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밤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진영이는 지옥 같은 날을 보내게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신 것이다.
집에 온 아버지는 그런데 이상했다. 갑자기 어머니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진영이는 처음에 영문을 몰랐지만 아버지가 오시면 술을 마시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어머니와 싸우셨기 때문에 진영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잦아지기만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최근 들어 달라진 것은 어머니의 대응태도였다.
이전에는 그냥 맞기만 하셨는데 이때부터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도 강하게 맞대응하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폭력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진영이는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의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도 모른 체 한채 동생들만을 데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그날 갑자기 집을 뛰쳐나가 버리셨다. 그러자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오히려 아파트 문을 걸어 잠가 버려서 어머니를 추운 문밖에서 못 들어오게 되었다.
어머니가 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사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버지는 진영이와 동생들에게
“절대,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마!”
이렇게 무섭게 말을 했기 때문에 동생들 뿐만 아니라 진영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30여분을 대치했을까?
간신히 어머니가 집에 다시 들어오시게 되었고 그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완전히 파국으로 치달았다.
어머니가 정말 집을 나가신 것이다.
학교에 갔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5시쯤 들어왔다. 진영이가 나가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창업을 함께 한 경리 미스김이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미스김이 부엌으로 향하더니 진영이와 동생들을 먹일 것처럼 갑자기 부엌에서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파트 문이 확 열리더니, 그동안 안 보이셨던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그날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를 정말 크게 지르시고 미스김은 꽁지가 빠져라 하고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방안에 있던 아버지가 방에서 나와 빙그레 웃더니 다시 술을 내오기 시작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옆에 있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술만 계속 퍼마시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다시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자 진영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문을 잠그지 않았고 방문을 오히려 살짝 열어서 밖을 살피었다.
밖을 보니 어머니가 안방으로 피신을 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따라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듣다가 진영이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서
안방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진영이가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느라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 아버지의 어깨를 진영이는 양손으로 붙잡아 힘껏 내팽개쳤다.
이에 아버지는 힘없이 옆으로 동그랗게 나가떨어졌다.
화를 내며 진영이 아버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일어나려고 했다.
진영이는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아버지의 어깨를 양손으로 최대한 힘을 내어 눌러버렸다.
아버지는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진영이의 두 팔로 누르는 힘을 당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대신 노기를 띤 얼굴로 진영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진영이의 얼굴이 미친 사람 같이 광기 어린 얼굴로 아버지의 눈을 뚜렷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이걸 본 어머니가 오히려 더 놀라셨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난 어머니는 여전히 두 팔로 강하게 아버지의 어깨를 짓 누르듯이 누르고 있는 진영이의 두 팔을 살며시 잡으셨다.
처음엔 진영이는 절대 두 팔을 뺄 생각이 없었다. 만약에 이팔을 뺀다면 바로 아버지가 진영이에게 달려들어 때릴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진영이도 속으로는 너무나 무서웠다.
그때, 어머니가 조용히 타이르셨다.
“진영아, 네가 이러면 안 돼. 그래도 네 아버지야. 손 풀어”
어머니의 이 말과 함께 진영이는 두 팔을 아버지의 어깨에서 놓았다. 아버지는 어깨가 아픈지 어깨를 만지기만 할 뿐 진영이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진영이에게 있어서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진영이가 교회에 가서 중창단 멤버들과 연습을 하거나 함께 빵과 우유를 먹거나 하는 동안에 진영이는 전혀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려 노력했다.
집에서 교회로 오고 가는 거리는 진영이에게 도서관과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진영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 과거 이야기, 미래 이야기.
그러나, 그곳에 현재 이야기는 없었다. 진영이는 언제나 현재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Love is Blue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였다.
내 세상은 우울해요 (Blue, blue my world is blue.)
당신이 없는 지금 내 세상은 우울해요 (Blue is my world now I'm without you.)
내 인생은 외로워요 (Gray, gray my life is gray.)
당신이 떠나니 내 마음은 차갑고 냉정해졌어요 (Cold is my heart since you went away.)
내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어요 (Red, red my eyes are red.)
내 침대에서 혼자 당신 위해 울었어요 (Crying for you alone in my bed.)
우리가 만났을 때 태양은 빛났고 (When we met how the bright sun shine)
무지개가 사라질 때 우리 사랑은 끝났어요 (Then love died, now the rainbow is gone.)
Love is blue를 부를 때 진영이의 마음은 울고 있었고 소리 없이 울먹거렸다.
이제 모든 게 끝나는 이 순간. 우리들의 아름다운 중창단의 시작과 함께 찬란했던 고2 진영이의 1년이 지는 중이었고 반면 진영이에게 있어 아직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태양은 빛났고 무지개는 사라졌다.
중창단 멤버들은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이 될 크리스마스 공연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간절했다.
그 간절한 마음이 이 공연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이유이자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