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꿈인 피아니스트

정인이가 교회에 오는 이유

by 보스턴임박사

정인이 부모님은 고등학생인 정인이가 교회에 가는 걸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셨다.


정인이 아버지 (최영진)는 S대 화공과 박사로 대기업 S그룹 전무까지 계시다가 이후 창업을 해서 성공하신 자수성가 사업가였다. 본래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40대 말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으나, 그 이후 갑자기 교회를 떠난 분이었다.


기독교에 반감이 있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머니 (이인정)는 Y대 영문과 석사인 엘리트 여성으로, 번역가 및 작가로 결혼 전부터 정인이가 8살이 될 때까지는 방송국에서 유명한 회곡작가로 활동하시다가 정인이가 피아노로 두각을 나타내자 일을 그만두고 정인이에게 올인해서 사신 분이었다. 정인이 어머니는 본래 종교가 없었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 신앙을 가졌고 그 교회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주일예배와 구역 모임 외에는 더 이상 교회 활동은 하지 않으셨다.


정인이 어머니는 검소하셔서 사치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부도 적지않이 하시는 분이셨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시고 항상 책을 통해서 공부하시는 열혈여성이시다. 정인이 어머니는 재테크에도 능하셔서 검소하게 살면서 저축을 많이 하고 그것을 아파트 갭투자로 여러 채에 투자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셔서 정인이 가족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도록 재산을 모으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웬만해선 버스나 지하철을 타실 정도로 검소하셨고 이렇게 아낀 돈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시고자 노력하셨다. 정인이도 그런 어머니처럼 검소하게 자랐고 피아노 레슨을 다닐 때 꼭 대중교통으로 학교, 집과 선생님 댁을 오고 가곤 했다.

정인이 부모님은 정인이가 교회에 나오는 걸 나쁘게 보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좋게 보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도록 가르치셨다.


고등부 예배 반주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주하면서 예배를 통해 쉼을 얻게 된다는 것과 성가를 통해 클래식 감상을 배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 게 부모님을 이해시켰고 안심시켜 드렸기 때문이었다.


정인이 아버지는 대학시절 매우 가난한 고학생으로 아주 고된 시절을 보냈으며 전액장학생이면서도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정인이 아버지의 바람은 정인이와 아름이가 자신과 달리 고생하지 않고 여유 있는 학창생활과 평탄한 삶을 살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반면, 어머니는 정인이와 아름이가 젊었을 때에는 힘든 일을 겪어도 괜찮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남편과 결혼 초기에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경험 때문에 실제로는 정인이와 아름이가 아무런 고생 없이 아주 편안한 길만을 가길 바라셨다. 사실 당연한 부모님의 바람이었다.


정인이의 어렸을 때 꿈은 본래 변호사였다.


정인이 아버지가 원래 법대를 가서 판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할아버지 반대로 법대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인이는 아버지의 꿈인 변호사를 자신의 꿈으로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여중까지는 일반 여중을 다녔다. 그러다가 피아노로 전공을 바꾸게 되면서 예고를 다니게 되었는데 예중 출신의 텃세로 인해 학교에서 아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목표는 명문 S대학에 진학해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 줄리어드 같은 음대로 유학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1 때 이미 한차례 콩쿠르에서 입상을 한 상태였다.


정인이는 고2 초반까지 종로에 사는 교수님으로부터 매주 한 번씩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었다.


레슨을 받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날 때면 종로 음악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곤 했는데 거기가 인수가 디제이로 있던 음악다방이었다.

최근 정인이가 가고자 하는 S대학의 교수님 한분으로부터 진단을 받은 결과 정인이 정도 실력으로는 피아노 전공으로 합격이 힘들고 작곡과로 돌려서 지원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정인이 부모님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일 후 정인이의 피아노 레슨 교수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었는데 그분은 정인이의 집이 있는 대치동에 살고 계셔서 언제든지 레슨을 보강받을 수 있고 정인이의 피아노 연습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종로에 더 이상 가지 않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든 고2 때까지만이었다.

이제부터 정인이는 더욱 피아노 레슨에 시간을 쏟아야 했고 사실 고2 크리스마스이브가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마지막날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정인이는 자기 나름대로 마지막 고등부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자 오늘 특별히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2부 순서까지만 있을 수 있게 된 것이었고 대신에 2부 순서가 끝나자마자 또 교수님 댁으로 가서 피아노 레슨을 받기로 이미 예정이 되어 있었다.

소은이도 이런 정은이의 속사정을 알고 있었고 진영이뿐만 아니라 신기도 은연중에 그 부분을 알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1 때 신기, 진영이, 정인이, 소은이 - 이렇게 넷이서 함께 농촌봉사활동을 가는 것도 사실 그래서 정인이만은 허락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고1이니까 망정이었지 고2 때였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정인이가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상을 해서 정인이 부모님이 다소 안심이 되셨고 그 상으로 농촌봉사활동을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러니 정인이로서도 교회에 매번 나오거나 특별활동을 하기가 매번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어려웠다.


농촌봉사활동 중 정인이가 이런 고민에 대해 친구들에게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를 위해 같이 기도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곧바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정인이는 믿음이 있었고 소원이 있었다. 소은이를 통해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오기 전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교회에 오고 나서부터 마음이 크게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정인이도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다닌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를 열심히 섬기셨던 아버지는 어느날부터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고 어머니만이 주일예배와 구역모임만 참석하는 중이었다.

정인이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분이었고 정인이가 어머니로부터 듣기로는 아주 어렵게 자란 아버지는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에 전혀 가지 않으시고 다만 시간이 있을 때마다 혼자 성경을 읽거나 철학 서적과 역사책을 읽으신다고 한다.


정인이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였다.


정인이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경청하고 가끔씩 정인이와 차로 드라이브하면서 데이트도 하시는 좋은 아버지였다 차로 드라이브를 할 때면 정인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도록 해서 함께 듣는 걸 원하시고 좋아하셨는데 그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정인이의 어려움도 들어주셨다.

진영이에 대해서도 아버지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열심히 들어주시고 아버지 어렸을 적과 비슷하다고 하시며

‘힘들겠구나;, ‘잘해 주렴’

이라고 하시곤 해서 정인이는 아버지가 진영이를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신기 어머님과 아버님이 그동안 몇 차례 정인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전도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다.


그러나 사업이 바쁜 정인이 아버지는 만나기 조차 쉽지 않았고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와 정인이의 피아노 레슨 등을 조율하고 예고 학부모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셔서 너무나 여유가 없으셨다. 다만 정인이 어머니는 예의 바르고 교양이 있는 분이어서 신기 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며 항상 예, 예 하시고,


“아휴 그럼요. 정인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그때 꼭 정인이 아빠 모시고 갈게요. 기도해 주세요.”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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