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스물두 살의 가을에 나는 속초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배 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하수 아래에서 잔잔한 파도를 헤치며 먼 수평선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노라면 동쪽에서는 월출을 알리는 희미한 빛이 번졌다.
매일매일 잘 짜여진 수업만 듣기에는 호기심은 넘쳤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지나치게 향기로웠다. 아침이면 학교 가는 길에 발길을 돌려 홀로 소풍을 떠나기 일쑤였고, 내성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교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닐 만큼 세상이 궁금했다. 그러던 도중 한 NGO에서 열흘간 러시아에서 캠페인 활동을 할 단원을 모집하고 있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교수님들께 사유서를 제출하고서는 설레는 마음으로 속초발 배에 올랐다.
여행자에게 첫 여행은 낭만이라는 충격 그 자체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시간에는 나를 낭만 속에서 허우적거리게끔 어떤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배에서 같은 방을 쓰는 러시아 할머니는 나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 주느라 신이 나셨고, 갑판으로 올라가면 멀리 돌고래가 뛰놀고 배 바로 옆으로는 거대한 고래가 나란히 항해했다. 만 하루가 걸려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낮이면 길거리에서 누가 보든 말든 마음껏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인을 보며 감탄하고, 밤이면 수많은 별빛을 보며 함께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갇혀 버렸다. 여태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사고와 시각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본 적 없던 세상을 보고, 끊임없이 나 자신과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 충격을 계속 맛보고 싶었다.
해질녘, 강물에 일렁이는 것은 가로등불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