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슬픈 사랑의 이야기

by 보스턴임박사

성탄절날 두 번째로 부른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마치 이런 진영이에게 마지막으로 포근함을 안겨주는 누군가의 토닥거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엔 눈이 많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죠 (I’m dreaming of white christmas)

이전에 알았던 그런 광경을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트리의 꼭대기가 반짝거리고 (Where the treetops glisten)

내리는 눈 속에서 아이들이 썰매 종소리를 듣는 그런 크리스마스 (And children listen to hear sleigh bells in the snow)


우리들의 중창단 노래가 끝나고 크리스마스 성탄예배가 모두 끝이 났고, 곧바로 이어서 2부 순서가 시작되었다.


비가 내리는 크리스마스


그때 누군가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지금 하얀 눈이 내린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모두들 흥분해서 즐거워하며 기뻐하였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신 해대며, 들뜬 분위기 속에서 2부 순서인 ‘파트너와 선물 나누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날만은 정인이와 소은이도 크리스마스 예배에 함께 있었다. 정인이는 여전히 그날도 성탄예배에서 피아노를 쳤고 인수는 당연히 정인이가 피아노만 치고 일찍 떠날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정인이는 집으로 가지 않고 소은이와 앉아서 즐겁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인이의 손을 보니 그 손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정인이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인수는 너무나 행복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인이는 인수가 있는 방향으로 웃으며 잠시 얼굴을 돌렸다가 다른 곳으로 쓱 훑으며 지나갔는데 인수가 보기엔 그 모습이 마치 자기를 찾으려고 일부러 인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가 겸연쩍어서 피하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수도 정인이에게 주기 위해 이미 선물을 준비해 온 터였다.


‘그녀가 제발 내 선물을 받아주기를’

.

인수는 마치 오늘이 천국에 들어가는 날인 것 마냥 두근두근거리고 설레어서 좀처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좌중이 안정되고 드디어 파트너를 정하는 순서가 왔다.

인수는 진영이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정인이와 소은이가 진영이를 부르며 그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인수도 진영이에게 인사하는 척하면서 그 반대편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말괄량이 소은이는 진영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진영이의 환심을 사려는 듯 보였으며 때때로 정인이를 바라보며 진영이에 대해 놀리는 듯한 말을 해서 정인이를 웃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 진영이 놈은 그냥 ‘허허’ 이럴 뿐 심드렁한 대응뿐이고 특별히 반응을 하거나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인수도 분위기를 보며 잠깐잠깐 소은이가 웃기는 말을 할 때, 혹은 진영이를 놀림으로 삼을 때, 자기도 거들며 분위기를 돋우려 애썼다.

이런 가운데 인수가 정인이의 눈에 들려고 여러 차례 눈 맞춤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정인이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진영이를 바라보거나 소은이로 향하곤 해서 결국 제대로 기회를 잡지는 못하였다.

다만 인수가 한마디 했다.

“아, 정인 씨, 아니 정인. 양… 음… 저으기 그. 대. 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소.”

‘엉?’

아! 말이 그만 꼬여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다시 진영이에게 오늘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얼 준비했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영이는 절대 무엇을 사 왔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정인아, 그거 원래 비밀이잖아. 조금 있으면 곧 알게 될 텐데 뭘…”

이러고 마는 것이었다.

‘싱거운 놈’

하고 인수는 생각했다.

진영이는 사실 인수가 정인이에게 마음이 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어찌 모르냐.


인수가 하는 행동을 5분만 보고 있으면 그 녀석 마음에 정인이 꽉 차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정인이도 당연히 알 거라고 진영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정인이의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지금 당장 누구를 따로 만나거나 할 시간이나 여유도 없거니와 정인이는 지금 교회에서 피아노 봉사하는 것조차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근래 들어 고민 중이라고 얘기해서 진영이가…

“그래도 가능하면 더 해 주면 좋겠지만, 안된다면 또 할 수 없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인수는 오히려 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부터 1일!!’

이런 생각에 아주 골똘한 중이었던 것이다.

파트너를 뽑는 순서가 인수에게 왔을 때, 인수는 너무나 심장이 두근거려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심지어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정인이가 좋았다.

