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by 보스턴임박사

인수가 복사중창단에서 연습을 함께 시작한 지 3개월이 조금 지났을 때까지


진영이와 정우, 신기 그리고 모두들은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시작한 일이었고 그래서 즐거웠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화음을 맞추는 그 사실만으로 우리 모두는 충분했다.

교회에서 배운 말 중에 ‘충만’이라는 말이 있었다.

어떤 큰 항아리가 있다. 그 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이 채워서 넘쳐흐른다.

그걸 ‘충만’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서로의 눈동자를 맞추고

양쪽 귀를 좌우로 열고

가슴을 서로에게 마주하고

손가락으로 크기를 맞추고

발끝으로 박자를 맞출 때

그때 하모니가 된다.

충만한 하모니가.


이렇게 우리들의 하모니가 거의 손색이 없이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창을 하고 화음을 하며 즐거이 부르던 어느 날, 우리는 어떤 제안을 받았다.


"교회 대예배 때, 헌금송 한번 해 보지 않을래?"


우리들이 노래하는 걸 잘 아시는 자유의 아버지가 고등부 교사이셨는데, 고등부 교사회의 때 고등부 부장을 맡으신 장로님께 얘기를 하신 모양이었다.


‘헌금송?’


그때까지 노래를 부를 생각만 했었지 어디에 가서 발표할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이 좋았으니까. 그런데, 헌금송은 좀 달랐다.

이건 특송, 특별한 찬송 순서였다. 헌금 바구니가 돌아가는 동안에 원래 성가대 합창단원 중 한 명 혹은 그룹으로 헌금송이란 걸 한다.

보통은 성악 전공을 하는 솔로이스트들의 몫이다.

그런데, 성악 전공자도 아닌 일개 고등학생 1, 2학년 남자 8명 애들에게 헌금송을 하라는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거절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그냥 물러서지 않으셨다. 한번 불러봐. 그럼.

그래서 장로님과 자유 아버지 선생님 앞에서 그냥 하던 대로 그때 연습하던 “주의 크신 은혜”를 불렀다.

다 듣고 나서 장로님이 그러셨다.

“이야, 됐어. 너무 잘하네. 자. 이거 하자. 몇 주면 되겠니? 2주? 3주? 그래 3주 후에 헌금송이야.”

그러고 두 분이 그냥 가셨다. 허걱.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이렇게 해서 우리는 졸지에 헌금송을 하게 되었다. 그냥 연습을 하는 동안에는 괜찮았는데 막상 사람들 앞에 나가서 해야 한다고 하니 마음이 달랐다. 그냥 부를 수 있는 게 아닐 것 같았다.

진영이가 모두에게 얘기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한번 해보자. 그런데 연습을 일요일에만 해서는 좀 부족할 것 같아.


주중에 수요일에 한 번씩 더 모이는 건 어떨까?”


다들 좋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수만은 아직 결정하기 힘들었다. 공사판 일이 끝나고 씻고 교회까지 오려면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인수는 자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동생들이 연습을 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말을 아꼈다. 그냥 그들의 스케줄에 맞출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 대예배에서 헌금송을 하기로 하고 그전에 4번의 연습을 하게 되었다.


수요일 연습을 하기로 하면서 광웅이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일요일만 중창단을 하기로 한 거지 수요일은 계획에도 없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주중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는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집에서 돌보는 게 광웅이의 의무였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에 교회를 다녀와야 한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실 마지막에 자기를 중창단원으로 선택할지 말지에 대해 진영이 형이 꽤 고민한 걸 광웅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괜히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하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어렵게 시작한 일을 이런 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자유와 가장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형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나름대로 애썼다. 그런데도 같은 파트를 하는 진영이 형은 내가 왠지 미덥지 않은 눈치였다. 점점 진영이 형이 중창단의 중심을 잡게 되면서 자기 파트 말고 다른 파트도 다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광웅이가 바리톤을 좀 책임져서 진영이 형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혼자서 바리톤을 하기엔 내 소리가 너무 작았다. 가끔 높은음을 낼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바리톤은 대부분이 낮은음이고 어떨 때에는 베이스보다 더 낮은음을 내기도 하곤 해서 목소리가 가녀린 광웅이로서는 영 소리가 작아지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반면에 진영이는 모든 파트를 다 신경을 쓰는 입장이어서 자기 파트뿐만 아니라 다른 파트도 깡그리 외우고 있었다. 혹시 만일의 사태에 누가 늦거나 못 오게 된다면 언제든 진영이가 그 빈자리를 메꿀 심산이었다. 그러다 보니 광웅이의 서포트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수요일에 연습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자유가 광웅이에게 물어왔다.


