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수단 그 이상이 되었을 때.
사주팔자 보는 걸 은근히 좋아하는데 항상 나오는 말이 ‘역마살’이 껴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동이 잦거나 여기저기 잘 돌아다닌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만큼 비행기를 많이 탄다는 의미로 해석할 때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2 - 3년에 한 번씩은 꼭 비행기를 탔고, 대학교 다닐 때는 연간 4번, 일할 때는 많으면 연간 6번 이상 탈 만큼 이상하게 비행기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비행 일정이 생기면 나름의 노하우와 루틴이 생기기도 하고, 가장 변함없는 모습들을 경험함과 동시에 (보안검색대는 언제나 지루하다…) 많은 항공사들의 기술 발전을 몸소 체험하기도 한다 (아니, 카운터에 한 번도 방문 안 하고 다른 나라를 다녀올 수 있다니! 와이파이가 가능한 비행기가 나오다니!) 또한 그만큼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되돌아보면 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거의 2살 때즈음 해외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 첫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의 기억이 없는 나로서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그렇게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고 기내에서 활달하기 그지없었다고 하신다 (아주 통로를 내 놀이방처럼 왔다 갔다 했다고 하시니, 그 당시 승무원들과 같이 비행했던 분들께 이제야 사과를…). 어렸을 적부터 나름 비행기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 것치곤 대학교 때까지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크게 무의미했던 것 같다. 밀린 영화들이나 몰아보고 기내식을 즐기며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세로 꿀잠을 잤던 그 순간들은 나름 일상으로부터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에 머무는 경험을 했던 것뿐. 그때 당시에는 정말 이동수단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단순한 비행기를 이용한 장소 이동.
일을 하면서부터 기내 탑승시간을 조금 다르게 활용했던 것 같다. 야간 비행일 경우에는 게이트 앞에서까지 바짝 일을 하고 비행기 안에서는 미친 듯이 잠을 잤다 - 그렇게 다음날 도착하면 출장으로 인했던 피로가 사악 풀리는 데 일상으로의 복귀 회복 시간이 줄어드니 습관적으로 야간 운항 스케줄을 찾았다. 부득이하게 오전이나 낮에 운항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면 기내는 나만의 미니 사무실이 되었다. 기내식을 먹고 (또는 안 먹고) 한숨 돌리고 랩탑이나 인쇄한 자료들을 바라보며 집중을 했다. 타의에 의해 끊겨버린 세상과의 소통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 것이다. 옆에 앉았던 사람들에게는 종종 타자소리 나 모니터의 빛 때문에 미안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게 그때가 아니면 집중이 안 되는 내용이다 보니 그 몇 시간이 굉장히 소중했다. 만약에 옆에 누가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게 되면 조금의 배려를 부탁하고 싶다.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귀한 시간일 수 있으니!
요즘 개인적으로 비행기를 타는 경우에는 거의 둘 중 하나를 한다. 첫 번째로 밀린 책들을 읽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 읽고, 다시 자고, 다시 읽고. 이렇게 비행기 안에서 끝낸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이상하게 그때 읽었던 책들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만큼 집약적으로 집중해서 읽어서 그런가, 어둠 속에서 빛 한줄기 비춰 야금야금 읽어나가는 책의 내용이 괜스레 귀하게 느껴졌나 보다. 책을 읽다가 조금 지치면 (두 번째로) 난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한다 - 명상이라 할 수도 있고, 사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 산책이라고 칭하고 싶다. 어제 한 일부터 내일 할 일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를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나름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음식이든, 취미든, 직장이든, 인생이든 … 내 마음의 목줄을 풀어주고 여기저기 내 머릿속을 돌아다닐 수 있게 내버려둔다. 그게 좋은 감정이든, 싫거나 지루한 감정이든, 마음과 머리가 뛰놀다 보면 곧 몸이 소화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은근한 시간을 보낸다. 크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행위들이 나에게는 이성과 평화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단순하게 보내던 비행시간이 요즘에는 나에게 조금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조만간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는데 이래서 괜히 설렌다. 비행기 안에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당연하듯이 나와 함께 한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은 의외로 이동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을 가장 최근에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내가 비행기를 탔을 때에 변화하는 행동과 취향들도 놀라웠지만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취급(?)했고, 오늘 어떻게 즐기는 지를 깨달았을 때 나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소중하게 끌어안게 되었다. 누군가는 비행에 대해 나와 아주 똑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름 ‘비행기’와 같은 의미를 가진 매체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생각보다 즐기고 있고 있다는 것.
조만간 다시 즐길 수 있을 것.
오늘도 普通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