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거자필반. 會者定離去者必返
한 때 House M.D.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열심히 시청하던 적이 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원조 멤버들이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캐스팅의 흐름을 견디지 못해 결국 시즌 4 초반 정도까지만 꾸역꾸역 보다가 스스로 나름의 시리즈 마무리를 해버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드라마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 드라마를 망설임 없이 언급한다: 사람,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나름의 자아를 확립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거짓말을 일삼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그럼에도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친절 그리고 연민, 말 그대로 '인간적인' 모습이 곧 우리가 아는 사람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 준 것 같다. 특히 시즌3, 시즌4 초반의 에피소드들은 종종 다시 틀어서 볼 정도로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시즌 3에 방영되었던 한 여성 환자와 House와의 에피소드가 유독 마음에 맺혔다. 강간을 당하고 성병까지 걸린 여성 환자를 만나는데, 그 환자는 다른 전문 상담 의사를 거부하고 하우스 의사만을 찾아 고집 있게 상담하게 되는 데, 그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아직까지도 내가 직접 읊거나 찾아볼 정도로 나의 꽤 깊은 기억 속 한 구석에 흔적을 남겨놓았다.
"Are you going to base your life on who you got stuck in a room with?"
"I'm going to base this moment on whom I'm stuck in a room with. That's what life is. It's a series of rooms, and who we get stuck in those rooms with adds up to what our lives are."
인생을, 인연을, 그리고 그 사이 만나는 흐름을 모두 나름 정의하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인생 그리고 인연에 대한 정의였다. 나라는 사람과 나의 인생은 평생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사는데, 그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완벽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내 인생이 그랬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반 강제적(?)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면 사람을 대하는 스킬이나 눈치가 좋아지는 것도 분명 있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에 가장 큰 흔적으로 남아버리는 얼룩은 그 당시 나의 전부이고 제일 중요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 일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나 또한 그들에게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상실감이다. 나는 이 과정이 너무 괴로웠다. 지금도 괴롭다. 왜 평생 가는 인연은 사귈 수 없는 것이며 내가 한 때 애정 하던 사람들과는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인가... 결국에 나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많은 실패와 아주 적은 성공으로 인해, 사람을 대하게 될 때에는 아주 가식적이고 무의 건조한 사람이 되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기대치 없이 상대방을 만나게 되고, 인연이란 언젠간 끊어질 것임을 항상 인지하며 떠나간 인연에 대해는 이젠 아쉬워하지 않는다.
유독 이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사춘기 때, 그리고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끝을 도달했을 때였다. 몇 년의 해외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나가고 싶었다. 절박하게. 너무나도 자유롭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기를 함께 해줬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고 그때만 하더라도 이 인연은 큰 노력이 없이도 평생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건 아주 큰 오산이었다. 처음에는 자주 연락하던 문자와 이메일은 어느 순간부터 빈도수가 줄어들고 함께 공유하는 추억은 이제 한계가 있어 대화를 이어나가기에 어려움이 생겨버렸다. 그때 강렬하게 느꼈던 것 같다: 아, 그들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는 것. 이브가 드라마에서 말했던 것을 인용하자면 그들과 같이 한 방에 머물었던 순간은 어느새 지나가버린 것이었고, 이미 끝나버린 하나의 시리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청춘의 인연에게 마음속으로 안녕을 고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애정 어린 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겪어나가고 있다. 완결성이 없는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만남이 힘들어지는 한계에 도달해버린 것 같다. 이젠 내가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이 작은 인력풀(?)을 케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를 많이 느끼기도 한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생각해보면 이미 끊어진 인연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스스로 자책을 할 때도 있다: 남는 인연이 아닌데 '나'를 희생해가면서 그 얇은 빨간 줄을 붙잡고 있고자 과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뭐 하고 있는 짓인가 싶다.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을 향한 에너지 레벨도 이젠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그런지 빨간불을 인식한지는 꽤 되었고,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오래전부터 혼자 있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게 된 것 같다 (소소하게 TMI 얘기를 하자면 나는 ENFJ에서 INFJ로 변했다는 것). 어느 날부터 나는 고독으로 나를 위로하고 외로움으로 스스로를 즐겁게 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그 다이내믹함 대신 내가 스스로 마주하고 조절할 수 있으며 극복해나갈 외로움을 택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혼자 지내고 익숙해지는 외로움에는 적응했는데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되새기는 외로움은 영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기서 또 TMI 하나를 공유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내 집에 와서 놀거나 몇 박 묶고 갔을 때의 그 첫날밤을 유난히 힘들어한다. 혼자가 '다시' 되어버렸다는 인지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아직 반도 넘지 못한 나의 생, 거쳐가야 하는 방들은 무수히 많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고독을 안주 삼아 하루를 홀로 마무리해본다. 언젠간 다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열정이 곧 돌아오겠지라며 조금은 노력하기를 미뤄본다. 그래도 괜찮겠지.
지금은 외로움을 조금 더 즐겨둘래.
오늘도 普通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