“광웅아, 너 동생들 봐야 한다며, 수요일에 괜찮겠어?”


광웅이는 대답 대신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유에게 괜찮겠지 뭐. 이렇게 대답하며 지나갔다.


정우도 수요일 연습이 사실 고민이었다.


정우는 주중에 아버지 오락실을 도와야 했다. 매일 정우와 동생을 위해 하루 종일 애쓰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 오락실을 닫는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오락실 기계를 닦고 정리하는 게 정우의 매일 일과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수술 후유증인지 전신마취를 받은 이후 기억력이 크게 떨어져서 암기과목은 정우에게 꽤 힘들었다. 그래서 정우는 대신 국어나 영어, 수학 같은 기본 과목에서 성적을 올리고 암기과목은 시간을 더 붙여서 성적을 간신히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할 때면 꼭 몸에서 신호가 오곤 해서 나름대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일요일에도,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정우는 아버지의 오락실에 가서 일을 하는 동안 교회 중창단 연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그 대신 동생 정식이에게만 슬쩍 얘기를 했다. 정식이는 고1이고 광웅이와 자유와도 친구였다.

정우가 정식이에게 수요일 연습에 대한 고민을 처음으로 얘기한 것은 화요일에 오락실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정식이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정식이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정식이는 그냥 알았다고 할 뿐 별다른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진영이는 이런 결정을 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사실 진영이에게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과 강박이 늘 있었다. 그동안 이미 ‘주의 크신 은혜’가 연습이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수요일 연습을 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 건 진영이의 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이 나은 낮은 자존감의 결과였다.


현서는 이미 중2 때 연극연습을 함께 하면서 진영이의 이런 면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시에 연극 지도 선생님은 서울의 유명 연극영화과를 다니는 여대생이셨는데 초보였던 중고등학생들을 마치 배우를 만드시려는 듯이 닦달하셨다. 현서는 역할도 서포트 역할이고 대사가 많지 않아서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었는데, 진영이의 역할이 사실 연극지도하는 감독 역할이었고 그래서 선생님은 진영이의 연기실력을 못마땅해하고 호통을 치시곤 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짝다리를 잡지 말라는 둥, 눈을 그렇게 뜨지 말라는 둥, 대사 이외의 진영이의 평소 습관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셨고 그래서 진영이는 항상 망부석처럼 딱 굳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진영이는 그걸 피나는 연습으로 극복했고 누구보다 일찍 왔다가 가장 늦게 떠나면서 시간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다.

연극은 덕분에 성공적이었고 연극을 연출하신 선생님은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


부모님과 매주 수요일 예배를 참석하는 신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는 각자 이런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었는데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만큼 자신들의 중창단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정태도, 자유도, 원석이도 역시 수요일 연습은 부담스러워마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수요일이 되었을 때, 모두들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들은 그 순간만큼은 한마음이었다.


비록 속으로는 각자의 상황과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먼저 상대방을 배려했고 혹시 누군가 힘든지 않은지 서로의 안색과 건강을 살폈다. 우리 대부분은 사실 너무 마른 상태였는데 다소 영양실조 중창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신기가 빵과 바나나 우유를 잔뜩 어디에서 가져와서 풀어놓아서 그래도 다들 배는 굶지 않고 연습에 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디에서 이걸 가져왔느냐는 모두의 질문에 신기는 웃기만 할 뿐 특별히 대답하지 않았고 그냥 얻었다고만 말했다.


신기가 인수를 교회 앞에서 만났을 때 신기는 인수에게서 술냄새를 맡았다.


신기는 인수가 술을 마신다는 걸 깨닫고 인수에게 잠깐 가까운 가게에 함께 가서 뭘 사 오지 않겠느냐고 얘기하고는 함께 빵과 우유를 사고 그와 곁들여 인수에게 숙취해소제와 비타민을 주어 먹게 했다.

그리고 교회로 오면서 빵과 우유를 자신이 샀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교회로 인수를 먼저 들여보낸 후 잠시 뒤에 신기가 들어온 것이었다.

