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린 카리코 (6) 스타트업으로의 도박
데릭 로시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2010년 **모더나(Moderna)**를 설립한다. 모더나의 성장은 그야말로 수직 상승이었다.
압도적인 투자금: 창업 직후 벤처캐피털로부터 수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2013년에는 아스트라제네카(AZ)로부터 초기 계약금으로만 **2억 4,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받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대학의 소외: 정작 기술의 원천인 UPenn은 이 기술의 가치를 몰라보고 특허권을 단돈 수억 원에 넘겨버린 상태였다. 카리코는 모더나가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동안, 여전히 실험실에서 다음 달 연구비 걱정을 해야 하는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모더나의 성공을 보며 카리코는 깨달았다.
"이제 내 기술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대학은 나를 지켜주지 않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이 기술로 진짜 약을 만들고 싶어 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독일 마인츠에 있는 작은 벤처 기업 **바이오엔테크(BioNTech)**였다. 설립자인 우구르 사힌(Uğur Şahin)과 외즐렘 튀레지(Özlem Türeci) 부부는 카리코의 논문을 이미 수십 번 정독한 열렬한 팬이었다.
2013년의 도박: 58세의 나이, 24년간 몸담은 아이비리그(UPenn)의 종신 연구원 자리를 던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UPenn의 냉대: 그녀가 떠난다고 하자 대학 관계자들은 **"바이오엔테크? 거기 웹사이트도 제대로 없던데? 가서 실패하고 돌아오지 마라"**며 조롱 섞인 작별 인사를 건넸다.
도착: 독일 마인츠에 도착한 그녀의 직함은 '수석 부사장'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시 실험복을 입고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이었다.
데릭 로시는 2010년 모더나를 창업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경영진(특히 CEO 스테판 방셀)과의 갈등, 그리고 학문적 가치와 상업적 이익 사이의 충돌 속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퇴출의 시기: 모더나가 본격적으로 거대 기업으로 도약하기 전인 2014년, 로시는 회사를 떠나게 된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반면 카리코는: 같은 시기(2013년), 카리코는 독일의 바이오엔테크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망할 것이라 비웃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수석 부사장'이라는 직함보다 더 중요한 **'연구의 주도권'**을 완전히 손에 쥐었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로시는 이미 모더나와 상관없는 '과거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반면 카리코는 바이오엔테크의 핵심 수장으로서 화이자와의 협업을 이끌며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하는 실질적인 영웅으로 등장했다. 자신을 인용만 하고 지나갔던 젊은 천재는 사라졌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킨 무명의 과학자는 인류의 구원자가 된 것이다.
소유권보다 가치에 집중하라: 카리코는 특허권이 헐값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권리 싸움에 매몰되어 연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특허는 남의 손에 넘어갔어도,
이 기술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나다"**라는 배짱이 그녀를 버티게 했습니다.
세상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다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카리코는 잊힌 존재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공백기'는 사실 기술이 무르익고 다른 천재(데릭 로시)가 이를 발견하기까지 필요한 숙성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노력이 즉시 보상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담을 '그릇'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속성은 '결과' 이후에도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논문 한 편, 자격증 하나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카리코는 논문 이후의 5년을 더 치열하게 보냈습니다. 진정한 지속성은
목표를 달성한 순간이 아니라, 그 달성한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고독하게 버티는
시간에서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