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미디어 컨텐츠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비평하는 방법
다섯 번째 강의에는 IZE 전 기자이자,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이신 최지은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대중 미디어 컨텐츠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어요.
*본 포스트는 강연 내용을 기획팀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오늘은 대중문화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려고 합니다.
제가 기자로 일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에 대해 썼고,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주로 예를 들어 말씀드릴게요.
우리가 어떤 글을 쓰려고 할 때에는 대개 이런 질문들로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10년 좀 넘게 대중문화기자로 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과거가 후회됩니다. 지금 누군가를 비판할 때도 불과 3년 전의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좋게 평가했는가, 그가 현재 쌓아올린 인지도와 인기에 나의 책임은 없을까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고민하게 된 것은 한국의 연예 콘텐츠가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공기 안에서 만들어지는지 깨달은 뒤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2015년이 기점이 되었어요.
지금도 예능에서 여성의 자리는 많지 않지만 2015년에는 ‘여자 없는 예능’이 심각한 수준이었어요. [무한도전](2006~2018)과 [1박2일(2007~현재)]이 리얼버라이어티 성공 시대를 이끌면서 남자끼리 모아놓고 뭔가를 하는 게 예능의 성공비법처럼 되어버렸죠. 새로 편성되는 예능 프로그램 보도자료를 보면 정말 남자들 이름만 나왔어요. 예능에 여자가 없는 것도 문제인데 무엇이 더 문제냐 하면, 여성 시청자들이 여성을 넣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남성 시청자들은 ‘여자가 끼면 안 웃기다. 여자 예능인들이 못해서 안 끼워주는 것을 왜 차별이라고 얘기하냐’고 했어요.
그렇다면 왜 예능은 이다지도 남자판으로만 굳어지게 되었는가. 예능을 만드는 사람들은 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걸까. 그것을 산업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봐야 할 필요를 느꼈고 열 명 정도의 예능 PD, 작가들에게 왜 여성 연예인을 쓰지 않는가에 대해 취재했어요. 그 때 어느 분이 ‘남성 시청자들은 나이 든 여자나 똑똑한 여자를 싫어하고 예쁜 여자만 좋아하며 여성 시청자들은 남성을 선호한다’고 했어요. 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생각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사실인 부분도 있었죠. 당시는 베테랑 여성 예능인들 대신 어리고 예쁜 아이돌, 몸매를 멋지게 만든 것으로 유명해진 분들에 대한 수요가 훨씬 많았어요. 뛰어난 예능인인 박미선 씨 같은 분이 지상파 메인 MC 자리에서 내려와 계속 밀려났던 것처럼, 방송계는 프로페셔널한 진행 능력을 가진 여성보다 ‘아무 말’이나 던지는 ‘아재’들을 선호하는 분위기였어요.
또, 여성 연예인에 대한 잣대와 남성 연예인에 대한 잣대를 다르게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여자가 뭘 조금만 잘못하면 대중들이 보다 쉽게 부정적인 이슈로 받아들이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성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주저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더 이상 누가 주목을 받기도 힘들고 성장할 가능성 자체도 차단된 상태였어요.
예능은 여성을 배제하기도 하고 아주 단순하게 소비하기도 합니다.
‘걸크러쉬’라는 표현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설렘이나 끌리는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인데 예능에서는 여성을 적당히 칭찬하고 싶을 때 ‘걸크러쉬’라고 합니다. “70년대 걸 크러쉬 삼인방. 김혜자, 김수미, 윤여정” 같은 식으로요. ‘쎈 언니’라는 말도 ‘걸크러쉬’와 함께 남용되는데 이 말이 가리키는 상대를 보면 ‘태닝한 여자, 타투한 여자, 서른 살이 넘은 여자’ 등입니다. 조금만 고분고분하지 않아 보이는 여성을 ‘쎈 언니’라 칭하고, 그 사람과 토크를 할 땐 ‘우리가 무례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쎈 언니라서 반박을 하는 것’이라는 식의 구도를 만들어요. 그리고 ‘걸크러쉬’, ‘쎈 언니’에겐 꼭 ‘천생여자’ 같은 표현을 덧붙여서 이 사람을 ‘안전한 존재’로 위치시킵니다. 예능이 여성을 지극히 한정된 틀에 집어넣는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비판하는 게 효과적일까 고민하다가 ‘한 번으로 끝내는 예능 자막 만능 단어 7’이라는 기사를 기획했어요. 이런 표현들이 얼마나 게으르게, 기준 없이 막 쓰이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고 여성의 성취에 대해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말했듯이 여성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송은이, 김숙 씨가 비밀보장이라는 팟캐스트를 시작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이분들이 TV에서 불러주지 않기 때문에 팟캐스트로 가서 판을 만든 거죠. 초기엔 몇몇 사람들이 듣다가 너무 재밌으니까 입소문이 나고 그러면서 이분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게 되고, 김숙 씨가 예능에 들어가고… 본인들이 맨땅에 해당을 하며 루트를 만들어간 거죠. 이 성취에 대해 매체가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에 대한 기사를 여러 번 썼어요.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예능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이 송은이, 김숙 씨 같은 분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럼에도 남자들만으로 구성된 세계라는 게 여성을 어떤 식으로 미디어에서 배제시키는가 라는 고민을 몇 년째 계속 하고 있어요. 올 상반기에 KBS가 쇄신을 하겠다며 내놓은 예능의 고정 출연자가 모두 남자였어요. MBC에서 내놓은 시사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 출연자 10명 정도가 전부 남자였던 적도 있어요. 요즘엔 방송에서 패널을 구성할 때 외국인이 한 명 이상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성별은 다 남자이거나 여성이 한 명 뿐인 경우가 많아요. 외국인 남자는 들어오는데 한국인 여자는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특히 전문가로서 여성을 보기가 힘들어요. 그럴수록 여성은 권위를 갖거나 신뢰받는 자리에 갈 수 없다,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대중의 편견을 강화시키죠.
이런 얘기를 하면 제작진들은 ‘그 자리에 맞는 여성을 찾을 수 없었다’는 식의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또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이에요. 여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제반 환경을 마련해줘야 하는 거죠. 처음부터 남자를 기본값으로 쭉 구성해놓고 여성을 한 명, 홍일점으로 끼워넣는 식으로 나와달라고 하면 출연이 굉장히 부담스러워지거든요. 매체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계속 환기시켜야 합니다. 여자들에게 자리를 줘야 한다는 얘기를, 저도 몇 년째 얘기하고 있거든요. 지겹지만 이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정말로 여성에게 자리를 주지 않아요. 그리고 계속 목소리를 내다 보면 약간의 변화가 생깁니다.
또 하나, 저는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여성을 욕하는 것이 ‘국민 스포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여성 연예인을 둘러싼 아주 다양한 논란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젊은 여자를 욕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상냥하지 않은 여자를 너무 미워하고, 애교를 부리지 않는 여자를 미워해요. 유명한 여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욕을 먹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미디어에 비춰지는 여성들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 시와 님이 하셨던 말씀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려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응원을 받는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방송 왜 이렇게 안 바뀔까 싶을 때 보면 좋은 기사 /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122510427244189
(2018년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성비는 여남 3:6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부족하지요.)
최지은 작가님께서 수강생 분들에게 내주신 과제 주제는
'요즘 나를 분노하게/찜찜하게 만드는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비평글 쓰기' 입니다.
현재 BOSHU는 지역에 사는 여성인물들을 소개한 10호 여성인물특집호를 펀딩/제작중에 있습니다. 동시에 대전에서 여성축구팀과 여성주짓수팀, 여성주의 글쓰기 강좌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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