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새벽

현서가 교회에 오는 이유

by 보스턴임박사


현서는 피아노를 치는 걸 좋아한다.


현서네 집은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현서의 아버지는 현서를 공주 모시듯, 때로는 친구처럼 항상 다정히 대해 주셨는데, 현서의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걸 아주 좋아하셨다. 현서 부모님은 남대문 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시며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셨다. 어려운 가운데 첫딸인 현서는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7시에 태어났다. 그날은 눈이 아주 많이 와서 온 세상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버지는 그런 현서에게 '빛날 현(炫)'과 '새벽 서(曙)'를 써서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으로 ‘현서’라고 이름 지어 주셨다.

현서는 속으론 피아노만 평생 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음대 진학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그 말은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현서에게는 바로 아래로 여동생과 막내로 남동생이 생겼다. 삼 남매를 현서 부모님은 애지중지 온전히 사랑으로 키우셨다.

그러던 중, 현서가 중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중동으로 떠나셨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삼 남매에게 풍족한 삶을 주고자 했던 아버지는 한눈팔지 않고 일만 하셨는데도 삶이 나아지지 않자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아버지와 떨어져 실의에 빠졌을 때, 같은 여중 짝꿍인 유정이가 현서에게 위로가 되었다.


유정이는 절벽머리였는데 그 절벽머리에 밝은 웃음으로 서현이를 즐겁게 하는 아이였다. 한 번은 유정이가 다니는 교회에서 아주 근사한 오빠를 만났다며 행복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서는 쉬는 시간마다 유정이에게 그 오빠에 대해 꼬치꼬치 짓궂게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이가 현서에게 말했다.


“현서야, 우리 오빠 보러 가지 않을래?”


그렇게 해서 현서는 난생처음으로 압구정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어서 현서는 교회에 가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현서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본래 나서질 못하는데 피아노를 치고부터는 교회에서 할 수 없이 피아노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중등부에 합창단이 생겼는데, 현서는 그 합창단에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그리고 합창단에서 유정이가 좋아하는 진영이 오빠를 보게 되었다. 진영이 오빠는 평소에 말은 없지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현서 아빠를 닮아서 현서는 진영이 오빠가 있는 중등부 합창단 반주일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다가 중2 때, 고등부 오빠들이 가을에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를 하는데 거기에서 연극을 한다는 말을 듣고


친구 유정이와 함께 연극을 같이 하게 되었다.


사실 유정이가 연극을 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진영이 오빠가 연극을 하기 때문이었다.

남자 3명과 여자 2명이 나오고 남녀 두 쌍은 각각 부부역할이고 나머지 한 명 남자는 연극 감독 역할이었는데, 진영이 오빠가 연극 감독 코터너스 역할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고1 오빠들이었는데 키가 고만고만해서 유정이와 현서와 파트너가 된 것이고, 키가 큰 진영이 오빠가 코터너스가 된 이유였다. 유정이나 현서 모두 진영이 오빠와 파트너가 되지 못한 게 내심 못마땅했지만 연극 선생님의 결정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극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은 C 대학 연기를 전공하는 여대생 언니였는데 그 선생님이 큰 키에 비쩍 마른 진영이 오빠를 너무 많이 혼내셔서 그 모습이 현서에겐 좀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쉬는 때마다 진영이 오빠를 위로할 겸 현서는 피아노를 그냥 무심한 듯치곤 했다.


현서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항상 진영이 오빠가 곁에 와서 노래도 같이 불러주고 들어주기도 하고 해서 현서는 피아노를 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연극이 끝나고 중3이 되자 어려운 가정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야 하나, 상업 고등학교를 가야 하나 현서는 고민이 너무나 많았다. 현서는 공부를 잘하고 좋아했지만 대학은 현서에게 꿈이었다.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장녀인 현서가 돈을 벌어 부모님과 동생들을 돌보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항상 현서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진영이 오빠가 고등부 남학생들끼리 중창단을 만든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이건 또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말이려니 했는데 그리고 몇 주 후에 진영이 오빠가 이번에는 연습실에 한번 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서는 호기심에 무심코 지하 연습실로 가게 되었다.

‘그 연습실에서, 난…정말…멋진…오빠들을 8명이나 만나서, 순간…

너무 행복했고 연습하는 내내 난 너무 좋아서 계속 웃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오빠들 목소리가 다들 예술이었다. 화음을 내는데 정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현서는 그때까지 남자들 목소리가 그렇게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너무… 좋았다.’


그렇게 오빠들 노래만 듣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피아노 반주자로서는 생각보다 해야 할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이만 해야 하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오빠들이 계속해달라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빼다가 들어 드렸더니 너무나 다들 좋아해 주셨다.


‘이런 멋진 오빠들을 8명이나 세트로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오빠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현서를 자기 여동생처럼 아껴주고 보살피며 지지해 주었다. 이 날부터 현서는 교회에 오는 매일매일이 너무나 좋았고 더욱 열심히 피아노 연습을 하게 되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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