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보급소
“따따따따”
“다다닥”
“드륵”
“탁”
새벽 4시, 경찰대학 당직실.
법화산 자락의 잔잔한 새벽 공기를 뒤흔드는 소리에, 슬그머니 다가온 졸음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 버렸다. 다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사라지는 저 청년은 어둠이 쌓인 새벽길을 달리며 새날의 먼동을 내비치며 달리겠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오토바이 소리에 이어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
“젠장, 또 비 오네.”
본사에서 발송된 신문 꾸러미를 안으로 들여놓으며 구시렁거리는 총무의 볼멘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짚신장수보다도 비 오는 날을 더 싫어하는 사람들이 신문배달꾼이다. 바이 어찌하랴. 비록 짜증이 나더라도 수백 명의 구독자들에게 신문을 전해야 한다. 이것은 현재 내 일이니까.
아침보다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광고지(일명 ‘찌라시’)를 신문 사이에 끼운다. 처음에는 손에 익히지가 않아서 500부 정도의 광고지를 끼우는데 30분이 걸렸지만 지금은 10분이면 족하다. 이 일도 숙달되다 보니 도사가 되는구나.
비에 젖지 않도록 신문을 일일이 봉지에 넣고 우의를 입었다. 우의를 입어도 두세 시간 빗속을 쏘다니다 보면 영락없이 물 빠진 생쥐 꼴이다. 아예 팬츠만 입고 우의를 입는데, 처음의 아스스한 느낌에 몸이 옴찔거린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앞에서 날아온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이를 악물고 나가는 모습은, 흡사 전쟁터의 람보가 기관총탄이 빗발치는 적진을 행해 나가는 모습처럼 장엄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빗길에 미끄러져 흩어진 신문이 빗물에 젖으면 언제 터질지 모를 폭약 같은 심정이 된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사연 하나.
석이 엄마는 개포 9단지 공무원아파트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남편은 공보처에 근무한다. 어느 날 석이 엄마가 신문배달을 하겠다며 보급소에 찾아왔다. 신문배달은 해본 적도 없고, 보기에도 연약해 보여 지국장님은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석이 엄마는 열심히 하겠다며 시켜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배달을 하겠다며 많은 사람들이 오지만 며칠 하다가는 힘들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왕왕 있다. 배달 구역의 인수인계를 마쳤는데 갑자기 그만 두면 그걸 대체하기가 여간 곤혹이다.
지국장님은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석이 엄마가 잘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기는 하지만 책임감은 있어 보이니 한번 맡겨보자고 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양재동으로 배달 가는 도중에 우성아파트 입구에서 석이 엄마를 만나 신문 뭉치를 전해주고, 당분간은 배달을 도와주었다.
새벽에 젖먹이 둘째를 떼어놓고 나오기가 애달프지만, 남편이 아내의 뜻을 존중해주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이 엄마의 구역을 같이 마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는 결혼하기 전에는 효성그룹 연구소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었다고 한다. 결혼하니 남편의 급여만으로는 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는 것이 버거워서 부업이라도 해보려고 신문배달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막상 새벽에 일어나 이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힘은 들지만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다. 신문배달을 하다 보니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탈없이 배달하기를 보름 정도 되었을 때, 저녁부터 내린 비가 새벽까지 계속 내렸다. 나는 석이 엄마의 우의와 신문을 챙겨 가지고 우성아파트로 갔다. 혹시 비가 와서 나오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석이 엄마는 어김없이 나와 주었다. 그러나 표정이 영 좋지 않아서 괜히 내가 미안했다.
1동은 석이 엄마가 배달하고 나는 2동을 배달하였는데 한참을 지나도 석이 엄마가 오지 않았다. 1동으로 가보니 석이엄마는 계단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계속 울기만 하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려보았으나 수상한 인기척은 없다.
어스름 새벽에 주룩주룩 비는 내리고, 옆에선 한 여인이 훌쩍거리는데 정말 난감하였다.
“남들은 아직 포근한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훌쩍…, 깜깜한 새벽에 비를 쫄쫄 맞으며 신문을 배달하는 자신을 생각하니, 훌쩍…, 내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져 그냥 눈물이 쏟아졌어.”
무사히 한 달이 지나고 첫 월급으로 15만 원을 타면서 내게 양말을 선물했다.
“종인 씨, 난 이 돈을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비록 15만 원이지만 내겐 150만 원보다도 더 가치 있는 돈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신문보급소를 찾아와서 일정기간 머물다가 다시 자기의 갈 곳을 찾아 떠나갔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철새처럼.
시골에서 가출하여 올라온 고등학생, 피아노를 사기 위해 배달을 하는 중 2학년의 여학생, 우유배달을 하며 같은 구역의 신문을 배달하는 실속파 아줌마,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온 지방 출신 대학생, 학원비를 마련하려는 재수생, 경제적 배경이 없는 가난한 고시생, 직장을 다니며 배달하는 억척이. 밤낮으로 서너 가지 배달을 하는 전업 배달꾼 등등.
같은 시간에 어제와 오늘이 함께할 수 있을까?
나는 남보다 일찍 ‘오늘’을 시작하며, ‘어제’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어제를 떨구지 못한 그들을 오늘이 받아주지 않아서일까? 그들은 골목의 콘크리트 벽에, 가로수 나무 밑에, 하수구 맨홀에 어제의 잔재를 토해낸다.
“으웨웩, 으웩.”
그 옆을 환경미화원 아저씨, 우유배달 아줌마, 운동하는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새벽은 늦은 어제를 사는 사람과 이른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각이다.
