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ces that showed me what life is.
아! 여행이란. 설렘과 함께 긴장감이 감도는 이 단어는 역사적으로는 고난과 고통 속의 깨달음을 줬던 순례자적 삶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즐거움의 행위로 탈바꿈하게 된 것 같다. 최근에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이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작가님의 여행에 대한 사견이 흥미롭게 와닿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취미를 넘어선 의무감의 행위인 것: 조금 다른 모습으로 고뇌는 여행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와 깨달음을 선사해 주는 것 같다. 모두에게 신선함과 나름의 도피를 제공하는 여행은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었다 - 여행은 나에게는 낯선 고독을 선사해 주는 순간이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산책로를 제공해 주었으며, 오랜 인연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간이었다.
대학교 때는 운 좋게 유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봄방학이 되면 근처 동네들을 돌아다니곤 했었다 (한국행 왕복 비행기의 가격은 긴 여름이나 겨울 방학 때 소진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항상 동행인이 있었고 여행을 주도하는 역할을 많이 자처해야 했었지만, 딱 한 번 혼자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스스로가 사람에 치였다는 느낌이 강렬히 들어 개인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던 거지만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쩌면 혼자 여행하는 맛을 들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가장 최초의 여정이지 않았나 싶다. 마드리드는 정말 단순히 모든 거리의 최초 기준점 (Kilometre Zero) 그 발판 하나를 보고 싶어서 방문했고, 딱 24시간이 넘어가는 시점에 나는 리스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숙소는 한 1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재택의 한국 게스트하우스였고 큰맘 먹고 개인실을 예약하여 3박 4일 정도의 여정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는 너무 즐거운 리스본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 이유는 상세하게 일정을 안내해 주던 주인장 때문이지 싶다. 그때 당시에는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주인장의 가이드(?) 능력을 기반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손님이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해주는 것이 일정을 짜주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나는 주인장의 추천을 무시하고 두서없이 다니곤 했는데 이상하게 리스본에서는 전과 다르게 주인장분이 안내해 주는 대로 다 실행에 옮겼었다. “오늘은 저녁이니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고, 요리는 몇 가지 추천드리고… 내일은 이렇게 모레는 여기에 그리고 공항으로는 여기서 다시 출발하시면 됩니다.” 단순하게 설명해 주셨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이 정말 매력적이었던 분으로 기억한다: 왜 그곳을 가야 하고, 왜 꼭 에그타르트를 거기서 먹어야 하는지, 어디에 가서는 어느 지점을 찾아 꼭 이렇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낯선 도시에 가서 스스로 다녀보고 관광하는 재미도 분명 있겠지만, 현지인으로써 사는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것만큼의 색다른 매력이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해 봤던 도시였다. 몇 가지 느낀 게 있었다면 현지인의 말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면 한국 게스트하우스를. 에그타르트는 꼭 포르투갈에서 시식해 보기. 신트라는 꼭 방문할 것.
마드리드와 리스본 여행을 혼자 다니면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건 혼자 다니며 느꼈던 외로움의 즐거움이었다. 어딜 가든 혼자 다녀야 했고, 그 짧은 일정에서도 두 번 만난 형님과 함께 식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1인을 주문하는 것이 당연했던 여행길이었다. 뼈저리게 외로웠다; 사람에 치여 지쳐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말동무가 없는 것에 대한 허전함은 분명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 나를 더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걷고 먹고 잘 수 있었으며 두 눈으로 그 풍경을 한없이 머금을 수 있는 고요가 있었기에 행복했었다.
그 이후로도 여행은 매 해 갔었던 것 같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항상 한 번씩은 조금 다른 풍경을 배경으로 아침 해를 맞이했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로 생각되는 여행이 하나 있다면 몇 해전 실행했던 부탄 여행이다. 버킷리스트 개수가 많은 사람은 아닌데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여기는 꼭 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앞자리가 바뀌는 타이밍에 맞춰 심적으로도 재정비하고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항상 책으로 알았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 그 풍경을 내 눈으로 담고 싶었었다 (지금은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1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내 기억력이 맞다면 (그리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면) 부탄은 한국인으로서 여행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1) 하루 평균 USD 250 정도 이상 소비 해야 하며 2) 무조건 여행사를 끼고 가이드가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연말에 싱가포르에 기반한 한 여행사를 통해 방콕을 경유해서 파로를 통해 입출국하는 약 6박 7일 정도의 패키지를 예약하게 되었다. 숙박시설은 조금 업그레이드하여 좋은 곳에 머물렀고 1박은 꼭 산꼭대기에서 자보고 싶어 24시간 등반하여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정을 포함했었다. 혼자 방문함에도 불구하고 가이드 한 명, 운전수 한 명을 동반했는데, 그 긴 기간 내내 우리는 오로지 셋이 다녔다 (그래서 덜 외로웠던 것 같다). 전반적인 여행 일정은 훌륭했고 가이드분은 열정적이었으며 운전수는 수줍음이 많으나 장난기도 가득해서 함박눈이 온 날 이동을 못해 발이 묶였을 때에는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주고 눈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으며,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날들이었다. 산 꼭대기에서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그 설경을 나는 아직까지고 잊지 못하고 있다. 탁상 사원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며 등산을 하고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들을 보며 찬공기를 만끽하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마주치던 동네 사람들의 우렁찬 웃음소리, 호탕한 대화들, 낯선 사람에게 보여주던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이 모든 생활 안에서의 차분하던 행복. 마지막 날 가이드와 운전수가 울며 인사해 주던 공항. 어쩌면 재정적으로나 전반적인 패키지 등을 보았을 때 가장 돈이 많이 들었기에 그만큼의 만족감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서 나에게 평화와 안식은 내면에서 온다는 것을 여러모로 깨닫게 해 주었던 조용한 시간이었다.
