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꿈

얻은 것과 잃은 것

by 보스턴임박사

중창단을 시작하고부터 인수에게는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니던 음악다방이 토요일, 일요일이 대목인데 처음엔 일요일 오전만 쉬겠다고 했다가 이제 일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일을 하지 못하고 저녁시간만 일을 하게 된 것인데, 그것이 문제의 화근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인수만이 디제이를 하고 있었는데 일요일 오후시간을 인수가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점심시간부터 5시까지 파트타임만 하는 파트타임 디제이를 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디제이는 사실 일요일 점심시간부터 저녁식사 시간 전까지가 가장 프라임 타임인데 그 시간을 새로 온 파트타임 디제이에게 맡기다 보니 점차 인수가 디제이로 설자리를 잃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수는 정인이를 볼 수 있는 압구정교회에 가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인수가 압구정교회에 나가고 난 이후부터 정인이와 소은이는 다시 음악다방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정인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에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음악다방이 있는 종로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시간을 맞추는 게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사실 강북에서만 생활을 해오던 이전에는 학교와 집, 음악다방을 다니는 이 동선이 너무나 편안하고 쉬웠다. 하지만 강남 압구정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부터는 동선이 너무 어렵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견뎌보려고 했다.


안될 것 같던 복사중창단이 실제로 구성이 되고 연습을 시작한 이후부터 인수는 왠지 연습이 기다려지고 인수의 메말랐던 삶에 생수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나 달콤하고 상쾌했다.

그리고 중창단 친구들과 동생들이 모두 인수는 좋았다.

하나같이 어떻게 어디서 이런 애들을 데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좋았다.

특히 남자 형제가 없이 나이차이 있는 누나만 있던 인수로서는 졸지에 7명의 동생과 동기들이 생겼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인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은 모두 집이 강남이었고 학교도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그들에게 연습을 위해 시간을 내거나 모이는 문제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인수가 보기에 부자동네 교회를 다니는 그 친구들을 볼 때마다 왠지 괴리감 같은 것이 없지 않았다.


‘복 받은 녀석들’


인수는 중창단 친구들과 동생들을 만나 연습을 하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인수는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쉰 적이 있어서 사실 학년이 2학년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중창단 친구들에게 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렇게 일주일에 2시간 정도 하는 연습이지만 그 연습을 하는 시간만큼은 인수가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애쓰던 고단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안식 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수는 이 시간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정인이를 피아노 반주자로 매주 보려고 했던, 그래서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인수의 모든 계획은 결국 수포로 빠지고 말았다. 어느 날 조금 늦었을 뿐인데…


아! 이건 사실 너무 뼈아프다.


난, 왜?

광웅이와 자유가 들어와 8명이 된 그날

말하지 못했을까?

왜?

다음 주로 미루었을까?

정인이를 우리 반주자로 하자는 말을…

그리고 다음 주에도 왜?

더 일찍 가지 못했을까?

5분만 늦지 않았더라도.

혹시 정인이를 반주자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내 잘못으로 놓친 건 아니었을까?

그날, 꼭 점심을 먹어야 했을까?


사실 6시 타임부터 밤 11시까지 음악다방 디제이를 하려면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미리 밥을 먹어 놓아야 하는데, 평소에는 5시까지 오후 타임을 마치고 6시에 다시 시작하는 그 시간이 인수가 충분히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데, 이제 연습을 마치고 출발을 하면 5시는커녕 6시를 맞추기도 시간이 빡빡했다.

시간이 자유로웠던 다른 친구들과 동생들은 연습에 몰입했고 연습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 시간을 늘려서라도 연습을 꼭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사실 인수도 그 생각은 비슷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수는 저녁을 먹을 시간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날 점심을 좀 거하게 먹어서 저녁을 혹시 놓치더라도 좀 버틸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날따라 식당에 손님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음식이 좀 늦게 나왔고 그 때문에 연습시작 시간에 약간 늦게 간 것이었다.

그런데, 연습실에 들어섰을 땐

이미 어떤 여학생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고

처음엔 연습을 하면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주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려고 했는데,


이 아가씨가 생각보다 너무 강적이었다.


너무 상냥하고 착했다.

인수는 사실 시작도 늦었고 그날 전체적으로 너무 어려운 노래를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버벅거렸는데, 아! 정말 너무 노래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 번에 안되고 두 번 해도 안되고 세 번, 네 번, 정말 그렇게 헤매는 인수를 위해 조용히 원석이가 함께 있어줬고 거기다가.

그 아가씨가 아무런 힘든 티를 내지 않고

항상 상냥하게 웃으며,

인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인수는 무엇에 홀린 듯이.

