘 후엔 두 마리의 히드라가 되는데, 이런 성질 때문에 희랍의 히드라 전설이 생겼다.
나무와 나 사이에 타협이 이뤄졌다. 나는 원뿔꼴의 나무 모양을 유지하며 틀 밖으로 불거진 가지만 자르고, 틀 안에서 자라는 가지는 그대로 두었다. 그리하여 주목나무는 허전한 틈을 다복하게 메우며 고깔 모양의 조경수로 반듯하게 자리매김하였다.
잔디밭엔 잔디뿐만 아니라 바랭이, 민들레, 마디풀, 괭이밥, 고들빼기 등속이 함께 자란다. 듬성듬성 떼 지어 자라는 토끼풀은 얼굴에 핀 버짐처럼 보기 흉하지만, 기는줄기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므로 깡그리 없애기란 보통내기가 아니다. 대운동장 잔디구장의 토끼풀을 없애려고 쉰 명 가량의 의장대 대원들이 근 보름 동안 풀 뽑기를 하고 제초제도 뿌렸지만 토끼풀은 여전히 군데군데에서 자라고 있었다.
작업을 하다가 쉬는 짬에 대원들이 뭔가를 찾는다. 행운이라는 이름의 네 잎 토끼풀. 샅샅이 톺았지만 결국 허탕 친 한 대원이 퉁명스레 물었다.
“박 기사님, 왜 토끼풀은 네 잎이 아니고 세 잎이죠?”
갑작스러운 물음에 멈칫하다가 대답을 찾기 위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다. 아직 머릿속의 생각은 정리가 덜 되었지만 일단 말문을 열었다.
“저, 그것은 말이다. 그러니까 토끼풀 잎이 세 장인 것이 올바른 것이고, 말하자면 네 장인 것은 어긋난 거야.”
이쯤 되니 머릿속의 헝클어진 생각이 차츰차츰 정리되었다. 실뭉치의 실마리를 잡아당기듯 본격적으로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토끼풀은 줄기에서 가느다란 잎자루[葉柄]가 하나 서고, 그 잎자루를 의지하여 잎이 나지. 식물 잎은 가장 효율적으로 햇살을 받으려는 습성이 있어. 우선 이 ‘효율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식물 잎은 물과 탄산가스 그리고 햇빛을 가지고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지. 광합성은 잎의 엽록체에서 일어나므로 잎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양분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잎은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면에 호흡을 통해 양분을 소비하기도 해. 그러므로 순동화량(純同化量)은 광합성을 통해 얻은 양분(A)에서 호흡을 통해 잃은 양분(B)을 뺀 값(C)이 되는 거야. 순동화량의 값이 최고가 되려면 무조건 잎이 많기보다는 겹치지 않으면서 잎이 많아야 해. 가려진 잎은 호흡량이 동화량 보다 더 크므로 결국 순동화량 값은 작아지지.”
난 쪼그려 앉아서 잔디 틈바구니를 비집고 자라는 토끼풀 무리를 굽어보며 말을 이었다.
“잔디는 위와 아래에 높이 차이를 두고 좌와 우의 위치를 다르게 잎이 어긋나서 자라는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지. 가장 위에 있는 잎이 굳이 모든 햇살을 독차지할 필요는 없어. 윗잎이 흘린 햇살을 아랫잎이 받아서 광합성을 할 테니까. 그러나 토끼풀의 잎은 한 정점에서 퍼지는 평면적인 구조야. 그러므로 가장 알뜰하면서도 효율적으로 햇살을 받기 위해서는 잎은 겹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넓게 펼쳐야 하지. 그것은 잎과 잎의 경계면이 서로 맞닿는 모양일 게다.”
손을 내밀어 바닥에 바짝 붙어있는 토끼풀의 잎을 뽑아 들었다. 내 엄지와 검지에 물린 잎자루가 간들간들하다. 곧추서다 고개만 살짝 숙인 꼴이 해바라기 같다.
