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거창하게 쓸 이야기는 아닌데,
20년 전쯤 봤던 '나는 달린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이 나서 괜히 이렇게 써보고 싶었다. '나는 달린다.'라고 하면 남들은 다 안 달리지만 나만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나도 달린다'는 어쩐지 적당히 시대의 흐름에 섞여서 잘 흘러가는 것 같은 안도감을 준달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도 달린다.
이전에도 건강을 생각해서 간헐적으로 달리기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피치 못하며 불가피한 안타까운 사연으로 중도에 멈추기를 수차례. 그러나 이번의 달리기는 6일째 계속되고 있다. 아니 어제 하루는 쉬었으니 빼야 되나? 어쨌든, 계속되고 있다.
첫날은 의욕이 앞서서 달리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되어 죽을 뻔했고, 거의 기다시피 해서 겨우 4킬로미터 정도를 완주했다. 그리고 둘째 날은 그래도 하루 뛰어봤다고 나름 요령이 생겨서 덜 힘들었지만, 가족들을 구워주기 위해 밤새 발효를 시켜둔 빵 반죽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4.6킬로미터를 찍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셋째 날은 비가 오고 신발이 다 젖어서 2킬로 정도만 뛰고 되돌아왔고, 넷째 날은 그냥 열심히 달려서 4.5킬로미터 정도를 뛰었다. 1킬로미터를 7분대로 뛰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뛰다 걷다 하다 보니 8~9분대를 찍고 있다. 그래도 점점 덜 힘들고 있으니,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오늘은 비가 왔다.
그리고 실직한 지 거의 1년 만에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
입사 첫날부터 할 일이 많아서 늦게 퇴근을 했다.
그래도 재미있고 즐거웠다.
내가 느낀 기쁨만큼 이 회사에서도 나의 쓸모를 발견해 주면 좋을 텐데 하는 바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비가 내리는 수서역. 버스로는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
이미 많이 피곤했지만, 집에 가면 더 못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우산을 들고 노트북이 들은 가방을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신호에서 멈춰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달리고, 1킬로미터쯤 지나서는 옷이 너무 젖어서 걷다가 달리다가... 총 2.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그렇게 지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무언가가 뚝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작은 걸음이 하나하나 쌓여, 어느 날 뒤돌아 보면 하나의 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지금의 내가, 또, 언젠가의 내가 서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쌓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완전하지 않고 삐뚤빼뚤 쌓았더라도,
그래도 쌓인 것이다.
멀리서 보면 비뚤어져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쌓인 많은 점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쌓인 길을 지나 새로운 길에 들어왔고, 또 하나의 길을 만들기 위해 빗길을 달렸다.
앞으로 이 길이 어떻게 이어질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쌓아 볼 것이다.
조금 모자라고 비뚤지라도.
쌓고 또 쌓을 것이다.
쌓아보니 그래도 뭐라도 되고,
안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겠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일기 한편 쌓는다.
졸리니까 너무 비장해지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