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이, 진우, 영은이 이야기
다음날, 진영이네 5 식구는 이사를 갔다.
7년간의 정들었던 선릉역 아파트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아침 일찍부터 이삿짐 트럭에 진영이네 짐을 가득 싣고 나자, 어머니의 기도 동역자들이 갑자기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트럭에서 내려서, 한분 한분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진영이도 기도 동역자 어머니들께 일일이 고개 숙여 인사드렸고, 다른 가족들도 이같이 했다.
기도 동역자 어머니들은 눈물로 진영이네를 배웅했고,
어떻게든 격려를 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들을 뒤로 한채, 진영이네는 정든 아파트를 떠났다.
이삿짐 트럭은 남서쪽 방향으로 한참을 달렸다.
도시를 지나 이윽고 시골길로 접어들었고, 작은 삼거리를 지나 한번 돌더니, 다시 산등성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쯤에 이르자,
어느 작은 2층 기와집 앞에 섰다.
컴컴한 밤이었다.
진영이네 새 보금자리는 2층 기와집 지하였는데,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고, 다행히 화장실도 옆에 따로 하나 있었다. 그리고 세 개의 방이 나란히 기역자로 있었다. 부엌이나 주방 같은 건 따로 없었다.
기와집에 사는 주인 내외가 진영이네를 반겨주셨는데, 밤에 본 주인아저씨는 네모진 얼굴에 상처가 있으셔서 무섭게 느껴졌다. 다만, 주인아주머니가 예쁜 얼굴에 밝게 웃으시는 게 진영이는 마음이 놓였다. 그곳 지하에 진영이네 가구와 집기를 내렸고, 첫날밤을 지냈다.
진영이네의 새 보금자리는 하남시 신장동이었다.
서울 강남 8 학군에서 평생을 산 진영이네는 처음으로 하남시 신장동에 살게 되었다.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이라는 곳이었다.
진영이는 대 1, 진우는 고2, 영은이는 중3이었는데 비록 집은 이사를 왔지만, 진우와 영은이의 학교는 전학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멀어진 통학길을 개척해야 했다.
진우와 영은이네 학교까지는 신장에서부터 1시간이 넘게 걸렸고, 진영이네 K대학까지는 거기서 다시 1시간을 달려,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아주 먼 거리였다.
그러나, 거리는 이들 삼남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회의 문이 멀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진영이는 매일 진우와 영은이를 데리고,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해서,
먼저 진우를 버스에서 내려 보내고, 몇 정거장 간 다음,
영은이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영은이는 진영이가 살던 아파트 앞 여고로 향하고,
진영이는 다른 버스를 잡아 타고 한참을 가다가, 동대문에 이르러 다른 버스로 갈아 탄 후, K대학 정문 앞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진우와 영은이가 같이 만나서 버스를 타고, 하남시 신장동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진영이만 대학에 보낼 계획이었다.
진우와 영은이는 각각 공업 고등학교와 상업 고등학교로 진학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진영이가 이걸 완강히 반대해 막았다. 진영이는 자신이 대학을 그만두더라도 진우와 영은이만은 꼭 대학졸업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진우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영은이만이 아직 중학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100일 기도를 시작하셨다.
진영이, 진우, 영은이가 모두 2학년 터울이어서, 어머니의 100일 기도는 매년 반복되고 있었다.
진영이를 위해 중3, 고3 2번의 100일 기도가 있었고,
진우를 위해 중3 100일 기도를 드렸다.
이번엔 네 번째 100일 기도였는데, 중3 영은이의 고입 100일 기도였다.
진우의 꿈은 전자공학자, 영은이의 꿈은 연예인이 되는 것이었다.
진우가 전자공학자가 되려는 것도
영은이가 연예인이 되려는 것도
모두 돈을 빨리, 많이 벌기 위해서였다.
진우와 영은이 모두 대학에 가려면, 입학전액장학금이 필요했다.
진우가 대학 입시를 하는 방식은 진영이와 달라졌다.
먼저 대학을 선택하고 그 대학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었다.
우등생 진우는 공부를 잘했는데, 문제는 눈이었다.
진우는 색을 분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이것을 문제 삼는 대학이 대부분이었다.
오직 두 개 대학만이 이를 문제 삼지 않았는데, 둘 다 명문대학이었다.
진우는 둘 중 두 번째 명문대학인 S대학으로 입학전액장학금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다음 해 11월 시험을 보고 나오는 진우는 너무나 아쉬워했다.
진우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겼다.
진우도 복사중창단에 참여했다.