파트너 결과,

인수는 소은이와,

정인이는 진영이와,

파트너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 서로의 파트너와 인사하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있자마자 곧바로 남녀학생들은 서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진영이가 갑자기 우리 네 명에게 제안을 했다.


“저기 미안한데, 내가 사실 소은이 선물을 주고 싶어서 오늘 준비를 했었거든.

미안한데, 우리 파트너를 서로 바꾸면 어떨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인수와 소은이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기뻤으나 티를 낼 수 없었고 그대로 정인이의 눈치를 살폈다. 정인이가 대답했다.


“아,

그래?

그럼….

그래….

내가 바꿀게.”


이렇게 해서 소은이가 진영이와 파트너가 되어 둘은 아주 신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수와 파트너가 된 정인이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인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수라고 했지?”

“어, 어, 어…. 오.. 오… 인. 수. 야. 오인수라고 해. 교회 나온 지 아직 얼마 안 됐어.”

“그렇구나. 반가워. 난 최정인이야. 피아노 치고.”


인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멎어 죽을 것만 같았다.

정인이가 이런 인수를 보고 물었다.


“저기 그런데 혹시 어디 불편한 데 있어?”

‘아! 불편한 게 아니라 좋은 건데.’ 인수는 속으로 아뿔싸! 했다.


그래서 인수는 이래 저래 괜찮다는 둥. 이런 미인이 어쩌고저쩌고. 교회가 너무너무 사랑이 넘친다는 둥. 그래서 좋다는 둥. 그냥 아무 말 대잔치를 무작위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인이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진영이한테 들었는데, 중창단이 인수 생각이었다며? 맞아?”

“어…어…응. 내가. 노래를 너무너무 좋아해. 그래서 중창단을 해 보면 어떨까? 이래서.”

“그렇구나. 나도 너희 중창단이 하는 노래가 참 듣기 좋아.

거기 반주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한 적 있어.

치사하게 중학생 어린 학생을 반주자로 뽑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전에 진영이한테 토라진 척 핀잔준 적도 있어.”

“어.. 정말? 반주자 하고 싶었…어??”

“아니, 솔직히 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왠지 부럽더라고.

오늘 마지막에 부른 Love is Blue 하고

특히 White Christmas는 너무 좋았어.

얼마나 근사하고 적절할 때 불렀는지.

지금도 눈이 오잖아?”

“그래. 사실 우연히 지난번 문학의 밤 연습하면서 그때부터 연습을 했는데 오늘 분위기랑 딱 맞네.”


이렇게 얘기가 무르익으려던 찰나, 사회자가 다시 말을 끊고 이제는 선물 교환을 하라고 말했다. 드디어 인수가 정인이를 위해 준비한 편지와 선물을 줄 수 있는 때가 온 것. 이. 다.


인수가 먼저 선물을 주면서 성탄 카드를 내밀었다.


정인이는 고맙다며 선물을 기쁘게 받아 조심조심 풀어 보고, 그다음엔 카드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 카드는 누가 봐도 정인이를 위한 편지인 것이 분명하게 쓰여 있었고, 인수가 정인이를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말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인수의 편지를 읽던 정인이가 편지 내용을 다 읽었는지, 천천히 눈을 들어 인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고마운데,

정말 고마운데,

사실 내가,

내가…

음…

고등부가 오늘로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아무래도 인수와 알기는 어려울 것 같아.

미안해.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걸.”


그러면서 정인이는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인수에게 건네주며 인수에게 말했다.


“이거,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 나중에 대학에 가면 혹시 그때는 교회에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때 혹시 볼 수 있으면 보자.”


인수는 정인이의 선물과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정인이는 미안하다며,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나가 버렸다.


소은이가 그 뒤를 따라갔다.

혼자 있는 인수의 곁으로 진영이가 다가와 슬며시 인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정인이는 떠났다.

최정인.

인수의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나온 바깥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여전히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인수의 눈에는


비가 내렸다.


하얀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내렸다.

하염없이 내렸다.

.

크리스마스 이후로 인수는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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