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이 따뜻했던 날들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에 Edward L. Deci와 Richard Flaste가 함께 쓴 Why We Do what We Do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전체적인 내용을 아주 단순하게 얘기를 하자면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행하는 일이 아니면 큰 기여도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개인으로써, 누군가의 상사로써 그리고 미래의 한 자녀의 부모로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에 대한 지적과 팁을 얻을 수 있어 가볍고도 깊이 있게 읽었던 것 같다. 정리된 내용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파생된 생각의 흐름을 얘기하자면 결론적으로는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에 도달했다. 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관과 취향이 곧 나의 의지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결정을 하고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나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남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다 보니, 책이라는 소재는 다음에 본격적으로 취향을 마음껏 구체화하고자 하고 있지만, 오늘 이 책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글 기록의 목적성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취향을 남겨놓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것인데, 그 생각이 이 책을 통해 파생된 것이 아녔을까 조심스레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나의 자아형성에 기여를 한 요소들이 다양하게 있고 그 소재들을 하나씩 적어나가겠지만 어쩌면 눈을 떴을 때부터 나의 인생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던 건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고심하고 고민한 끝에 음악을 가장 첫 기록 (절대 마지막을 아닐 것이다 - 변형해서 다시 한번 기록하고 싶은 소재!)으로 선택했다.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음악은 (사실 그때 당시 유행하던 곡들이었겠지만 수많은 곡들 중 특별하게 나의 기억에 남는 걸 보니 그때 당시에도 지극히 내 타입이 아니었던 거 아닐까?) 김건모의 핑계, Miriam Makeba의 Malaika 그리고 Them Mushrooms의 Jambo Bwana이다. 이 세 곡은 나의 유년기 시절을 표현해주는 추억의 곡이기도 하며 그때 당시 나의 낙천적이고 실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간직해주었기에 나에겐 더욱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곡들이다. 요즘도 가끔씩 들으며 엉덩이를 흔들고 춤추는 걸 은밀히 즐기곤 한다.
무의식 속에서 피어오른 것이었을까 -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청각을 통해 듣는 소리들이 나의 감정선을 꽤나 예민하게 건드리는 것 같다. 소리에는 힘이 있다. 음악이면 정교하게 더욱더.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또는 우울하게, 때로는 감성적이거나 얌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능력이 있다. 특히나 청소년으로서 해외에서 사춘기를 겪어 나아가야 할 때 나의 사춘기적 감정 기복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음악뿐이었지 싶다. 그 어린 시절 들었던 음악으로써는 힙합부터 한국 가요, 해외 락 등등 다양한 음악이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당시 들었던 음악보다 나중에 동생을 통해 추천받아 들었던 가수가 오히려 더 그 당시 나의 심정을 더 잘 표현해낸 것 같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각각 한 나라로써 독립하고 약 십 년 정도가 되어가던 그 언저리의 시기에 나는 유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주 어렸을 적의 내가 매우 밝고 낙천적이었다면 중학교 즈음일 때는 아주 어둡고 멜랑꼴리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때 당시에 들으며 나의 마음을 달랬던 곡들 중 아직까지고 추억하며 가끔씩 듣는 곡은 드렁큰타이거의 슬픈 기타줄이다. 자유로웠으나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갈망하고 타의의 고생과 힘듬에 동감하며 감수성을 건드리던 기타 소리가 그때는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 연장선에서 단순히 반항끼가 백 프로였던 나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 것도 있지 않나 싶다 하하)... 함께 취해 춤추고 노래하자던 가사를 들으면 오늘도 이 곡은 미비한 반항심에 집에 늦게 들어가겠다고 밤 열 한시에 트램을 타며 집에 가던 때가 생각이 난다. 