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미래

by 보스턴임박사

진영이 어머니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새벽교회와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기도회 - 이 모든 기도회에 진영이 어머니가 있었다.

진영이가 고입 연합고사를 치르기 100일을 남겨두고 압구정 교회에서 처음으로 연합고사 중보기도가 생겼는데 거기에 진영이 어머니가 계셨다.

연합고사 중보기도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머니는 흥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진영아, 교회에서 처음으로 너희 학년을 위해 연합고사 중보기도회를 시작한데. 하나님이 너와 너희 친구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를 시키시는 걸 보니 너와 너희 학년들이 대단한 사람이 될 모양이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0일을 꼬박 채우셨다.


처음 시작하는 기도회에는 앉을자리가 부족할 정도였지만 끝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는 어머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100일 기도를 통해 어머니의 기도 동역자들이 많이 생겼다.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했다. 진영이만을 위해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신기를 위해서도 기도했고, 정우를 위해서도 기도했으며, 진영이의 고등부 모든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아셨다.


기도 동역자들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진영이네를 위해 무언가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쌀이나 반찬이었다.

진영이는 수많은 종류의 김치를 먹게 되었다.

서울 김치, 경기도김치, 충청도김치, 경상도김치, 전라도김치, 강원도김치 등

이렇게 많은 종류의 김치가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기도의 동역자들 중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머니의 전도로 압구정 교회에 나오게 된 어머니들이었는데, 모두 기도의 동역자들이 되었다.


격려금도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기별로 육성회비를 내야 했는데, 진영이는 6개월분을 이미 밀려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독촉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진영이는 담임선생님을 항상 피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진영이를 교무실로 따로 부르셨다.

진영이는 독촉받을 것이 두려워 피하고 싶었지만,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진영이를 보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진영아, 너희 동네 어떤 분이 오늘 너희 집 이야기와 밀린 육성회비를 모두 대납하고 가셨어. 선생님들끼리 회의를 했고 그 결과 네가 졸업할 때까지 남은 육성회비는 장학금으로 주기로 했어.”


이렇게 해서 까마득히 멀어 보이던 진영이의 고졸 졸업장은 다행히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진영이는 감사 인사와 함께 그 어머니께도 따로 인사를 드렸다. 그 어머니는 진영이의 친구 어머니셨고

경상도 김치를 보내 주시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이 모든 걸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 놓으셨다.

수많은 어머니들의 기도 덕분에 진영이 어머니는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진영이네 다섯 식구만이 아닌

수많은 기도의 가족들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진영이 어머니는 이 모든 걸 진영이에게 그대로 알려주어 진영이도 힘을 얻고 공부에 다시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 덕분에 진영이는 다시 교과서를 들 수 있게 되었다. 겨울방학 동안에 하던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내려놓고 오로지 책과 씨름하는 진영이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는 집에 오지 못했다.


계절은 겨울에서 시작해 봄을 지나 어느덧 더운 여름에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부도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그날 비가 몹시 내렸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아파트 문이 덜컹 열리며 두 명의 사복 경찰이 들이닥쳤다. 가족 모두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진영이가 열린 아파트 현관문 앞으로 뛰어가 양팔을 활짝 벌리고 경찰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온 아파트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수색영장 없이 내 집에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 말에 두 사복경찰은 들어오려다 말고 아연실색하여 엉거주춤하였다.

그러나 이내 사복경찰들은 다시 힘으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다시 진영이는 더욱 힘차게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만일 수색영장 없이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진영이와 경찰 2명이 대치하게 되었다.

아파트 앞에서 며칠째 매복을 하고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알고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지만 진영이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만큼은 아버지가 잡혀 나가게 하지 않으려고 발악했다.

이렇게 대치를 하는 중에 어머니가 진영이 앞으로 나와 경찰들을 달래며 잠깐 나가서 얘기하자고 하고 경찰들과 어머니가 아파트 밖으로 나가셨다.


아파트 문이 잠시 닫혔다.


진영이는 문이 닫히자 문을 걸어 잠그고 뒤로 돌아 아버지를 찾았다.

무슨 일인지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화장실 쪽에서 아주 기어가는 소리로 힘없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


그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에서 모든 걸 체념한 고양이 앞의 쥐와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느꼈다.

진영이는 다시 아파트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 복도 저쪽에서 어머니와 얘기하고 있는 두 경찰에게 말했다.


“이제 그냥 들어와도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경찰들이 진영이 아파트를 향해 들어오는데 어머니는 들어오셨지만 웬일인지 경찰들은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벌써 네 아버지를 빼돌리고 우리를 들어오라고 한 걸 모르는 줄 아느냐? 에이 오늘은 틀렸다. 우리는 그냥 돌아가겠다.”


이러고 문을 닫고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비가 정말 많이 내렸다.


진영이는 사복경찰들이 떠나고 아파트 현관문을 잠그고 자물쇠를 걸어 잠그자마자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눈물의 빚줄기


그날 온 가족들은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진영이는 다시 한번 교과서를 내려놓았다.


그 후로 두 번 다시 책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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