그녀,

현서를,

반주자로 승인해 주었다.

심지어,

먼저 나서서.


이제 정인이와의 인연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교회에 가는 게 무슨 미련이 있나’

이런 생각이 오는 내내 들었다. 너무나 참담했다.

그날 현서와 광웅이, 자유를 환영하는 파티를 열었는데,

초코파이와 바나나우유를 사러 친구들이 다녀왔고

그 시간도 예상보다 꽤 걸렸고,

그렇다고 이 파티를 하지 않고 먼저 나가기도 뭐해서

끝까지 기다렸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그날, 인수는 6시가 넘어서 음악다방에 도착했고,


결국 디제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저녁식사도 못한 채,

이제 돈을 벌 곳, 직장이 사라졌다.

그게 인수에게 가장 뼈아팠다.

그날 이후,

인수는 깡소주로 배고픔을 버텼다.

깡소주는 세 가지 장점을 준다.

우선 취하기 때문에 문제를 잊는다.

둘째 공복을 채운다.

셋째 잠이 든다.

그래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침은 어차피 남들도 많이들 거르기도 하니까

‘나도 거르면 되지.’

그런데,

11시 30분.

이때부터 2시까지가

고비.

이 시간, 할 수 없이.

깡소주 한 병을 들이켠다.

그러고 나서,

7시, 잘 버티면 8시 즈음

두 번째 깡소주를 들이켜고

약간의 포만감과 졸음에 취해서

배를 웅크리고 잠이 들면

하루는 그렇게 지나간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새벽 어느 쯤에서였던 것 같다.

후드득 소리

그 소리에

선잠에서 깨 버리고 말았다.

밖에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비가 내리네.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눈물의 빗줄기

자녀를 위하여

오래 흐느껴온

이 세상 이 세상

우리 위하여 죽으신 아기 예수께

우리는 무얼 배웠나

왜 아직 서로 헐뜯고

평화 모를까

왜 우리 눈은 이리 어둘까


인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중창단 친구들과 함께

밝고 환한 모습으로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화음을 맞추며

그리고 거기에

인수도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인수는 학교에 자퇴를 신청했다.


더 이상, 인수에게 학교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2까지 다녔네.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학교에 가면 매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당했다.

육성회비.

밀린 육성회비.

내라고.

안 내면.

학교 못 다닌다고.

그래도 음악다방 디제이를 하는 동안에는 꿈은 있었다.

적어도

육성회비는 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지금,

공부는 인수에게 사치였다.

처음 3개월은 어떻게든 버텼다.

악으로

깡소주로

첫 번째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고

두 번째 육성회비.

내야 한다고.

그때부터 담임은 더 이상 선생이 아니었다.

채권자.

인수는 채권자에게 시달리듯 시달렸다.

성적도 당연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생이라는 담임에게 시달릴 때

인수의 성적은 끝을 모르고 내리막길을 걸었고

인수의 자존감도 한없이 내려갔다.

이제 학교에 인수가 있을 곳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비가 있었다.


야구부 아이였다.

에이스 투수였는데

혹사를 당했다고 했다.

어깨를 다쳤다고.

그 녀석이 인수네 반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야구부 녀석이

돈 없는 인수의 약점을 알게 됐다.

“야, 인수!

너, 육성회비 두 번 체불했다며?

내가 내줄까?

나한테 무릎 꿇어

내 가랑이 아래 기어가면

내가 내줄게.

자식, 그까짓 육성회비 그게 얼마라고.

그걸 못 내냐?”

그날 인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인수는 자기를 잃어버렸고


꿈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결국…

학교를 떠났다.

학교 안에 인수가 있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학교를 나온 후 인수는 공사판을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저씨들의 담배 심부름을 하다가

인수는 십장의 눈에 들었고

덕분에 공사판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공사판 일은 새벽에 시작해서

저녁이 되기 전에 끝났기 때문에

인수로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저씨들과 일과 후 마시는 소주는

달콤했다.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된 인수는

그래도 고등부는 빠지지 않았다.

어쩌면 인수에게

유일한 고등학교가

압구정 교회 고등부였고

유일한 친구들이

복사중창단 친구들과 동생들이었다.

그리고 어여쁜 여동생, 현서도 있었다.


공사장 일은 인수에게 희망을 주었다.


다만 문제는

비.

비가 내리지만 않으면.

비가 내리네.

비가 오는 날이면 공사일은 할 수 없었고

인수는 그날이 공치는 날이었다.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눈물의 빚줄기

가사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런 날이면 인수는 유흥업소 삐끼를 했다.

아는 형, 그 웨이터 형이

인수에게는 유일한 형이었다.

돈이 되는.

목요일 연재
이전 10화담임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