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에 핀 민들레

전자상가에서 시작한 인수의 창업 이야기

by 보스턴임박사

복사중창단의 크리스마스 공연이 끝난 이후 인수는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다.


중창단 연습을 위해 일주일에 절반만 나가던 전자상가 일을 주 7일 근무로 바꾸기로 했다.


월화수목금토토


인수에게는 일요일 휴일도 공휴일도 여름 휴가도 모두 사치로 느껴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

몸을 쓰는 공사장 막일 일과 달리 전자상가 일은 장시간 일을 해도 팔팔한 인수에게는 큰 무리가 되지 않았다. 그가 일하는 곳은 용산 나진상가였다. 인수의 새로운 사장님은 인수를 마치 친아들 대하듯 보살펴 주시는 고마운 분이셨다. 50대 중반이신 사장님은 이곳에 오시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오신 분이셨는데 한국의 라디오, 텔레비전, 냉장고와 워크맨 등 모든 전자산업의 역사를 함께 하신 살아있는 역사책이었다. 사장님에게는 남모를 아픔이 있으셨다. 그분께는 딸은 없고 아들만 하나 있는데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정신분열증이라고 했다.

인수가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영리한 것을 유심히 보신 사장님은 인수가 가정환경 때문에 일찍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인수가 전자상가에서 일을 시작한 지 2년째가 되던 어느 날 사장님께서는 인수와 짜장면으로 점심을 함께 드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수야, 네가 있어서 든든하니 참 좋아. 이제 좀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좀 쉬엄쉬엄 하려무나. 너무 일만 하면 몸도 다치고 마음도 다칠 수 있어. 인수야 그런데, 공부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니? 검정고시를 보면 고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어. 그리고 네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다 보면 너희 때에는 아무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인수는 사장님의 말을 들으면서 그냥 웃기만 할 뿐 특별히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인수라고 왜 공부하고 싶지 않으랴?


인수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


혼자 인수와 누나를 키워오시던 어머니께서 암 진단을 받으신 것이다. 평소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시던 어머니께서 원래부터 신장이 평소에 좋지 못하셨는데, 얼마 전 어머니께서 췌장암 진단을 받으신 것이다. 췌장암은 수술이 쉽지 않고 항암제를 맞으셔야 했는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누나와 인수가 병원비를 대느라 뼈골이 모두 빠질 정도였다.


러나, 두 남매는 엄마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로 번갈아 가며 병원에서 밤을 새웠고 낮에는 여지없이 회사에 가서 돈을 마련하느라 바빴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남매를 만들어 주셔서 번갈아 가며 간호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인수는 어머니의 병환에 대해 사장님께 함구했다. 자신을 친아들처럼 여겨주시는 사장님이셨지만 부담드리고 싶지는 않았고 이런 일로 양해를 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인수는 그렇게 공과 사를 항상 분명히 하려고 노력했다.


인수에게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바로 택집이었다.

중 2 때, 같은 반에서 짝꿍이 된 이후 택집이 와 인수는 가장 절친이 되었다. 택집이 덕분에 유흥가에서 돈을 벌 수도 있었고 음악다방 디제이 일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택집이는 인수를 만나고 나서 공부에 재미가 들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외우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택집이는 중 3이 되자 드디어 중상위권에 들기 시작했다.

다만, 택집이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형편은 못되었기 때문에 결국 공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택집이와 인수는 자주 만나서 나름 어려운 대소사를 나누며 힘든 일은 다독여주고 잘한 일은 격려해 주며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택집이는 공고를 나온 후 대기업 전자회사에 취업해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택집이는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보통 8시간씩 3교대를 했지만 택집이는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했고 야간 수당과 주말 수당도 챙겼다. 택집이는 이렇게 번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꼬박꼬박 저축을 이어 나갔다.

인수는 이런 택집이를 보면서 ‘참 배울 게 많은 친구다’라는 생각을 했다. 택집이는 이제 제법 의젓해져서 이제 미래는 개인용 컴퓨터 시대라면서 PC 산업이 대세라는 둥 인수로서는 그동안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택집이 만은 인수의 어머니의 암투병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택집이는 친구를 위해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인수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택집이가 몰래 병원비를 대납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인수와 인수 누나는 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가? 의아해했지만 좀처럼 감조차 잡지 못했다. 택집이는 인수에게 그런 천사 유령 같은 친구였다.


인수 어머니의 병환은 차도가 없었고 어머니는 점점 병세가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살이 붙을 틈이 없이 살아오셨던 어머니는 이제 뼈만 앙상한 과학실의 해골표본 같은 모습이 되어만 갔다. 어머니의 등뼈가 그대로 병원침대에 곧장 닿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더 이상 똑바로 누우실 수 조차 없었고 모로 누우 셔서도 어머니는 병원 베개를 몇 겹 씩 푹신하게 해 놓고서야 간신히 잠을 청하실 수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 인수의 어머니도 낙엽처럼 스러져 가셨고 결국...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비가 내리네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눈물의 빗줄기

자녀를 위하여 오래 흐느껴온

이 세상 이 세상


인수는 그렇게 이 세상에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머니,

인수가 살아온 바로 그 이유

바로 그분

어머니를 척박하고 차갑고도 딱딱한 어두운 땅 속에 묻어야 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한동안 인수는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택집이가 돈을 들고 찾아왔다.


30만 원이었다.

택집이는 인수에게 거금 30만 원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인수야, 이거 내가 너에게 투자하는 거야. 주는 거 아냐. 너 창업해라. 요즘 퍼스널 컴퓨터라고 있다. 그거 아직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명문대 공대 애들은 다 배우고 있어. 이거 이제 대세가 될 거야. 미국에 빌게이츠라고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었어. IBM이 빌게이츠를 못 쫓아갈 거야. 한번 해 봐라. 난 너를 믿어. 넌 돈을 허투루 쓸 놈이 아니니깐.”

택집이가 건넨 30만 원을 보자. 인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돈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택집이는 완강했다. 택집이 말이 명문대 공대만 잘 뚫어도 된다고. 영업만 다니라고 기술은 자기가 도와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택집이와 인수는 용산 나진상가 한 칸에 퍼스널 컴퓨터 수리점을 내게 되었다.


인수는 신림동, 신촌과 안암동의 공대를 찾아다니며 싼 가격에 퍼스널 컴퓨터를 수리해 주겠다고 했고 이렇게 해서 물건을 받아오면 택집이가 인수와 함께 밤늦도록 수리를 해서 고쳐 주게 되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초기에는 좀 힘들었지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 사업이 점차 안정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인수는 보도블록에 핀 민들레처럼 점점 강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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