세상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그럭저럭 사는 하루살이 사람,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해 노력하는 사람, 남이 하는 만큼만 적당히 일하는 무던한 사람, 남들이 하지 않는 엉뚱한 일에 심취하는 사람, 남이 해서 잘된 일만 좇아서 하는 안정적인 사람 등등.
어느 초여름, 수많은 텐트나방의 애벌레들이 꾸역꾸역 어딘가를 향해 기어가는 행렬을 한참 동안 굽어보았다. 어떤 놈은 힘이 드는지 가다가 그 자리에 그냥 서있고, 어떤 놈은 가다가 벽이 가로막으면 자주 진로를 바꾸고, 어떤 놈은 벽을 넘어 앞으로만 갔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어디론가 열심히 가지만, 그중에 많은 놈들은 사람에게 밟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새에게 잡아먹히고 개미에게 물려 죽지만 몇몇은 커다란 나무에 이르러 고치를 만들고 나방으로 거듭난다.
보급소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텐트나방을 생각했다. 나방을 꿈꾸는 애벌레처럼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치열함과 역동적인 분투, 그리고 주저와 포기와 체념.
김종현, 그는 서울교대 4학년생인데 새벽에는 신문 배달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저녁에는 컴퓨터학원과 피아노 학원에 들렀다가 밤에야 보급소로 들어온다.
그는 휴일과 방학 때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마련하였다. 나는 그를 ‘슈퍼맨’이라고 불렀는데, 그를 보면서 과연 인간의 한계가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다. 내가 군대를 전역한 후 두 달 정도 도로포장하는 노동현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처음 일주일 동안은 코피를 쏟아가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참 치열하게 사는구나! 물론 그의 상황이 넉넉하지 못함도 있겠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엮어가고 있었다. 그의 치열한 삶은 나를 준열하게 꾸짖었다.
인간은 배운 만큼 알고 안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행동하고 행동한 만큼 체험한다. 어떤 상황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념적인 의지는 냄비와 같아서 금방 달아올라 열띤 토의와 비등한 열의가 있지만 발열원이 없으면 쉬이 식어버리고 만다. 반면에 몸에 밴 경험적인 의지는 가마솥과 같아 진득한 인내와 꾸준함으로 나간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임용을 기다리는 동안 이 치열함을 직접 체험하고자 미장일을 하는 사촌 형에게 연락했다. 공사현장은 길음동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6시에 버스 기점인 개포동에서 71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정릉으로 갔다. 아침에는 이른 시각이라 교통체증이 없어 1시간이면 현장에 도착을 하지만 저녁에 돌아올 때는 퇴근 러시아워 때문에 3시간이 걸려 10시경에 보급소에 도착을 했다.
나의 일은 미장일을 하는 사촌 형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모래와 시멘트와 물을 나르며 반죽도 하고, 벽돌을 등에 지고 5층 옥상까지 나르기도 했는데,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감히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환갑 즈음의 아저씨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무진장 힘든 일을 그분들은 힘은 덜 들이면서도 일은 나보다 더 잘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비법을 그분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었다.
신문 배달은 4시경에 시작하고, 한 구역당 1~2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한 사람이 한 구역을 맡지만 경우에 따라서 두세 구역을 맡기도 한다.
신문보급소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보면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고, 배달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거나 급한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러면 보급소에서 기숙하며 배달하는 사람이 보충을 하곤 한다.
재벌언론사의 경우에는 여럿 총무가 있어서 배달사고는 담당 총무가 해결하지만, 우리 ㅎ신문 ㄱ지국은 총무가 한 명뿐이어서 혼자서 발송하고 배달까지 한다.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 지국장님의 애로를 외면할 수가 없어 도와주게 되는데, 어느 때는 본사에서 신문이 도착하는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배달을 하기도 하였다.
오토바이를 몰며 깜박 졸다가 중앙선을 넘기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배달을 하다가 너무 졸리면 아파트 계단과 계단 사이의 평탄한 곳에 신문을 깔고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새벽 내내 쏘다니다가 도서관에 가면 오전은 거의 비몽사몽이다.
어느 때는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자학 반 오기 반으로 배달을 왕창 맡기도 했다. 광개토대왕은 광활한 만주 벌판을 평정했는데, 나 광개토 배달은 광활한 배달구역을 평정하여 양재동, 포이동, 개포동, 일원동, 수서동을 누비며 다니기도 하였다.
신문 보급소에서 많은 ‘슈퍼맨’을 만났다. 아니 ‘슈퍼맨’ 보다는 밤의 이미지에 맞게 ‘배트맨’이 더 어울리겠다나. 때론 골목길 쓰레기통에 걸터앉아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던, 공원의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언 몸을 풀던, 도로를 질주하며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던, 희미한 가로등 아래 신문을 깔고 앉아 다른 동료와 현실을 한탄하며 서로의 어깨를 추슬러주던, 그러다가 신문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달리던, 그리고 아침이 되어 어중이떠중이와 뒤섞여 흘러 다니던 그 배트맨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각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겠지.
그러나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염려는, 세상이 그네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많은 배트맨이 ‘기득권 성(城)’의 높은 성벽에 부딪혀 절망 중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보급소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텐트나방을 생각했다. 나방을 꿈꾸는 애벌레처럼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치열함과 역동적인 분투, 그리고 주저와 포기와 체념.
많은 사람들이 보급소를 찾아와서 일정기간 머물다가 다시 자기의 갈 곳을 찾아 떠나간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철새처럼. 그네들도 떠났고 나도 떠났다.
“배트맨 포에버”
20세기 말, 경찰대학에서 근무할 때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