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칸마슈, 일본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는 숲이 이어지고 늦여름 정취가 가득했던 홋카이도는 소년 호시노 미치오가 동경했던 땅이고, 그를 동경해 온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이다.
아칸호수 부둣가 앞 롯지 한 켠에 작게 들어선 식당에서 야채 튀김과 빙어 튀김, 그리고 레이크 랍스터 튀김이 소담하게 올려진 텐동 한 그릇을 먹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서 비를 피하는 참새들을 구경하다가, 또 길을 나서 본다. 홋카이도는 발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움이 가득인데, 관광객도, 주민도 드물다. 오롯이 자연이다.
쿠샤로 호수에는 둘레를 따라 자연 노천 온천이 여럿 있다. 몸이나 담궈 볼까 해서 도착한 첫번째 장소에서 나체의 할아버지들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다음 온천, 그 다음 온천에서도 역시 나체의 아저씨들을 발견하고서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돌아오는 길이 너무 아쉬워 어둑해진 밤에 다시 호수로 나섰다.
홋카이도에서는 에조 사슴과 북극 여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특히 밤에 자동차 불빛을 보고 사슴이 뛰어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해서 최대한 저속으로 달려 도착한 호수 옆 자연 온천은 사람도, 불빛도, 소리도 없이 그저 은하수 아래에서 별빛만 비춰내고 있었다. 나체의 일본 사람들처럼 자연답지 못했던 친구와 나는 수영복을 챙겨 입고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사실은 미끄덩한 조류들이 가득 느껴졌는데, 아마 낮이었다면 시각적인 자극에 들어가는 걸 꺼려했겠지만 어차피 컴컴한 밤이라 개의치 않고 한참을 시간을 보냈다. 또 사실은, 온천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곳에서 쉬고 있던 북극 여우 한 마리가 경계 가득한 몸짓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우리도 그도 모두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이내 각자 할 일을 했다. 내내 서로를 조금은 의식하면서.
여우는 갑자기 나타난 우리 때문에 따뜻한 온천 곁에서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았겠지만,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여우와 잠깐이나마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에서 고요하게 앉아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