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아서.

by 보통인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렇다고 현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거나 성취해야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의욕이 없다.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많고 해야만 살 수 있는 것들도 알고 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 힘을 다해 운동을 한 시간하고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으면 어느덧 잠들 시간이 찾아온다. 핸드폰도 재미없고 책도 당기지 않는 요즘, 나는 나의 무기력감과 하루하루 투쟁하고 있는 기분이다.


스스로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얘기해보기도 싶기도 해서 가볍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심리 상담을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전문상담가를 만나 얘기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조금 두려운 것도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정상인게? 정상이 아닌 게? 정상이 무엇이지?). 어찌 보면 젊은 친구들이 방문하는 카페를 찾아가서 그곳에 계신 선생님이 찾아온 나를 보고 새삼 놀라는 것 같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내 소개를 했다. 어쩌면 나는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완벽한 타인에게 나의 심정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살아온 인생에 대해 흥미로워하시기도 하고 성향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면서 지금 현 상황에 대한 결론은 조금 더 내려놓고 살라는 것. 조금 더 쉬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만이 기억 속에 남았다 ('오늘이 너무 힘들어요’ 보다는 ‘다음 이직을 할 때 저에 대해 무엇을 염두에 두고 나아가야 한가요’라는 질문을 가지고 상담을 하긴 했었다). 같이 일하던 친구가 나에 대해 얘기했던 많은 것들 중 선생님이 그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한 것과 겹치는 게 딱 세 가지가 있었다: 완벽주의, 가면 증후군,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 이런 성향을 안고 가는 사람이라면 과연 나는 쉬어야 할 것인가. 쉴 수 있는 것인가. 쉬는 게 맞는 것인가. 하하.


완벽주의자 (Perfectionism)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는 것. 끊임없이 노력하면 보다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실패가 두렵고 비판이 싫고 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 완벽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자주 듣긴 했지만 이토록 공감했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실패할 것 같으면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완벽주의자인 것이 칭찬 같았다. 완벽을 목표로 끊임없이 노력해 가는 것이 당연했고 그것이 멋있었고 무한한 애씀을 인정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뇌가 아니었나 싶다. 완벽을 목표로 한다는 건 과연 이룰 수 있는 목표인가? 실패를 한다면? 실패를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런 힘이 내겐 있는 건가? 그 완벽을 도달하지 못한다면 … 나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은 불안 심리의 일종으로 내가 성취한 모든 것들은 노력이 아니라 운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한다. 나의 성취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운이라고 생각한다. 노력을 한 것에 비해 성취한 것이 많았었고, 인정받는 게 맞는가 싶은 경우에 인정을 받고, 기회는 끊임없이 제공되어 나는 언제나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나는 정말 노력을 했던 것인가? 내가 쏟아부었던 시간과 집념이 사실은 좋은 결과를 냈던 것인가? 모든 것은 타이밍, 아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라고 하지만 나만큼 또는 나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도 넘쳐나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무엇인가?


매우 예민한 사람 (Highly Sensitive Person)은 심리학계에서는 아직도 논란이라고도 하지만 꽤 재미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내가 변화에 민감하고, 주변환경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으며, 사람으로 인해 굉장히 쉽게 (또는 정도가 심하게) 지치는 모습이 있다며 HSP인 것 같다고 얘기했었던 게 있어 이렇게 또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방법도 있구나 싶었다. 이게 정말 맞다면, 나는 이게 곧 나의 생존능력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아주 좋아 꽤나 불편한 상황들도 잘 회피하기도 하고 좋은 상황을 좋게 잘 흘러갈 수 있게끔 유도를 잘 해왔었다. 이게 예민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지난 몇 년 간의 나를 되돌아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지쳐버린 게 아닌가 싶다. 오감을 곤두세우며 살다면 생각보다 세상만사 모든 게 가볍지가 않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도 조심스러워하고, 내가 성취한 모든 것들은 운대가 맞았던 것뿐이라 불안이 가득하고, 세상만사에 민감해 쉽게 지쳐버리는 사람이면 어떻게 ‘노력’을 하고 그 어디서 의욕을 찾을 수 있을까. 쉬는 게 답인 걸까? 오히려 쉬면 더더욱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지 않을까. 그렇게 들어갔다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괜한 좌절감과 쓸데없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오늘 속에서 내일의 원동력을 찾기에 요즘 나는 조금 벅차다. 미약하게나마 남이 보는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그 부정적인 감각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소화해 내려하는 게 하루 일과다. 내일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과 그것을 이행할 수 있는 행동력이 필요한 요즘, 생각보다 그 한 발자국이 어려워 오늘도 지친 마음으로 해가 지는 저녁을 맞이한다. 이 무수한 부정적 사고와 무기력한 기운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생각을 가져본다: 세상은 비정하게 나 없이 흘러만 가지만 한줄기 희망은 어디서든 나오겠지.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오늘이 소화가 된다.


투정 가득한 글로 감정을 토해낸 하루의 마무리.

고민도 많고 심리적 좌절도 많은.

오늘도 普通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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