“자, 토끼풀의 잎을 자세히 봐. 가운데 정점에서 퍼진 각 잎의 각도가 120°이지? 세 잎이 펼쳐지면 360°가 되어 잎이 겹치거나 비지 않은 꽉 찬 모양이 된다. 만약 잎이 네 장이면 잎의 일부는 옆 잎에 가려지게 되어 비효율적이 되지. 네 잎 토끼풀을 찾거든 자세히 관찰해 보렴. 책갈피에 끼워놓으려고 잎을 펼치면 일부분이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일반적으로 그림이나 도형에서는 네 잎 토끼풀이 열십(+) 자 꼴로 그려져 있지만, 그건 상징적일 뿐이고 실제는 그렇지 않아.”
한달음에 내리쏟은 내 말을 미처 추스르지 못한 대원은 약간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나 또한 내가 뱉은 말이 정말인지 확신치 못해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이다.
다시 주목을 다듬으며 ‘셋’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했다. 셋은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숫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들레, 제비꽃, 질경이, 씀바귀 등은 바닥에서 잎을 나므로 우산살 퍼지듯 많은 잎을 펼친다. 하지만 토끼풀은 햇볕을 잘 쬐려고 바닥에서 살짝 띄워 잎을 펼친다. 가느다란 잎자루로 버텨야 하므로 많은 잎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근데 왜 셋일까? 둘 일수도, 넷 일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둥근 피자를 나누듯 서로 겹치지 않는 경우에는 꼭 세 잎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두 잎의 경우 180°, 네 잎의 경우 90° 라면 비거나 겹치지 않고 광합성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아마도 바람에 흔들리는 잎자루가 중심을 유지하기에 세 잎이 가장 제격이라서 그런가 보다.
네 다리 의자는 각 다리의 길이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바닥이 평평하지 않으면 기우뚱거리게 된다. 두 다리의 의자는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그러나 세 다리의 의자는 어느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한다. 더도 덜도 아닌 가장 균형 잡힌 의자이다. 균형과 안정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카메라의 삼각대가 왜 세 발인지 실감 나게 느껴진다.
며칠 후,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바람 쐴 겸 밖으로 나왔다. 자정 즈음의 늦가을 밤공기는 싸늘하고 밤이슬에 젖은 풀은 축축하다. 도서관의 하얀 불빛이 부옇게 깔린 풀밭을 걷다가 밑을 내려다봤다. 분명 토끼풀 같은데 달랑 한 잎만 달려있다. 그것도 녹색의 앞면이 아닌 희뜩한 뒷면이 은은하게 비친다. 자세히 보고자 굽어보니 토끼풀이다. 토끼풀이 기도하고 있다.
분명 그 모습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채 다소곳이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손을 모으듯 두 잎은 앞면을 서로 맞대었고, 나머지 한 잎은 고개를 숙이듯 그 맞댄 두 잎을 비스듬히 덮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잎만 보이고, 옆에서 바라보면 골프채를 거꾸로 세워 놓은 꼴이다.
날이 추우면 몸을 움츠린다. 이는 표면적을 적게 하여 체온을 덜 빼앗기기 위한 몸짓이다. 두 잎이 맞붙은 것은 열을 덜 뺏기기 위해 서로 껴안은 꼴이고, 나머지 한 잎이 부둥켜안은 두 잎을 덮은 것은 차가운 밤이슬을 가리기 위한 깜냥인 듯하다.
그런데 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택했을까? 잎을 펼치기 전인 잎눈의 토끼풀은, 한번 접은 전단지처럼 가운데가 접힌 채 세 장의 잎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양이다. 이 잎눈이 움틀 때에는 각 잎들은 데칼코마니 도화지가 펼치듯 접힌 잎을 펼친다. 그러나 토끼풀의 잎은 한번 펼쳐지면 다시는 접히지 않는다.
잎눈 시절을 벗어난 잎은 오직 광합성을 하는데 열심이다. 여차하면 다시 잎을 접고 옛날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마치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펼쳐진 잎이 추위라는 시련을 만나니 한 잎자루의 세 잎이 서로 보듬으며 어려움을 이기는 것 같다.
세 잎의 더불어 사는 띠앗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세 잎은 각각의 잎이지만 한 줄기에서 갈라진 한 형제이다. 토끼풀의 띠앗머리를 대하니 문득 형이 생각난다. 형에게 짜증 내며 불평하던 것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토끼풀 잎처럼 삼 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