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도

원석이와 정태가 교회에 오는 이유

by 보스턴임박사

원석이 아버지는 군인이셨다.


원석이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스위스에 산 적이 있었다.

스위스는 자유로운 나라였지만 원석이의 집안 분위기는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엄격하고 매우 검소한 분이셨고 원석이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규율 아래 있었기 때문에 가정에서 이미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석이가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건 중학교 때였는데, 스위스 학제와 한국 학제가 달라서 원석이는 할 수 없이 한 학년을 낮추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석이가 처음으로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교에서 하는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고 학교 공부를 따라 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나라에서 과외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원석이는 혼자 공부하는 법 이외에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원석이로서는 좀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원석이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어려움을 극복해 갔다.


원석이네 집이 방배동으로 이사를 온 것도 그때였다. 원석이는 학교에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이 친구들이 우르르 압구정 교회로 몰려갔고 원석이도 휩쓸려 이 교회로 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석이는 처음부터 친구들과 있었고 그 친구들과만 처음엔 몰려다녔다.

그러다가 한 번은 진영이를 알게 되어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진영이가 남자중창단을 모으고 있다는 걸 듣게 되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원석이는 중창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사실 원석이에게 중창단 이야기를 먼저 한 건 진영이였다.


진영이는 원석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아무리 봐도 이 목소리는 분명 확실한 베이스였다.

원석이에게 합창이나 중창 같은 것 해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베이스 목소리를 가진 원석이가 복사중창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원석이는 베이스를 함께 하는 인수와 절친이 되었다.

인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원석이도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정태는 공군사관학교에 가는 게 꿈이었다.


서초동에 살던 정태는 어려서부터 유도를 해서 이미 유단자였지만 그 힘을 아무에게나 쓰지 않았다.

멋진 파일럿이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정태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형이 아주 공부를 잘해서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정태 자신만의 잘하는 걸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게 파일럿이었다.

정태는 먼저 뭔가를 하자고 한다든가 앞서서 제안을 하는 성격이 아니고 먼저 의견을 들어보고 그 의견이 좋으면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거나 하는 성격이었다.

유도를 하면서 항상 소리를 질러야 하다 보니 목소리가 좀 허스키 해졌지만 그래도 음감은 있고 소리를 낼 줄 알았다.

교회에 온 건 사실 우연히 친구 따라오게 되었는데, 함께 왔던 친구는 이내 다른 교회로 가 버리고 혼자만 남게 되어서 친구가 없는 채로 몇 주간 교회를 더 다니게 되었다.


‘이제 나도 그만 이 교회에 나올까?’


이런 생각을 하고 교회를 나오려는 찰나에 저쪽에서 노래를 부르며 오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 화음이 정태 듣기에 꽤 좋아 보였고 걸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모두 하나같이 비슷비슷해 보여서 신기했다.

다들 정태는 모르는 사이라서 처음엔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용기를 내서 먼저 말을 걸었고 같이 해도 되냐고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물어봤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흔쾌히 날 받아주어서 교회를 그냥 더 다니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고 해서 그 말을 듣고 너무 웃겨서 정우와 깔깔대고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이렇게 모이게 된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정태는 자기와 같은 세컨드 테너인 정우와 마치 쌍둥이처럼 지냈다.


둘은 키도 비슷했고 음색도, 성격도, 목소리마저 비슷했고 잘 웃고 모든 일에 항상 비슷했다.


감정우와 강정태


심지어 이름마저 비슷했다.

중창단에서 ‘비가 내리네’와 ‘주의 크신 은혜’ 두곡을 연습한 지 이제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이제 ‘비가 내리네’는 더 이상 연습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주의 크신 은혜’도 다들 외웠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음색을 어떻게 갈고 다듬을 것인지만 남게 되었다.

주의 크신 은혜는 여전히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 전곡을 다 부르는 데 있어서 만큼은 아무 문제는 없다. 다만, 이게 무반주곡이다 보니 뒤로 갈수록 음이 살짝 떨어져서 테너들은 편해지고 베이스는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는 게 흠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번 의논도 하고 노력을 해 보았지만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현서가 진짜 음을 ‘땡’하고 쳐 주면 영락없이 음이 떨어진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모두는 크게 절망의 한숨을 쉬며 현서의 눈치를 살폈고 현서는 그런 오빠들을 바라보며 응원하듯 웃어 주었다.

변조가 되는 부분에서 첫 번째 음을 낼 때 그때가 항상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변조 음을 먼저 기억하고 그 음에 맞게 시작하는 연습을 계속했고 그 덕분에 혹시 음이 조금씩 떨어지더라도 변조 부분에서 다시 제 음으로 시작하는 식으로 해서 음이 떨어지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의 기도


정우가 또 새로운 곡을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평화의 기도’라는 곡이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이렇게 부르는 노래였는데 역시 숭실 OB 테이프를 들으며 우리의 색을 넣어서 노래를 연습했다. 평화의 노래는 노래의 음정이 반복이었기 때문에 주의 크신 은혜처럼 어렵지는 않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반복되는 음정에 변화를 주어서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평화의 기도는 특히 작게 불러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사실상 전체가 작은 소리를 절제하며 불러야 하다 보니 음이 쉽게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 힘을 계속 배로 받치면서 음을 버티도록 연습을 해야 했다.

평화의 기도를 부를 때 우리는 정말 평화를 느꼈다. 이 가사만큼만 하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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