딱 바로 그 순간이 매일 엄마를 울리던 나의 사춘기가 끝이 났던 아주 선명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던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는 무사히 한국에서 입학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아주 생소한 느낌이었다 - 우습게도 졸업식은 결국 가지 못했지만!). 그전에 무시(!)하던 Coldplay, Oasis, Radiohead와 같은 클래식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장르를 넘나들며 올드팝, 재즈의 곡들도 종종 골라 들었던 것 같다. 이때만 해도 스트리밍 음악이 잘되어있던 시기는 아니어서 (세월이...) 열심히 몇 시간이고 음악을 찾고 다운로드하였던 나의 열정적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상하게 그 많은 해외 곡들을 들었음에도 고등학교 때 꽂혔던 곡이 한 곡 있다면 델리스파이스의 꽃잎 날리는 길을 따라였다. 물론 내가 애정 하는 고백이라는 곡도 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 곡만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애틋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야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주오"가 굉장히 요염하게 들려 인상이 강렬해서 그런가 - 전형적인 밴드적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곡에서 매력이 넘쳐나는 보컬의 음색에 매료되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보컬의 존재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찌들어 있고 현실적이며 냉정했던 그때의 나에게 세계를 굉장히 몽환적으로 재해석시켜줬던 노래이기에 더욱 강렬하게 남았던 게 아녔을까...
성인의 기준 만 20세라고 하지 않는가. 선택적 음악 듣기는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확고해졌던 것 같다. 학생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음악을 소개받고 지인들이나 친구가 듣는 음악이 멋져 보여 꾸역꾸역 들었던 것들이 있다면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의 만족을 위해 철저하게 곡들을 선택하고 시도해봤던 것 같다. 당연히 10년 전 듣던 음악 취향이 지금도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연장되어오는 가수들이나 곡들도 있고 한 때의 위로로 남겨진 곡들도 있다. 주체적으로 음악을 골라 들으며 지금까지도 즐겨 찾는 곡들을 몇 곡 얘기하자면 검정치마의 Dientes, 장기하와 얼굴들의 사람의 마음, 언니네 이발관의 보통의 존재, 그리고 카더가든 (당시 메이슨더소울)의 예쁜 여자 정도를 꼽고 싶다. 이 모든 곡들은 다 너무 즐겨 듣기도 하지만 각각 가져왔던 임팩트는 다 달랐던 것 같다. Dientes라는 곡은 위트 있어 가끔씩 장난스러워지고 싶을 때 찾는 곡이지만 오히려 노래보다는 뮤직비디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 SML이라는 캐릭터를 소개해줘 나의 지갑 털기에 큰 기여를 한 것도 있지만 한 아버지가 한 아이를 키우며 둘이 함께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을 표현해낸 것이 너무나 새로웠다. 나름 순화된 블랙 코미디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 이외에 사람의 마음과 보통의 존재라는 곡은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있어 느꼈던 중압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위로가 되었다. 살아가는 게 조금은 벅차던 찰나에,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하는 말에 쿨하게 머리가 퇴근해버리고 어디에나 흔한 보통의 존재라며 별로 쓸모는 없다는 말에 '내가 그럼 그렇지 뭐'라며 마음토 퇴근시켜버렸다. 더 이상은 특별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예쁜 여자라는 곡은 덤! 카더가든의 너무나도 독특하고 매력 있는 음색이 위트 있게 난 예쁜 여자가 좋아!라고 선전 포고하니 "누가 뭐라고 하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거 좋아할 거야!"라며 얘기하고 다닐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곡이다.
누군가에겐 길겠지만 나에게는 짧다고 느껴지는 지난 음악 리스트를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공통적으로 많은 기대치와 성취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꾹꾹 눌러 다스리고 있던 나에게 '넌 잘 살고 있어, 인생이란 이런 거야, 네가 알아서 살아'라고 위로를 보내준 곡들이었나 보다. 몇십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이 모든 곡들이 어깨에 힘 들어간 나에게 조금은 내려놓고 살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준 곡들이었나 싶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오늘도 普通인.