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나는 Y대학 4학년 때 인생의 목적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같은 대학 언니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 교회에서 KAIST를 다니는 임 박사를 처음 보게 되었다.
어느 날 밖에서 남자들이 무반주로 중창곡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며 지하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 소리가 너무 황홀해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문쪽을 바라보는데, 그때 맨 앞에 들어온 사람이 임 박사였다.
나는 KAIST에 간 Y대학 선배들을 몇 명 알고 있어서, 대학교 4학년 때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임 박사를 보게 되었는데 아주 피골이 상접하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를 보고도 그냥 인사만 잠시 할 뿐, 그대로 지나쳐 자기 연구실로 가는 그런 멋없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당시 임 박사는 아주 힘든 상황이었다.
임 박사가 새롭게 맡은 프로젝트도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화학 연구였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뉴클레오사이드는 임 박사가 천연물 분리를 해서 얻은 신물질에도 있던 유전 정보 전달 물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용해도였다고.
녹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유기화학반응을 하려면 유기용매에 녹아야 하는데, 유전정보전달물질인 뉴클레오사이드는 어떠한 유기용매에도 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화학반응을 시킬 수도 없고 반응이 되었더라도 순수하게 정제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연구실에서 단 한 사람만이 혼자서 뉴클레오타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S대 화학과를 나오고 박사과정 마지막이 된 그러니까 석사부터 박사까지 5년이 거의 다 된 사람이었단다. 결국 5년간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난 5년간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던 연구
그게 지금 임 박사에게 주어진 연구였다고.
S대 형은 임 박사를 볼 때마다,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야! 초절정하수!!”
무협지에 고수와 하수가 나오는데, 무림 고수가 최고수이고 가장 최고수가 초절정고수이다.
그러니까, 임 박사는 하수 중 초절정하수라는 말이란다.
초절정하수 임 박사는 S대 형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대체 뉴클레오사이드가 뭔데 아무도 안 하는지 배우고자 했다고 한다.
유전정보전달물질인 뉴클레오사이드가 아주 마음에 든 것이다.
유전정보는 결국 생명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생명 전달 물질인 것이다.
임 박사는 여기에 완전히 꽂혀 버렸다고 했다.
녹지 않는 문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이 물질이 생명 전달 물질이고
새로운 약을 만드는 화학인 유기화학에서
'뉴클레오사이드로 새로운 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초절정하수 임 박사는 초절정고수 S대 형에게 열심히 매달려 틈나는 대로 배웠다.
그런데, 뉴클레오사이드가 특이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리 몸에 DNA와 RNA가 있다.
DNA는 유전정보이고 RNA는 전달자이다. 유전정보에 의해 단백질을 만드는…
재미있는 건 뉴클레오사이드가 DNA와 RNA의 가장 기초적인 물질, 즉 단량체이다.
그러니까,
뉴클레오사이드는 DNA와 RNA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기초 물질인 것이다. 임 박사는 이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왠지 뉴클레오사이드가 좋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좋아하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
1987년, 미국에서 역사적인 일이 하나 터졌다.
인류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가 공식 승인된 것이다.
이름은 지도부딘(Zidovudine).
지금 기준으로 보면 초창기 버전이지만, 당시엔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였다.
에이즈는 더 이상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병”이 아니게 됐다.
이 약은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이자, 뉴클레오사이드 계열의 신약이었다.
이 한 번의 승인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제약·바이오 업계의 시선이 전부 뉴클레오사이드로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각 한국에서는—
KAIST 석사과정 1학년이던 임 박사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국 바이오 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뉴클레오사이드가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도.
그는 그냥,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 공부하고 있을 뿐이었다.
S대 형이 어느 날, 연구 테마를 하나 툭 던져 주었는데
1-2주 만에 학회발표할 결과를 다 얻어서 랩미팅에서 발표했다고 한다.
다들 깜짝 놀라서 헛헛 웃더란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몇 달씩 실험을 해야 학회발표할 결과를 얻으니까
임 박사는 미친 듯이 실험을 했다고 했다.
초절정하수 임 박사는 뉴클레오사이드만 연구하며 평생을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녹지도 않아서 아무도 하지 않는 뉴클레오사이드 연구를 미친 듯이 하는
정말
바보 연구원이었다.
만약 임 박사의 가정 상황이 박사과정을 가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임 박사는 뉴클레오사이드 연구를 더 하고 싶었다고 한다.
'완전 바보가 아닌가?'
이태성 형을 멘토로 모시고 살아온 임 박사는 이태성 형의 커리어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덕분에 KAIST 1학년 1학기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지도교수님이 평소와 달리 흥분해서 말씀하셨다고 한다.
“임군, 1학기 성적이 아주 좋아요. 그대로만 유지하면 석사 1년만 마치고 조기박사로 갈 수 있겠어요. 열심히 해요.”
초절정하수 임 박사로서는 처음으로 인정을 받는 느낌을 받아, 매우 기뻤다고 한다.
이 기쁜 소식을 부모님께 알리기 위해 금요일 수업을 마치자마자, 고속버스를 타고 곧바로 집으로 왔다고 한다.
고속버스가 그렇게 천천히 가는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임 박사는 곧바로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박사는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임 박사네 집은 이제 더 형편없어져 있었다.
새로 이사를 갔는데
그냥 방 한 칸이었다.
부엌도 없고
화장실도 공중화장실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는
조그만 방 하나에 임 박사 가족 4명이 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 순간,
임 박사는 조기박사의 꿈을 바로 접었다고 한다.
그래도, 너무 기뻐하시던 교수님께 조기박사를 하지 않겠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겠더란다.
조기박사 올라갈 성적이 되면, 박사로 올라가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고.
방법이 없었단다.
임 박사는 결국
2학기 성적을 그대로 깔아 버렸다고 한다.
결국 교수님께 완전히 깨졌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더!
임 박사야 말로
조기박사에 너무나 올라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교수님께 깨지던 순간도
깨지고 교수님 방을 나와서도
실험실에서 앉아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임 박사는...
밤늦게 혼자
기숙사 방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밤새도록
그 밤이 다 가고 새벽이 오더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룸메이트가
방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