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각을 바꿔버린 한 순간

by 보통인

오랜만에 보는 지인이 나에게 넷플릭스 리스트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이것저것 추천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넷플릭스 콘텐츠로 주로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는 것이다 (나중에 별도의 소재로 다루어야겠다). 어렸을 때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어서, 그 전에는 무엇을 봤나 생각해보니... 역시. 시리즈물이 이렇게 수요가 늘어나기 전에는 영화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더욱이 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왔었고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본다면 그때에는 영화를 찾아 다운로드하여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대중적이지는 않았던 영화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중 스포츠 영화를 대체적으로 즐겨보기도 해서 사람들이 간혹 내가 봤던 영화를 언급하면 괜스레 반갑기도 하다 (네가 프리덤 라이터를 안다고?!). 지금은 사람들이 나에게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 취미로 얘기하기엔 워낙 멀어져 버린 매체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 만약 인생 영화를 물어본다면 난 지금부터 언급하는 4가지 중 하나를 기분에 따라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나우시카.jpg 바람 계곡 나우시카


'라떼' 세대 사람이라면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며 다양한 세계관을 표현해내었기 때문에 나올 때마다 큰 히트를 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화질이 애매한 (?) 2000년대 때의 지브리 작품들을 좋아하는 데 특히 가장 기억 속에 찬란했던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다. 가장 처음 영화관에 가서 본 작품이기도 했고, 나에게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남긴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모노노케 히메와 굉장히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 이 두 작품은 반복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싶다면 너무 추천하고 싶은 영화 - 종종 나오는 환경 관련 영화나 다큐처럼 강렬하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작품은 아니지만 자연의 광대함, 자연 치유적인 성향,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다루며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오무들이 모여 여주인공을 황금빛 물결에 둘러싸는 그 장면 속 따스함은 'Days Long Gone'이라는 곡과 함께 괜스레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이다.


지브리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겠지만) 대체로 음악이 꽤 매력 있어서 찾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음악을 꽤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듣는 편인데, 막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한창 디즈니와 뮤지컬 영화에 빠져 있었던 것도 한몫한 게 아닌가 싶다 (디즈니가 다루는 소재들이 어린아이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디즈니 작품들은 꼭 접해보라고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특히나, 뮤지컬 영화 같은 경우에는 뭔가 황금기 같은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이 긴 서론을 두는 이유는 내가 꼽는 인생영화 중 하나가 Dr. Dolittle 로 1967년에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제발 그 코미디 버전 말고 이 작품을 꼭 보길!). 어렸을 적 비디오로 가지고 있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보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비디오도 망가지기도 하고 이 작품 풀영상을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운 소장용 버전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작품 중 하나다 (만약 구한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 아주 짧게 얘기하자면 동물들과 소통할 줄 아는 닥터 두리틀이 거대 분홍 달팽이를 찾아 떠나는 과정을 다루는데 재미난 동물들도 많이 나오고 개인적으로는 Rex Harrison (닥터 역할) 특유의 노래 스타일을 좋아해 즐겨봤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은 'My Friend the Doctor'로 이 영화를 가장 대표적으로 잘 표현하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꼭 봐야 하는 영화이고 들어야 하는 곡이다 - 보다 보면 정말 달이 애플파이로 만들어졌다는 설을 믿게 될 것이다.


xjhxmhurm5jbmojle9tj.jpg Moonrise Kingdom


영화의 소재나 음악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 두 개를 언급했다면 다음 두 작품은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경험을 준 것들을 다룬다. 앤더슨 감독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래도 나름 잘 빠져나온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최근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귀차니즘 승리!). 처음 접했던 작품으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인데 신기하게도 내용이나 줄거리보다는 뭔가 기괴한 것 같으면서도 말이 되는 대사와 연기와 함께, 영상 하나하나가 넘어갈 때마다 잔상처럼 남김 강렬하던 분홍과 보라의 흔적만이 기억 속에 남았다. 그만큼 영상의 색감이 강렬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드는 데, 내용과 함께 그 색감을 오랜 기억 속에 기록해준 작품이 바로 문라이즈 킹덤이다. 사랑에 빠진 두 소년-소녀가 도망쳐 둘이 살아가겠다는 내용은 귀여우면서도 앤더슨 감독 특유의 위트가 살아있는 내용이다. 색감을 얘기하니 이 작품은 노랑과 보이스카웃 그린 (내 마음대로 부르는 특유의 색이다)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보여 따뜻하면서도 나름 어른의 세계 속 동심 가득한 느낌을 잘 살려낸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는 섬뜩하기도, 위트 있기도, 그리고 고심하게도 만들어버린다.


I Love You But You Don't Know What You're Talking About


여러모로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동심을 가득 채워주는 작품들은 주로 보는 편이긴 하지만 간혹 '다큐멘터리'물의 영화를 종종 보기도 한다. 이런 영화는 주로 아주 우연히 찾아 영화관을 방문해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관의 분위기 속 엄중하게 보다 보니 가끔씩은 환경 때문에 무서움이 배가 되는 건가 싶을 정도일 때도 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이고 인간의 면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 있다면 호텔 르완다라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너무 세계를 냉적하고, 부정적이고, 이기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결국 대다수의 인간은 생각보다 무감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I think that when people turn on their TVs and see this footage, they'll say "Oh my God, that's horrible, " and then they'll go back to eating their dinners.


이 영화는 결국 르완다 내전에 대한 내용과 함께 호텔 매니저가 호텔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꽤나 나이 든 성인이 되었음에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를 밤중에 운전하며 지나가는 데 원래 평평한 길을 지나갈 때 차가 꿀렁거려 무슨 일인지 하고 남자 주인공이 차에서 내렸을 때이다 - 강렬했던 어둠의 사위 속에서 발견한 사람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으며 나에게는 학살, 그리고 전쟁에 대한 공포를 강렬하게 심어준 장면이다. 사람과 믿음, 그리고 온정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고 내가 사알짝 언급했는데 이 생각은 여기서 나오는 두 번째 장면은 (사실 위 대사의 장면이다) 사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의견을 주고받다가 나름의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외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먼 사람들은 그 상황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공감하겠지만 결국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 그렇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 있고, 어쩌면 차고 넘치는 세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던 순간이다. 살짝 언급하자면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내용과도 분명 연관성이 있는 장면들과 내용들이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학살은 무엇이며 전쟁은 왜 하는 것이고 인류애는 결국 어떤 모습을 띄는 것인가. 나라는 사람과 내가 아닌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조금은 무거운 작품이었다.


지금은 비록 (진지하게) 자주 접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분명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기여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오늘의 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웃거나 울거나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에 대한 기준점을 잡는 데에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4개의 작품은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당신은 되돌아보았을 때 어떤 영화를 봤었었나.

오늘 생각해보면 그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다주었나.

결국엔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데에 힘이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오늘도 普通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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