단순하게 탁상사원 (Tiger’s Nest)를 내 두 눈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욕심은 등반을 해서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모하여 1박 2일의 등반 코스를 선택하게 만들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이게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약 5시간 정도를 쉬고 걸으며 꼭대기에 도달하고 다음 날 아침 천천히 비슷한 시간을 걸어서 탁상사원을 보고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줬던 것은 예상치 못한 함박눈이었다. 눈 때문에 나는 다른 도시를 구경하는 1박 2일의 일정을 날려버렸지만 눈 덕분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설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때 얘기를 들어보니 12월에는 눈이 잘 안 온다며 운이 좋았다고 했다). 등산길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아 가이드의 발자국만 따라가고, 무릎 정도까지 오는 눈을 밟고, 산속에 사는 개들의 정상을 향한 동행은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 맑은 공기를 마시고. 쇠 도시락통에 싸 온 만찬을 즐기며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새벽에 햇살이 산줄기를 타고 넘어오는 절경을 바라보고. 경험만을 통해 충만했던 시간은 처음이었다 - 그렇게 많은 것을 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 순간. 형체로 존재하지 않는 너무 많은 것들을 몸과 마음속에 새기고 내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여행 이후로 나에게는 두 가지 형태의 여행이 공존하게 되었다.
낯선 곳을 동행인과 방문하게 되는 여행.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방문.
그 사이 코로나는 세상에게 너무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개인적으로는 여행이 더 이상 새로운 여정보다는 옛정을 찾아 떠나는 방문의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여기저기 분포 되어있는 친구들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가장 최근 (그리고 어쩌면 당분간은 없으니 마지막일!) 방문지로 바르셀로나를 선택하게 되었다. 여행의 의미로써는 꽤 즐거웠다. 반 현지인, 반 여행객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지인을 통해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탐구를 만끽하기도 하면서 함께 새로운 관광지를 구경하고 스페인 음식을 시도하면서 나름 꽤 재미있는 구경을 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랑 몬세라트라는 곳을 방문하며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했는데 확실히 스토리가 있으니 그 경험과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게 되었던 것 같다 (이와 관해 종교에 대해서 나중에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조만간 하나 작성해 보겠다!) 저녁 9시가 되어야 밥을 먹는다는 문화에 나름 그 시간대에 타파스를 즐기며 비슷한 루틴에 적응해 보고, 꼬르따도라는 진한 엑기스 라떼 같은 커피를 마시며 한국의 초가을 날씨를 즐기고 하루에 만 보 이상씩 걸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행 그 이상으로 즐거웠던 건 지인과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일상을 공유해 보고 소소한 것부터 속에 있던 생각들까지 얘기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살아가면서 며칠이나 될까. 여행은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알고 있던 인연을 재발견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요번에서야 깨달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그 깨달음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존경하고 나름 신격화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굉장히 인간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건 나에게는 행복이자 고통이었다. 나와 똑같은 사람임을 발견하면서 대화하는 게 즐겁고 모두 고민거리가 비슷하단 것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안도가 있지만, 그만큼 내가 찾고 있던 - 상담사였을까 - 멘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구나를 깨닫는 순간 나는 심적 고통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여행을 동반한 만남을 통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변화였던 것 같다. 10년 전 만난 그 사람은 더 이상 오늘 내가 마주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며, 이제는 상하적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관계가 아닌 오랜 친구가 된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낯선 곳에서 익숙한 대화를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다.
변화에 굉장히 열려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은 이제는 마냥 즐겁게 변화를 맞이하는 것 같진 않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의 의미도 처음 접했을 때와 오늘날 접했을 때의 느낌이 다르고, 또한 그래서 그런지 많은 작가들이 산문을 통해 표현하는 여행의 허탈함 역시 오늘따라 더 와닿는 것 같다. 하지만 의미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 발자국씩 다름을 지속적으로 체험하다 보면 되돌아봤을 때 여행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무수한 즐거움과 고뇌는 되짚어볼 만하기 때문이다.
내일의 여행은 분명 오늘과 다를 것이다.
그곳이 새로운 나라이든, 도시이든, 인연이든.
오늘도 普通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