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이의 첫 사업
드디어 40일간의 금식기도가 끝이 났다.
진영이는 결국 이 40일을 다 채울 수 있었고 40일이 되기 이틀전 정말로 보스 목사님으로 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축하한다는 내용이었고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진영이는 내심 스스로가 뿌듯했다.
학교에 오자마자 진영이는 무조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단 1학년에 배우는 일반화학, 일반물리, 일반생물, 일반 수학과 같은 교양 과목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것에 좀 심화된 정도이지 그리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고 교재가 모두 국어로 되어 있어서 줄줄줄 읽어 나갔다. 물리나 수학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생물은 정말 별로 였고 화학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준호형 말이 바로 옆에 KAIST 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준호형이 점심을 사 주어 같이 먹게 되었다.
진영이가 가난하게 등록금 걱정을 하는 걸 알게된 준호형이, 국비장학금으로 졸업때까지 무료이며, 모든 학생들에게 매월 얼마씩 생활비도 대어 주는, KAIST라는 특수 대학원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었다. 그리고 KAIST 석사만 졸업하고, 아무 대기업이나 들어가서 3년만 일하면 군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학준비하는 사람들이 KAIST를 선호한다고 했다.
입학시험이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KAIST 화학과는 매년 30명 정도를 뽑는데, 영어시험 100점, 객관식 시험 300점, 주관식 시험 300점, 총 700점 만점에 400점 이상이면 합격가능성이 있고 450점 이상이면 안정권이라고. 그런데, 대부분 400점에서 450점 사이에 몰려있다면서. 특히 첫교시 영어시험과 마지막 주관식 시험이 아주 어렵다고 했다.
K대학교에서는 진영이의 6년 선배가 처음으로 KAIST에 들어갔고, 그 이후부터 매년 1-2명씩은 꾸준히 합격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족보가 있다고 했다.
준호형이 그 6년 선배님뿐 아니라, 다른 KAIST에 다니는 선배님들을 잘 아는데, 아마 5월에 있는 K대학축제때 만날 수 있을거라고 말해 주었다.
KAIST?
군대가 대기업에서 월급 꼬박꼬박 받으면서 3년만 다니면 해결되고, 등록금이 무료이며, 생활비로 돈도 주고, 조기박사로 4년이면 박사를 받을 수 있다니…
당시 군대 현역병은 2년반 조금 안되는 기간을 허송세월로 보내야 했는데, 돈을 벌면서 3년이면 군대가 해결된다는 말에 진영이는 귀가 번쩍 뜨였다. 게다가 무료에 생활비를 준다면 이건 꼭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진영이로서는 꿈의 KAIST가 아닐 수 없었다.
준호형 말로는 여기를 졸업하면 가고 싶은 곳에 어디든지 마음대로 골라서 갈 수 있다고 하면서, 2지망으로 화학과에 들어와 헤메고 있는 진영이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런데 K대학교를 집에서 다녀보니, 너무나 멀었다. 편도로 1시간씩 왕복 2시간 이상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는 게, 진영으로서는 마치 길에다 돈을 모조리 쏟아붓고 다니는 것 같아서, 아주 한심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5월은 대학축제 기간이었다.
K대학 축제는 3일간 진행되는데, 진영이는 이 축제 기간동안 남자동기 5명과 함께, 물풍선 맞추기 사업을 구상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건장한 남자들로 모았는데, 얼굴보다 약간 큰 구멍을 낸 나무판에, 얼굴만 내어놓고 물풍선을 던져 사람을 맞추는 게임을 해서 돈을 벌려는 것이었다. 풍선과 물, 나무판 하나만 필요한거라, 투자비는 거의 안 들어가고. 게임 가격을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면, 그래도 등록금 반액 이상도 벌 수 있고, 그걸 5명이 나누면 된다는 계산이 섰다.
진영이는 항상 이렇게 돈벌이 궁리를 하느라 바빴다.
다른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면서 데이트하느라 바빴지만, 진영이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드는게 급선무였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빨리 학교로 가려는데, 정인이가 다가왔다.
동계수련회 이후로 몇달 만에 보는 것이었다. 정인이 곁에 소은이도 함께 있었는데, 둘은 진영이를 보자 여고생처럼 반가워하며 새처럼 종알대기 시작했다.
