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직장 생존기 노하우

by 보통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되는 해를 맞이했다. 신입 때의 풋풋함과 패기가 그립기도 하고 중간 관리자로써의 책임감은 무한히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며 나의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이 휘몰아치는 타이밍인 것 같다. 오래전 고등학생 때 나를 학생으로서 맞이해주셨던 학원 선생님 밑에서 몇 개월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나를 보며 하셨던 말씀이 "너는 일하는 게 천직이다. 직장 생활 열심히 해라."였었는데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선생님은 나를 그때 완벽하게 파악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 - 나는 공부 체질은 아니다. 직장인 체질이다.


사실 커리어를 두고 얘기를 하자면 나는 그다지 좋은 예시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커리어'적인 측면에선 생각보다 일관성 없는 선택과 충동적인 결정으로 만들어진 나의 이력서이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성공적인 커리어를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라고 한다면 나처럼 하지 말라는 답 밖에 내어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업무 그리고 직장을 개인적으로 만족하며 성취감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달라고 한다면 완벽하게 나처럼 하면 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해줄 수 있다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의 몫이니 그건 나에게 의존하지 말 것). 일찌감치 중학교 3학년 때 결정해버린 나의 진로는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이어져오고 있고, 그 선택에 대한 나름대로의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일해온 자신을 되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과 성취를 이뤄온 것 같다.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지 않을까? 결국 직장생활도 자기만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자기 자랑 좀 하자) 호기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에는 내 업무부터 시작해서 우리 팀이 하는 다양한 일, 다른 팀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 또는 딜 (deal), 그리고 크게 나아가 우리 회사가 국내 또는 국제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 많은 정보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소소하게 디테일을 파악하다 보면 나의 업무에 완벽성을 띌 수 있게 되었고 일부 또는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하면 내가 예측하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는 데에 오는 희열이 엄청났다. 호기심을 채운다는 건 습득하는 정보나 업무를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무실 청소부터 주말이나 공휴일 근무, 매일 오후에 하는 서류 심부름부터 크고 작은 회의들, 분기별로 진행한다는 다양한 교육 자료들을 들여보는 것 등, 생각보다 잡다하게 많은 일들을 했다.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심부름이 내 직장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든 내가 얻게 되는 정보든 간에 말이다. 단편적으로 하루하루 일을 하는 게 아니고, 모든 하루들을 한 달로, 한 달들을 한 해로 묶어가며 그 많고 다양한 정보량을 소화해보면 그것은 꽤나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자질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왜 얘기하냐고?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그 직장 행위들로 인해 꽤나 좋은 직장 그리고 지금의 보직까지 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가지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내 상사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회사 대표는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다 보면 생각보다 내 회사 생활의 방향성이 잡혀나간다.


나름 사회 새내기 같은 느낌을 벗어낼 무렵,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은 것 같다. 그것이 업무 하는 방식이든, 직장 내 사람들과 근무하는 방식이든 생각보다 트러블이 덜한 느낌이 있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볼 때에 무수한 이유들이 생각나지만 꽤나 임팩트가 강한 것 하나를 꼽자면 자기 객관성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합리화의 신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직장 내에서 나의 위치 파악을 깔끔하게 한다.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에 대한 파악이 빠른 편이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빠르게 수용하고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오늘이 안되면 내일. 내일이 안되면 내년. 내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들은 빨리 파악하게 되면 적응이 쉬워지고 안 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수용한다: 그것이 곧 그 직장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도적 (또는 참여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은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다 보면 바로 내일 되는 것도 있지만 내년에 되는 것들도 있다. 지금 이 회사에 생활한 지 8년이 되었는데 내가 첫 입사 때부터 제발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들이 이제야 되는 방향성이나 프로젝트도 꽤나 많다 (인내의 끝은 달다). 바꾸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받으며 에너지 소비를 하지는 말고, 내가 조금이라도 피드백을 주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무한한 관심을 쏟자. 결국 나도 사람인지라 쏟을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고, 변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소비하는 에너지는 곧 낭비일 뿐이다.


생각보다 꽤나 깔끔했던 '사원'의 생활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나는 중간 관리자라는 양복을 입게 되었다 (20대 후반에 밑에 '꼬맹이'들이 생긴 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직장 피라미드에서 한 단계 올라가 보면 그 권력의 맛이 꽤나 매력 있다 -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달라지고 줄 수 있는 영향력이 달라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니 사람들이 왜 승진하고 싶어 하는지 알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게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나는 나한테 보고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책임. 나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더더욱 다양해지는 것인데 우스갯소리로 "욕받이 하기 위해 그만큼의 월급과 직위가 오른다"라고 나의 직장 동료들과 얘기하곤 한다 (생각해봐라 - 내 밑에 직원이 다른 팀 직원과 트러블이 있다거나, 프로젝트가 막혀있다면 그 걸 해결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요즘은 중간 관리자로써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직 여기서의 노하우는 습득하지 못했지만 지금 가장 중요하게 와닿는 건 사람이라는 요소이다. 인간관계를 중요시해라: 아부를 하거나 반대로 마음에 안 들면 싸우라는 건 아니지만,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환경이 직장이다. 생각보다 내가 미워하던 그 사람이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자일 때가 많다 (그럴 때 그 능력자를 써먹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손해 볼 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중점으로 두고 일하는 데에 장단점은 분명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은 전략인 것 같다.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어느 환경이든 여러모로 고되고 테크닉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이 역할이 꽤나 벅차지만 곧 적응하지 싶다; 나는 생각보다 단순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하).


상반기/하반기 인사 고과를 상사랑 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질문이 "너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니?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니?"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나는 당황한다. 지금까지 많은 나의 커리어 결정을 기회가 왔을 때 즉석으로 잡고, 앞 날 생각 안 하며 다분히 흥미 위주로 선택해왔기 때문에 많이 진지하게 몇 년 앞을 내다보며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꽤나 곤란한 질문이다. 아직은 오늘이 중요한 지금. 조만간 관심 갖는 게 생겨 다음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고대해본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가지고 돈 버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미래는 결국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고 그걸 적극 활용하여 돈을 벌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직은 새내기 중간관리자인 시점에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조금은 헷갈리기 시작해서 미래는 무슨, 오늘내일 고군분투 중이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고 스릴 있는 것 같다. 지금부터 10년이 지난 뒤, 이 글을 보고 이 시기를 되돌아본다면 나는 또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조금은 기대해본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어느 일을 하든 돈 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하며 우리 직장인들은 모두 고군분투한다.

다만 스스로 그 일을 쉽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마음가짐.


오늘도 普通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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