자유와 광웅이가 고2가 되었을 때 그때 진우가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는 4명밖에 모이지 않아서 단사중창단이었다.
진우도 중창단을 하면서 자유와 광웅이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유형과 광웅이 형이 진영이에게 배웠던 화음과 마음 맞추는 법을 진우와 다른 멤버에게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매사에 신중한 편이었고 똑똑해서, 미리미리 모든 일을 계획하는 성격이었다.
진우는 형인 진영이보다 더 노력해야만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진우는 자신의 우려와 달리 S 대학 전자공학과에 1년간 입학전액장학생으로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눈으로 인한 어려움과 가정적 어려움, 2중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때에도 어머니의 100일 기도는 기적을 낳았다.
진우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진우는 전액장학생이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1학년말까지 좋은 성적을 유지하자, 진우에게는 대학원까지 전액장학금과 함께 생활비까지 덤으로 받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두 회사에 합격이 되었다. 한 가지 조건이 달랐는데 생활비 액수였다.
S사가 L사보다 10만 원 더 많이 주었다.
진우는 S사 산학전액장학생이 되어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고, 그 후, S사에서 군문제를 마쳤다.
영은이는 어머니의 100일 기도 덕분에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영은이는 명문 E여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영은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날까지 진영이네 재정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신용불량자가 된 아버지가 은행거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은이가 대학에 가는 걸 못마땅하게 여겨온 아버지는...
진영이에게 '영은이 입학금은 네가 알아서 하라'라고 호통을 쳤다.
결국 진영이는 영은이를 데리고 한약방을 하는 외할아버지 댁, 논산 외갓집으로 가서
푹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한참 후, 간신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은이 입학금을 좀…. 빌. 려…. 주. 세. 요. 꼭 갚을게요.”
결국 영은이는 입학할 수 있었다.
영은이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부터 졸업하는 날까지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여러 개씩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영은이는 유아교육과로 진로를 틀었다.
그 이유도 바로 돈이었다. 졸업 후 빨리 유치원을 차릴 심산이었다.
진영이는 동생들을 아버지 사업 부도 후 30년간 서로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각자도생. 스스로 살아내야만 했다.
진영이는 이제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예배만 겨우 참석한 후 학교로 갔다.
진영이는 고2 때 힘든 삶 속에서 복사중창단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복사중창단이 없이 고등부에 다녔다면, 아마 진영이는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 친구들이 없는 대학부나 청년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진영이에게도 복사중창단은 '우리들의 복사중창단'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누구’와 하느냐는 것이지, ‘노래’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기, 자유, 정우, 정태, 진영이, 광웅이, 인수, 원석이
이렇게 8명이 모두 함께 해야 하고, 그래야 그 안에서 마음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는, 진정한 우리들의 복사중창단이 되는 것이다.
이 8명이 불변의 상수이고, 대체불가라고 진영이는 생각했다.
함께 그 1년간 공유했던 그 모든 것이 진영이에게 가장 큰 자산이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서로 잘알지 못했던 8명의 고2, 고1 남학생들이 처음으로 함께 불렀던 노래, 비가 내리네, 는 이들을 묶어주는 복사중창단가가 되었고 진영이의 위로곡이 되었다. 진영이는 어려울 때마다 복사중창단을 생각했고 그 때마다 비가내리네를 부르곤 했다. 그 노래를 부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었고 아무것도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배가 고플 때에도 비가 내리네를 불렀고 공부가 어려울 때에도 비가 내리네를 불렀으며 돈이 없어서 앞이 막막할 때에도 비가 내리네를 불렀으며 현실적인 문제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면 그 때마다 비가 내리네를 불렀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네의 1절 가사를 좋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영이는 2절을 더 자주 부르게 되었다.
그 옛부터 들려오는 외침
내 귀에 들리네
전쟁과 굶주림 못 견디어 우는
저 음성, 저 음성...
우리 위하여 죽으신 아기 예수께
우리는 무얼 배웠나?
왜 아직 서로 헐뜯고 평화 모를까?
왜 우리 눈은 이리 어둘까.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점점 아득해져 갔고 선명히 들리던 복사중창단의 노래 소리는 그냥 어떤 소리이자 외침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치 전쟁 같았던 진영이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으며 셀 수 없었던 굶주림의 시간들이 그와 함께 기억안으로 스며들었다가 서서히 밀려 나갔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지나갈 것이었고 미래를 향해 계속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영이는 미래를 믿었다. 아니, 미래가 올 것이라 믿었다. 스스로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