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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어 Nov 18. 2019

반딧불이의 마을

음밤바베이, 탄자니아

 새벽이 여무는 시간, 주홍빛 아크투루스 별이 내려다보는 하늘 아래에서 나는 알몸이었다. 올리버가 강에서 길어다 준 소중한 물 한 바가지를 땅 위에 내려놓고 몸을 씻었다. 남쪽 하늘 저 멀리에서는 번쩍 번쩍, 쉼 없이 번개가 들이친다. 자유라는 게 이런 것일까? 육체는 가볍고, 모든 짐을 내려놓아 중력을 거스르려는 반란. 밀도 높은 별빛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부유해 버렸을 것이다.



 지친 마음을 달래려 찾아간 곳은 냐사 호수를 끼고 둘러진 마을, 음밤바 베이였다. 4인용 지프차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을 쑤셔 넣은 채 비포장길을 7시간 달려 체력마저 고갈된 나는 홀린 듯 호숫가로 향했다. 긴 시간 구겨진 몸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방망이로 옷을 두들기는 청년들과 고기잡이를 다녀오신 아저씨들, 쭈그리고 앉아 이야기하시는 아주머니들, 발가벗은 아이들은 호수와 대화를 나누듯이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해가 뉘엿, 어두워져 갈 무렵 앞니가 빠진 그러나 고운 여인이 다가왔다.

 

 - 안녕, 난 올리버야. 잘 데는 있어? 우리 집에서 지내지 않을래? 숙소를 찾으려면 큰 마을로 나가야 하고, 하루 숙박료만 2만원이 들 텐데 너무 비싸잖아. 누추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집으로 같이 가자.


 십 여분의 언덕을 오른 곳에는 흙집 한 채와 오렌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별이 뜨기 전, 노을이 타 들어갔고 이윽고 반딧불이, 지상의 별들이 먼저 찾아왔다. 북쪽 그리고 남쪽 하늘과 지평선이 닿은 곳에서는 번개 빛이 지치지 않는다.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세계의 황홀한 풍경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이 지역에서 마법사들이 많이 난다고 하더니 사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신성의 기운과 원시의 기운은 어딘가로 스며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상 모든 존재와 기운은 돌고 돈다.


 반딧불이가 공간을 가득 감싸면 아이들의 세상이다. 어느새 열 댓명의 아이들이 오렌지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빌링고 빌링고 음파카 치니' 노래에 맞추어 춤추고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렸다. 복숭아만한 두 엉덩이는 요염하게 튕겨진다. 쑥스러운 몸짓에서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넬리는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다. 아이는 폴짝 뛰어다니는 아기 개구리를 나무 막대기로 괴롭히다 사정없이 내리쳐 죽여 버렸고,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잡아다 돌로 찧어 버렸다. 반딧불이는 별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별빛가루를 담은 넬리의 눈빛을 나는 읽을 수 없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며 종알거리던 넬리는 어느새 내 무르팍을 베고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낯설디 낯선 이방인의 품에서 세상 모르게 잠이 든 아이가 왜 그리도 마음을 만지작거렸는지 알 수 없다. 아이가 깨어날까 싶어, 아니 그보단 아이의 고요한 숨소리를 더 듣고 싶어 오래도록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음밤바베이에는 전기가 들지 않는다. 날이 지면 고요한 램프빛과 반딧불이가 눈 앞을 밝힌다.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온 밤에, 가져온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비가 내리니 지푸라기로 덮은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옷가지 위에는 우산을 펴두고, 구멍이 숭숭난 모기장 위에는 비닐을 넓게 씌웠다. 

 오전에 올리버와 호숫가로 내려가 그간 더러워진 옷을 빨며, 옷이 다 마르면 떠나겠노라 이야기를 해 두었는데 비가 오는 걸 보니 아직 떠날 날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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