진영이도 반갑기는 했지만 내일부터 축제가 시작되는데, 물풍선 맞추기 사업 때문에 학교로 다시 가봐야 해서 마음이 좀 바쁜 상태였다. 정인이와 소은이가 뭐가 그리 맨날 급하고 바쁘냐고 핀잔을 주었다.
진영이는 여차 저차해서 지금 가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할 수 없이 물풍선 맞추기 사업 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정인이와 소은이가 까르르 웃으면서, 그거 재미있겠다고 자기들도 가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결국...
정인이와 소은이가 축제 둘째날에 오기로 약속을 하고 진영이는 학교로 서둘러 돌아갔다.
첫날 물풍선 사업은 그냥 그저 그랬다.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고, 계획할 때는 몰랐는데, 일단 사람들이 오기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우리끼리 먼저 던지고 맞으며 분위기를 잡아야 했다. 그렇게 한 5, 6번 맞다 보면, 그제서야 사람들이 돈을 내고 물풍선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또 손님이 끊어지면, 잠시 쉬었다가 사람들이 몰릴 때 즈음, 다시 우리끼리 5, 6번 주고 받으며 분위기를 띄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편, 이걸 해보니 5명으로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우리 창업자 5명만으로 시작했지만 여러대 물풍선을 맞고 나면, 다음 사람으로 바로바로 바꾸어 주어야 했고, 그동안 또 다른 사람은 물풍선을 계속 만들거나 터진 물풍선을 청소하는 등, 잡일이 예상외로 많았다. 동기들이 여러명 재미삼아 왔다가 이런 현장을 보자, 그만 너도 나도 나서서 맞아주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5명의 사업이 갑자기 진영이 화학과 1학년 전체 행사처럼 돼버렸다.
그래도 오후에는 해가 나서 좀 괜찮았다.
몸이 생각보다 잘 말랐기 때문이었다. 봄에 맞는 물풍선은 좀 추웠고, 때때로 힘센 남자손님들이 너무 세게 던져서 아프기까지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자들은 정말 가차없이 세게 내리 꽂았다. 동업자 5명만 맞으면 괜찮지만, 그냥 옆에서 구경하며 도와주던 친구들이 대신 맞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 너무나 난처하고 미안했다. 오후 마지막이 되자, 더욱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잡았고 시간이 뒤로 갈수록, 해가 넘어가면서 날도 추워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축제의 첫날 물풍선 맞추기 사업이 그럭저럭 끝이 났다.
첫날 사업이 끝나고 정리할 무렵, 선배형들이 나타났다.
2학년 선준호형이 2명의 KAIST 선배형들을 대동하고 진영이네 물풍선 사업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한분은 얼굴이 하얗고 키가 178cm 정도 되시는 분이었고, 다른 한분은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작은 분이었는데, 약간 외계인 같은 얼굴에 말을 약간 더듬는 사람이었다.
준호형이 진영이에게 다가와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외계인 같이 생기고 말을 더듬는 분은 작년에 KAIST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한 선배 신유기 형이라고 했고, 큰키에 얼굴이 하얀분은 6년전에 처음으로 KAIST에 들어갔다는 그 전설의 선배님으로 이름은 이태성 형이라고 하였다. 이태성 형, 신 유기 형 둘다 유기화학을 전공으로 한다고 했다.
신유기 형은 이태성 형보다 한발 뒤에 항상 서 있었는데, 신유기 형의 말을 더듬으며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이태성 형은 조기박사여서, 내년이면 박사과정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이태성이 형은 고작 24살이었다. 내년이면 겨우 25살에 유기화학 박사가 되는 것이다.
‘이게 말이돼?’라고 계산빠른 진영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성이형이 진영이에게 다음달에 KAIST에서 후배들 초청 행사가 있는데, 그 때 꼭 오라고 하셨다. 태성이형은 공부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도닦는 스님 같은 인상이었는데, 진영이의 이 말에 태성이형은 크게 웃으며, "난 교회 잘 다니는 크리스천이에요." 라고 하셨다.
교회에 다닌다는 말에 진영이는 태성이형이 더욱 관심이 갔다. 이제 태성이형은 합창단으로 가신다고 하셨다. K대 합창단 출신이라고 했다. 진영이는 태성이형이 자신과 비슷한 점도 많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