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밑바닥부터 레벨업

by 보스턴임박사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지 몇 년이 지났다.


100년 만에 한번 일어난다고 하는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위기 속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근 3년간 전인류가 수백만명의 사망자와 장기적 후유증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재택근무를 했고, 글로벌 공급망이 일시에 마비되었다.


자영업자들이 줄도산했고, 대기업조차 큰 위기를 겪었다.

각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이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회의와 제안을 했지만,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원하듯 손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 나와 우리 가족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난생처음 겪는 수많은 일상을 맞닥뜨려야 했다.


대학교에 다니던 큰딸은 학교가 휴교하게 되면서 3학년 때 집으로 돌아와 졸업을 했다. 졸업식이 있었지만, 당사자인 큰딸만 참석할 수 있어서 나와 남편 그리고 막내는 나중에 집으로 배송된 학위수여증을 보며 큰딸의 졸업을 집에서 조촐히 축하해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막내도 집에서 수업을 듣다가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막내의 졸업식은 온 가족이 차를 탄 채, 마스크를 쓴 선생님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학교 정문 앞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집으로 온 게 전부였다.


난 처음으로 식모처럼 네 가족의 매끼 식사를 챙기는 하녀가 되어, 온 가족을 돌보아야 했는데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쓰려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남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남편은 연구원이고, 모두들 그를 보스턴 임 박사라고 부른다.

내 남편, 임 박사는 세상이 온통 문을 닫은 듯 조용하던 그 상황에서 혼자 일을 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임 박사는 어느 작은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회사는 메신저 RNA (mRNA)라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매우 불안정해서 절대 약이 될 수 없다고 하는 mRNA를 약물로 개발하겠다고 하는 미친 회사였다.

임 박사는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나기 5년 전, 이 미친 회사에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제 발로 들어갔다.

임 박사가 들어가던 해, 이 미친 회사의 전 직원은 고작 100명 정도였고, 그중에는 계약직 연구원도 상당히 많은 비상장회사였다. 창업한 지 고작 5년도 안된 신생 스타트업이었다.

그는 이 미친 회사가 고용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초의 공정개발 화학자였다.

공정개발 화학자는 쉽게 설명하자면, 새로운 약을 아주 높은 순도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생산공정을 개발하는 화학자를 말한다.


나는 지금부터 나의 남편, 보스턴 임 박사의 옆에서 함께 겪었던 모든 일에 대해 낱낱이 얘기하려고 한다.


사실 나도 Y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보스턴 임 박사의 회사에 나의 Y대학 동문들이 꽤 있는데, 그들로부터 회사 안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히 전해 알고 있었다. 난 사실 처음에 보스턴 임 박사를 의심했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 회사는 8시 조금 넘어서 출근해서 5시 즈음에 퇴근하는데,

보스턴 임 박사는 6시에 출근해서 9시 넘어서까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집에 10시가 넘어서 들어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도 가끔 있는 일이 아니라,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누가 곁에 함께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혼자" 일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믿기지 않는 건 여름휴가를 안 간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알고 보니, 보스턴 임 박사만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내 통신원들인 Y대 동문 후배들을 보면, 모두들 임 박사보다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여름휴가는 꼬박꼬박 잘 챙기고 해외여행도 다들 좋은 곳에 다녀오고 했었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전 이야기다.


그런데, 무슨 일중독에 빠진 인간인지, 임 박사와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를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심할만하다고 판단해서, 나는 이 미친 회사에 다니는 Y대 동문을 수소문해서 3명 이상의 충직한 통신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난 이들에게 보스턴 임 박사의 동태를 파악해서, 매일 이메일, 문자, 혹은 전화로 좀 알려 달라고 사정했다. 역시 나의 Y대 동문들은 자랑스러운 후배들이었다.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부탁에 성실히 답해 주었고, 나는 그분들이 보내주는 보고서를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보고서의 내용이다.


물론 내가 보스턴 임 박사는 아니기 때문에 24시간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자기 속마음을 말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를 완전히 알 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성실히 얘기할 의지가 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