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탄자니아
안녕 얘야, 너 신발이 없니?
아니, 집에 있어.
근데 왜 안 신고 왔어?
그냥, 귀찮아서. 난 맨발이 좋아.
수업이 비는 시간, 학교로부터 해변까지 난 길을 따라 걷던 중 꼬마 아이를 만났다. 이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음이 찡해져 던진 질문에 날아온 답은 그간 내가 품어온 공식 같은 생각을 비웃었다. '맨발 = 빈곤'일 것이라는 공식 같은 생각.
탄자니아의 아이들, 더욱이 그 아이들이 시골에서 사는 경우라면 신발 없이 다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고르지 않은 길에 모난 돌도 많은데 아프지 않나 물었더니 아프지 않단다. 자연과 멀어진 삶은 집 밖을 나서면 혹은 집 안에서조차 신발을 신어 발의 호흡을 묶어 두는데, 이 아이는 맨발을 '선택'했다. 신발을 신어도 발이 콕콕 쑤시는 길을 뛰어다니기조차 한다. 내 기억 어디메쯤 이런 자유를 누려 봤을까.
떠올려 보니 예전에 소록도에서도 맨발의 청년을 만난 일이 있다. 소록도는 일반인에게는 일부의 공간밖에 공개가 되지 않는 곳이지만, 봉사자는 어디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 자본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눈부신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작은 섬은 걷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어느 날은 길동무가 생겨 함께 길을 걷다가 흙길이 나오자 그는 신발을 벗었다. 가끔 신발을 벗고 길을 걷는다는 그를 따라 맨발로 흙을 밟으며 뭔지 모를 자유로운 기분에 휩싸이다가 이내 언젠가 산길을 맨발로 걸으며 느낀 푹신함이 떠올랐었다.
나도 청년도, 이 아이도 같은 마음으로 맨발을 선택하고 흙길을 즐겼던 것일 텐데 그 순수한 마음을 못나게도 탄자니아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던 것이다. 아이와 함께 바닷가까지 걸으며 자연스러운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자연을 딛고 자연과 호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