신기는 빵과 우유를 바닥에 내려놓고 먼저 인수에게 다가갔는데 다행히 인수에게서 더 이상 술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인수는 약속대로 아무에게도 빵과 우유가 어디에서 났는지 말하지 않았다.

연습을 마치고 인수가 빨리 나가려는데 신기가 인수를 불렀다.

인수는 다음날 새벽 일찍 공사장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지만 신기가 부르자 그를 따라 다시 잠깐 교회로 돌아왔다. 신기는 인수와 빈 방에 잠깐 들어가서 방의 불을 크고 문을 닫은 채 인수에게 혹시 어려운 일이 있는지 혹시 자기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인수가 대답하려 하지 않는 걸 눈치챈 신기는 주머니에서 자기가 빵과 우유를 사고 남은 돈 얼마를 꺼내서 인수에게 주며 이거 빌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자기에게 꼭 갚으라고 이자는 대신 없고 기한도 없지만 확실히 빌려주는 거니까 꼭 갚아야 하는 거라고 신신당부했다. 빌려주는 거라는 말에 인수도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묵묵히 받아 들었고 그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인수는 그 돈의 액수와 날짜를 따로 기록해 두고 잊어버리지 않았다.


연습은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헌금송을 하기로 한 세 번째 일요일 바로 전 수요일 저녁 연습실에 고등부 장로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노래를 들어 보시고 흡족해하시면서 그날 빵과 과자와 우유와 요구르트를 잔뜩 주고 가셨다.

헌금송을 하는 일요일 우리 모두는 성가대 연습을 하기 위해 9시까지 교회에 모였다. 헌금송은 원칙이 성가대에서 가운을 입고 있다가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날만큼은 각자 테너와 베이스로 4명씩 분배되어 있다가 헌금송 바로 전에 전체기도 시간이 있는데 그 기도 중간에 나와서 먼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가대 연습이 시작되기 전 1시간 동안 우리는 마지막 연습을 했고 어떻게 나오느냐 어떻게 인사하고 들어가느냐 같은 동선까지 함께 의논을 했다. 다들 그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기 때문에 노래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 노래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지면 좋을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했다.

신기가 입을 열었다.


“노래하는 건 우리지만 이건 예배 중간에 부르는 거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기도로 준비하면 좋겠어. 기도를 간절히 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실 거야. 성가대에서 계속 기도하다가 마지막 전체기도 때 피아노 앞으로 모이자.”


그리고 신기가 우리를 대표해서 기도를 하고 진영이가 또 이어서 기도를 했으며 마지막으로 정우가 또 기도를 했다.

진영이는 성가대 연습을 하는 동안과 예배시간 내내 계속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진영이는 그날까지도 사실 장로님께 이 헌금송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드렸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제 결국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전까지 진영이는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한 적은 없었다. 한참 기도를 하다가 다른 친구들과 동생들을 보니 다들 하나같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진영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만약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우리의 찬양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리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그날의 헌금송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헌금 바구니가 생각보다 빨리 돌았고 우리 노래가 꽤 길게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들 일어서서 우리의 노래, ‘주의 크신 은혜’를 들었다는 것,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크게 아멘 하며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는 것.

이것만이 기억에 남았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서 우리 모두는 꽤 상기되어 있었다. 모두들 노래 중간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얘기하는데 사실 이런 거 잘 모르는 녀석들이 아닌가.

저쪽에서 장로님과 자유의 아버지가 오셨다.


“이야, 오늘 너무 잘했다. 찬양이 너무 좋아서 다들 좋았다고 또 해달라고 하더라. 수고했어!”


장로님이 흥분해서 얘기하시고 지나가셨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더 빨라 보이셨다.

그리고 거의 계단을 내려갔을 즈음, 반주자 현서가 2층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날 노래는 무반주곡이어서 현서는 성가대에 오지 않았고 대신 2층에서 우리 노래를 듣게 된 것이었다.


“오빠들, 오늘 너무 멋졌어요. 2층에서 듣는데 전 눈물이 나서 제대로 못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좋았어요. 오빠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날 우리는 모두들 한마음이 되었다는 걸 스스로 느꼈고 증명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기도의 덕분도 있었겠으리라. 그러나, 각자 처한 상황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빼려고 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자기를 바쳤기 때문에 그 희생이 모여서 하나가 된 것이라는 걸.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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